[MOVIE 100] 두 구루와 인도천재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days ago (edited)



작년 라다크에서 초모의 소개로 만난 친구 사드나는 요즘 세계적으로 핫한 인도의 구루, 사드구루가 설계한 수행 과정을 따르고 있다. 그녀는 남인도에 있는 아쉬람에서 진행하는 세션에 참가해서 명상, 요가, 채식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수행법을 차례로 배우고, 일상에서 엄격하게 실천하는 중이다. 준비가 되면 구루가 가이드하는 마지막 세션을 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드나는 그를 자신의 구루로 여기지는 않지만, 그가 고안한 수행법은 분명 특별하다고 말했다. 방법론만 취하겠다는 것이다. 명상, 요가, 식단 조절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대 의학도 그 효과를 인정하는 건강 관리 비법이고, 신체와 정신을 깨끗하게 유지하여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수행의 시작이다. 그게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 해도 수행의 의미가 작아지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미물이 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은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 이 수행 끝에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어? 나는 사드나에게 물었고, 사드나는 오래 간직해 온 보물을 몰래 꺼내어 보여주는 소녀처럼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 생에서 모든 업을 씻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 애가 어떤 마음으로 지옥을 헤매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는 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여름 사드나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겨서 한동안 인터넷을 뒤지며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도 차례로 보는 중이다. 허연 수염이 성성한 인도 할아버지가 반가를 틀고 앉아 떠드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수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그의 메시지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다만 뜬구름 잡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화법은 쉽고 명확하고 유머러스하고 여유롭다. 영상은 촬영, 편집, 자막까지 깔끔함을 넘어 스타일리시하다. 무엇보다 인간 자체가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전통적인 인도 구루들과 다르다. 그는 힙스터다. 연설할 때는 터번 쓰고 숄을 두르지만, 평상시 스타일은 파타고니아 화보 같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을 흩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골프나 크리켓 같은 스포츠를 즐긴다. 속세의 활동을 꽤 많이 한다. 책과 방송은 물론, 각종 SNS 활동은 웬만한 셀럽보다 낫다. 정치적 발언과 공개 토론에도 주저 없이 나선다. 환경운동가로서 기부나 캠페인도 열심히 하고, 재단의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같은 수익 사업까지 한다. 이쯤 되니 영적 구루가 세속의 것에 관심이 지나치다느니 가르침과 행보가 표리부동하다느니 반대파에게 공격을 받기도 한다. 구루가 본인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수은으로 만들었다는 시바의 상징물, 구루의 아내가 자의로 몸을 떠나 신체적 죽음에 이르렀다는 일화 등 자극적인 스토리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코브라를 데리고 노는 것도 모자라 대중 앞에서 코브라 독까지 마신다! 이 부분에서 추종자들은 열광하고 안티들은 발작한다. 나는? 재밌어서 계속 찾아본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엔터테이너적 기절을 갖춘 리더가 있고, 체계적인 도제 시스템을 통해 영적 성취의 길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대중에게 친절한 입문용 가이드를 제공하며, 오컬트적 영역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도파민 터지는 자극까지 선사한다. 쇼맨이면 어떠하리. 사이비 구루면 어떠하리. 사드나가 그를 구루로 여기지는 않지만 그의 방법론을 자신의 성취에 적용하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효과 빠른 진통제 하나 갖고 있는 셈이다.

이 힙스터 구루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구루가 있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안티 구루'라고 불리며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를 소개하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책에 고스란히 드러난 저자의 흥분 상태가 지나쳐서 중간에 덮었고, 시간이 좀 더 지나 안티 구루가 남긴 말을 그대로 번역하여 엮은 다른 책을 읽었을 때는 너무 과격한 그의 언어에 읽자마자 거부감이 들었다. 꽤 오래 추구의 상태에 있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실제 질문자였다면 몸을 떨며 엉엉 울었을 것 같다. 그렇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포기했다가 내 안에서 벌벌 떠는 가여운 녀석을 좀 진정시키고 다시 읽었을 때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하는 말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궁극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즈나나 마르가 jnana marga (지혜의 길)는 없습니다. 마르가(길, 방법)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링 안에 타월을 던지는 것 같은 완전한 항복이며, 거기서 나오는 것이 바로 즈나나(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포기라는 의미에서의 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전면적인 포기, 총체적인 무력함입니다.

그러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뭐가 맞는 소리라고 고개를 끄덕이냐고 되묻는다. "내가 하는 말은 개가 짖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멍멍! 어리석은 중생이여! 멍멍! 여기에는 인정할 것도 부정할 것도, 추구할 것도 포기할 것도 없다네! 멍멍! 이해할 수도, 체험할 수 없지! 이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종의 '사건'이라네. 멍멍! 꽃이 피어나는 것이 꽃의 의도가 아닌 것처럼 인간의 의도나 의지와도 상관없다는 말이네! 멍멍!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며, '영혼'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그 비슷한 모든 것들도 존재하지 않는다네! 자아, 자유의지 다 환상이라네! 너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생각을 멈출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고, 생각이 계속되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왈왈!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니까! 멍멍! 세상에 명상만큼 쓸 데 없는 일도 없지. 그것에 이르는 방법 같은 건 없으니 깨달음 같은 개풀 뜯어 먹는 소리 이제 그만하고 포커스 온 유얼 현생! 예를 들어 쑈미더머니! 멍멍!

그리고 여기 인도천재들이 있다. 나에겐 이 다큐 속 인도천재들이 힙스터 구루보다 안티 구루보다 더 구루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꿰뚫은 듯한 날카로운 눈빛도 아닌, 세상사 다 통달한 듯한 공허한 눈빛도 아닌, 열망과 간절함이 깃든 이글거리는 그들의 눈빛에서 삶의 진리를 엿본다. 탐구하고 활용해서 폭발시킨 천재성과 끝없는 향상심은 신성으로, 멈추지 않는 경쟁을 향한 즐겁고 기꺼운 선언은 진언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인도천재'는 교육이 유일한 신분 사다리인 인도 사회에서 벌어진 특수한 현상이라는 분석은 필요 없다.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년 휴식, 힐링, '적당히 하기'를 필요 이상으로 추구해 왔고, 그것에 중독된 상태다. 중독은 병이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전율하며 눈물 흘리는 나 역시 그 독에 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었음을 깨닫는다.

왜 삶이 죽음보다 많습니까? 왜 생명은 자연스러운 상태입니까? 왜 생명은 의도나 노력 없이 유지됩니까? 생명 활동은 왜 자동입니까? 자율신경계는 신의 섭리인지용?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빈곤을 막을 수 없는 영성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세상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면, 내가 너이고, 우리는 하나라면, 한 사람의 깨달음이 전 인류의 깨달음이어야 하는 거 아닌지용?

인도천재들 덕분에 두 구루와 대화하며 온종일 떠들어대던 내 안의 목소리들은 음소거 처리되었다. 물론 일시적이지만 말이다.

Sort:  
 2 days ago 

다큐멘터리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맹목적인 입시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성장을 함께 이끄는 방식이 꽤 멋지고 근사해요. :) 물론 그 안에서도 과도한 압박감의 폐해도 존재하겠지만 불속으로 기쁘게 뛰어드는 나방들 같아요. 하지만 타지 않고 더 나은 차원의 무언가로 거듭나는. 말로만 들었을 때보다 실제 환경과 생활 모습을 보니 더 울림이 커요.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마음껏 기쁘게 공부하고 나아가야겠다는 에너지를 얻었어요! 으아아아아아아

 1 hour ago 

맞아요. 나방들은 불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 행복하지 않을까요? 불꽃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불에 타서 사라지는 나방을 보면서 안타까워 할지도 모르지만요. 요즘 아침에 명상할 때는 산 정상에 올라서 야호 외쳐요. 기쁘게 나아가고 있는 얼굴들 떠올리면서요. 야호 소리 들으면 채린님도 야호 외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