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일기 #217

in #life2 days ago

2025.8.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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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vilization 위대한 문명사 |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주제 1. 산업혁명과 한강의 기적

최근 언더스탠딩에서 유익한 강의를 방송했다. 세계 문명사와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무려 24회차의 대장정 프로그램이 최근에 마무리 되었다. 너무나 유익한 방송이라 그냥 보고 지나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도 할 겸 요약해 봤다.

산업혁명은 절대 빈곤을 해결하고 농업사회에서 가치 창출 체제로 전환한 문명의 전환점이었다. 영국, 미국, 일본은 기술, 자본, 정책, 의지를 결합해 산업화를 성공시켰지만, 조선는 서양 기술 배척, 남미는 자원 의존으로 문명전환에 실패했다. 그러나 한국의 한국전쟁 이후, 보호무역, 적자 수출, 기회 활용이라는 영리한 반칙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도약을 단기간에 이뤘다. 그러나 독재의 고육지책은 사회적 비용을 낳으며 “절반 성공”에 머물렀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장자상속제와 인클로저 운동이 성공의 기반이었다. 프랑스의 균분상속은 대농장을 분할해 자본 축적을 저해했지만, 영국은 재산을 장남에게 집중, 대규모 농장을 유지했다. 인클로저 운동은 공유지를 사유화해 농민을 도시로 이동시켜 런던에 노동력을 공급했으며, 방직기계와 증기기관 같은 기술 혁신과 결합해 산업화를 가속화했다. 높은 관세로 인도 면직물을 차단하고, 자국 산업을 키웠다. 이는 기술과 자본의 선순환을 창출해 19세기 영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

미국은 19세기 링컨 시기 50% 관세로 산업 기반을 구축, 초강대국으로 도약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모방해 철도와 제조업을 육성하고, 내수 시장을 보호하며 기업을 키웠다. 자본 축적과 기술 도입은 20세기 전기, 자동차 혁신과 석유·철광석 자원을 만나 글로벌 경제를 주도했다. 보호무역과 실리적 정책은 미국성공의 열쇠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년)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했다. 요시다 쇼인의 교육과 ‘화혼양재’(서양 기술, 동양 정신)는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적극 수용하고, 일본 전통을 유지하며 산업혁명을 가속화했다. 정부는 철도, 조선소, 공장을 설립하고 보호무역으로 자국 산업을 키워 20세기 초 일본은 아시아 강국으로 부상했다.

반면, 조선은 산업화에 실패, 자발적 쇠락을 초래했다. 위정척사는 서양 기술과 문물을 배척, 농업사회에 갇히게 했다. 주자학 중심의 문치주의는 문벌 귀족의 충성을 우선시 하고, 농민을 조공으로 억압했다. 3년상 같은 비현실적 관습은 평균 수명 40세 미만의 시대에 가계 파탄을 초래하였으며, 19세기 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또한, 남미, 특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천연자원을 활용한 수입대체 전략으로 실패했다. 브라질은 철광석, 대두, 커피, 아르헨티나는 석유, 천연가스, 소고기를 내수 중심으로 사용했고, 높은 관세와 수입 제한으로 국내 시장을 보호했다. 1950~60년대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 아르헨티나의 YPF는 자동차, 기계와 같은 내수용 제조업을 키웠다. 하지만, 품질과 기술 혁신 부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자원 의존은 단기적인 수익을 창출했으나, 규모의 경제와 산업 고도화를 저해하였으며, 극심한 경제 정체로 이어졌다.

한국의 한강의 기적은 산업혁명 공식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1인당 GDP 66달러의 폐허에서 1996년 1만 달러, 2020년대 약 3만 달러로 도약했다. 이는 보호무역, 적자 수출, 부실공사, 기회 활용이라는 영리한 반칙으로 가능했다. 정부는 높은 관세로 국산품을 장려, 삼성·현대에 특혜를 제공하며 제한 경쟁을 유도했다. 원가 1,000달러 상품을 800달러에 수출하고, 내수 고가 판매로 손실을 보전하며 고용, 기술, 외화를 축적했다. 1960년대 섬유·가발 수출을 시작으로, 1970년대 포항제철, 현대조선과 같은 중화학공업으로 이어졌으며, 1980년대 반도체로 고도화됐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428km, 430억 원)는 ‘싸게 빨리’ 전략으로 수출 경제의 대동맥을 구축했지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부실공사 성장통도 있었다. 3억 달러의 한일 청구권 자금과 베트남전 파병,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라는 3저 호황(1986~1988년)은 제조업과 수출에 투자와 경제 도약의 디딤돌이 됐다. 정부·기업·노동자의 협력은 성공의 핵심 동력이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은 독재의 고육지책으로 절반 성공에 머물렀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는 정치적 반대 세력과 노조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희생시켰다. 재벌 중심의 특혜는 부정부패와 자산 격차를 낳았고, 적자 수출은 소비자 물가 부담으로 이어졌다. 부실공사는 안전 문제를 일으켰고, 1996년 OECD 가입 후 자유무역 맹신은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글로벌 경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영국, 미국, 일본, 한국은 보호무역과 실리적 정책으로 성공했지만, 조선과 남미는 명분 중심과 자원 의존으로 실패했다. 한강의 기적은 독재의 한계에도 불구, 영리한 반칙으로 기적을 창조했다. 현재의 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은 AI·반도체에 선택과 집중하되, 중소기업과 지역 경제를 지원, 품질 중심 전략과 민주적 합의로 완전한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 조선의 몰락을 교훈 삼아, 정글에서 반칙왕으로 도약, 선진국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우리나라가 독재정권의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 2차세계대전 이후의 서독처럼 만약 한국이 균형발전을 추진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과 농촌에 자원을 분배하고 품질 중심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지금의 부동산 중심 구조(65~80%)와 저출산 문제가 줄었을까. 하지만 1961년 당시 예산 1억달러, 기술취약, 인력부족(문맹률 30%)과 북한위협의 상황에서 아마 선택과 집중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서독과 같은 균형 발전은 경제성장 속도를 늦춰 40년 내 1만 달러 도달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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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한국과 독일의 경제성장 비교

#life #mexico #krsucces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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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나 겁나요.
자식들이 살아갈 터전인데요. ㅎㄷㄷ

제목은 시청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조금 강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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