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흉터

in #krsuccess20 days ago (edited)

<괴물들: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평소에 무척 즐겨 듣고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좋아한다. 전문가들은 그 음악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어떤 음악은 인류라는 종이 창조해 낸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추앙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지다. 그런데 그 음악을 만든 자가 쓰레기 같은, 괴물 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그 음악을 즐겨 들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흔히 생각하기에 이런 질문의 답은 이분법이나 흑백논리처럼 쉽게 둘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하는 것. 예술가의 범죄는 비판하되 훌륭한 예술작품은 즐기고 소비한다. 두 번째는 그 예술가와 작품 모두 자신의 삶에서 깔끔하게 ‘캔슬 cancel’하는 것. 물론 그 범죄의 정도에 따라 ‘캔슬’의 정도 역시 세분화할 수도 있다.

저자는 당연하게도 이런 단순한 흑백논리만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저자와 주변 지인들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들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며,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어 문제의 초점을 가해자와 가해자를 지지하는 시스템에서 개인 소비자로 옮긴다. … 개인의 해결은 자유주의적 계몽주의자들의 이상이라고 말한다. … 당신이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당신을 나쁜 사람 혹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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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그 예술가에게 직접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가해자의 음악(예술)을 ‘결코’ 좋아할 수 없게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 놈들이 좋아했던 것까지도.

몇 년 전에 영화 ‘굿 윌 헌팅’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무척 좋았다. 영화 끝부분에 엘리엇 스미스의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순간 ‘그놈 1’이 무척 좋아했던 노래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영화의 감동이 반감되었다. … 얼마 전 유튜브에서 ‘슬레이어’가 나왔다. 즐겁게 감상하다가 문득 ‘그놈 2’가 무척 좋아했던 밴드라는 기억이 떠올라 즐거움이 뚝 떨어졌다. ‘그놈 1’과 ‘그놈 2’는 모두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뮤지션이다.

‘직접’ 피해를 입게 되면 그 경험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뇌에 새겨진 흉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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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괴물들’의 저자는 누군가에게 망가질 수도 있지만 ‘나’ 역시 누군가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