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 있는, DMZ 평화의길 18코스를 가다-2 남대천(南大川)
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 있는, DMZ 평화의길 18코스를 가다-2 남대천(南大川)
백골부대(3사단)는 6사단(청성부대), 8사단(오뚜기부대)과 함께 5군단 예하부대로 같이 임관한 동기들이 한 명씩은 모두 배치되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흑표부대(제13공수특정여단)에 배속된 동기와 더불어 힘들고 외로웠던 군생활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장교라해도 직업군인이 아닌 이상 병역의무를 완수하기 위한 목적에서는 병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전방에서는 거의 비슷한 나이라해도 소대장과 소대원이라는 차이는 상상외로 커다. 일선 GOP같은데서는 소대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곳도 있었다. 지금은 어림없는 얘기지만…
전방에 처음 발령받은 신참 소위가 겪는 어려움은, 여자가 처음 아이를 낳는 고통에 비견될 만큼 힘겨울지도 모른다. 소심하고 비쩍 마른 체형의 나 같은 소위는 병사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기 십상이었다. 그들은 갓 부대에 배속된 신참 장교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괴롭힘을 자행하곤 했다.
온 지 일주일쯤 지난, 처음 당직 섰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내부반에 병사들하고 같이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신참하사 하나가 총을 들고 내게 대들었다.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나를 겁주기위한 고참 하사관들의 지시였다고 생각되었다. 그날 내가 그 하사의 위협에 굴복했다면 나는 고문관 장교로 하사관들의 호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직감적으로 목숨을 거는 도박을 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난 차분하게 왜 총을 가지고 들어왔느냐 날 죽이고 싶으면 죽이라고 총부리에 배를 갖다 되었다. 250명 중대원들의 500개의 눈이 날 향하고 있었다. 저놈이 어떻게 대치하는지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빨리 쏘라고 고함을 질렀다. 기에 질린 하사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적을 쏘라고 주어진 총을 소대장에게 겨누는 행위는 거의 사형이 준하는 범죄이다. 누군가의 지시 없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는 총을 내려놓았고 무릎을 끓었다. 난 그를 용서해 주었고 부대를 떠날 때까지 나의 가장 신뢰받는 부하가 되었다.
고성 남대천(高城 南大川)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일대있는 하천으로 고성군 죽왕면 오봉산에서 발원한다. 동해 화진포로 빠져나간다. 최북단 DMZ 인근에 위치한 하천으로,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철새 도래지로, 겨울철에는 고니, 기러기, 오리 등 다양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평화의길 남대천 코스가 조성되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주변에 북한 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 아름다운 석호로,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등이 있는 화진포호, DMZ 박물관, 고성 평화전망대에서는 금강산 일부를 본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며,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구 습지에는 갈대밭이 조성되어 있어 생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변 지역 주민들의 농업 용수 공급원으로 활용되고 휴식 공간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된다.
허…… 소대장한테 총을요?
군사재판감 아닌가요?
거의 총살감이죠. 당시에는 총기사고도 많았습니다. 군 내부에서 죽어도 거의 발표도 안되었고...
저희 부대가 해안방어라 전방이랑 비슷하게 돌아갔었는데 신임 소대장 길들이기가 있었습니다.
해안 벙커에 한번 들어가면 짧으면 2~3일 길면 몇주까지 투입되었는데 밥차 올때 맞춰서 일부러 수색정찰 나가는식으로 소대장 밥 굶기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러지 않겠지만 그때는 위에서 고참이 까라면 까야하고 말도안되는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웃긴 일들이 많았던거 같습니다.
특히 전방에서는 고참하사관들이 신참소위 군기 잡으려고 지랄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겠네요. 텃세라는 게 어디나 있어서...
그 당시에 잘 대처 하셔서 정말 다행 입니다
소대장에게 총을 겨눈다라 ...
절대로 있어서도 안되는 일을 ;;;ㅠ.ㅠ.
와~ 정말 말도안되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벌어졌었군요.
그래도 해피엔딩(?)이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