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인생 영화 <미스트> - 스티븐 킹 가라사대 "인간은 원래 별로라네."
"인간이 가진 멍청함의 힘을 결코 무시하지 마라."
세계 3대 SF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로버트 A. 하이라인이 한 말입니다. 살아보니 "인간은 합리적이다."만큼 위험하고 잘못된 가정도 없더군요. 투자든 인간관계든 사람이 이성적으로 움직일 거란 전제를 깔고 판단하면 큰 코 다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충실하게 현재를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지금 자기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미리 머리 쓰는 일은 잘 하지 않습니다. 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잘 풀린다거나, 또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주제의 책은 잘 팔려나죠.
"코인은 떨어질거야."
"너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작전주였고 영원히 그 가격으로 회복되지 않아."
"넌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야. 인연이 닿지 않은게 아니라 그저 괜찮은 사람이 네 주변에 올 일이 없을 뿐이야."
이런 결론은 보통은 미리 나오지 않습니다. 죽을만큼 두들겨 맞은 뒤에야 겨우 인정하게 되죠. 자인하는 시점에는 이미 해결하기 늦은 경우가 많지만요.
아마 이런 현세 기만의 끝판왕은 종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오늘 만족도'가 높습니다. 주로 무신론자가 많은 미국 동부 고소득층 민주당 지지자들에 비해 복음주의 기독교를 믿는 남부 레드넥들의 행복지수가 훨씬 높죠.
힌두교도들은 자신이 가난하고 차별받는 것은 전생에 죄를 지어서라고 믿습니다. 오래 전 러시아 농노들은 내세의 천당을 고대하며 고된 노동을 감내했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전생에 찾거나 걱정 근심 없는 영원한 천국을 기다리는 것은, "넌 한번 뿐인 인생을 사회 밑바닥으로 살고 있고 목숨 걸고 혁명이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어."라는 현실에 직면하는 것보다 그 날 하루를 훨씬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임이 분명입니다.
소수의 통치 계급들은 이런 인간의 심리를 파악해서 아주 손쉽게 사람들을 지배했습니다.
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부유한 영애인 박근혜를 위해 태극기를 들었을까요? 그것은, "너희는 산업화의 역군이며, 지금 네가 어떤 자리에 있든 조국의 번영을 위해 쓰여진 네 삶은 충분히 가치 있었어."라는 그 믿음을 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그들은 지배층에게 개돼지마냥 이용만 당하고 모아놓은 재산도 없이 불행한 노년을 보내는게, 한 번 밖에 없는 그들 삶의 정확한 결과물임을 인정해야 했으니까요.
영화 <미스트>는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 어리석음의 무지막지한 힘, 그리고 이 힘을 잘 이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동가들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서구 영화이다 보니, 스티븐 킹은 기독교를 주로 깠습니다. 일단 영화의 흐름을 따라 먼저 기독교에 대해 서술하겠습니다만 이 영화 속 기독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열린 사회에 반하는 모든 선동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영화 <미스트>에 등장하는 기독교는 현실의 기독교다, 이단 아님
이 영화의 카모디 부인은 상당히 희극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성경도 막 제멋대로 해석하고요. 얼핏 사이비나 이단처럼 보일 수 있죠. 그렇게 결론 내리면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별로 이 영화를 불편하게 볼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게 스티븐 킹의 노림수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관람객 수는 많을수록 좋고 북미에서 여전히 기독교인들 수는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만약 기독교계에서 이 영화를 비판하면,
"헤헷, 그 카모디 부인 하는 행동 보셨잖아요. 걔 사이비에요."
이렇게 도망칠 수도 있죠.
근데요, 성경을 다섯 번 정도 읽고 교회를 꽤 오래 다닌 제가 봤을 때 아쉽지만 실제 역사 속 기독교와 카모디 부인의 기독교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요즘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로 미화되곤 했습니다만 사실 기독교는 이슬람 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며 전파된 종교입니다. 기본적으로 싸움의 종교에요. 그 예수님은 다음 같은 말씀도 하셨어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4-36)
일단 다른 종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열심히 전도를 하러 선교사들 파견을 하러 다닙니다만 기본적으로 그 교리 자체가 "기독교를 믿는 소수"와 "다수의 불신자들" 구도에서 세상 종말이 오고 불신자들은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가는거죠.
"심판이나 종말 이런 것 없이 우리 현실에서 한 번 천국을 만들어 봅시다."
아름다운 생각 아닙니까? 근데 이런 주장을 설파하는 교단은 이단으로 몰려 배격당하는게 기독교입니다. 성서 속 요한계시록은 비유의 산물이 아니라, 철저히 미래에 대한 묵시로 이해되고 있죠. 즉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전 세계의 파멸인 겁니다.
만약 영화 <미스트>처럼 초자연적 위기 현상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분명 세상의 끝이 왔다고 생각할 것이고 회개를 촉구할거에요. 제가 쓰는 글의 논지에 좀 화가 나실지 몰라도 만약 당신이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제 말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홍수나 지진 같은 늘 있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 가지고도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며, 고소해하는 목사님들이 기성 원로로서 존경받습니다. 전 세계적인 위기가 닥치면 합심해서 극복할 생각을 할지, 아니면 회개하라고 윽박지르는 짓을 할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아니 그나마 회개하라고 윽박지르는건 그래도 인간미라도 있을텐데....... 불신자 친구가 자기보다 잘 사는걸 보고 늘 배가 아팠던 모 기독교인은 너 이제 조금 있으면 지옥간다고 히히덕거릴지도 몰라요.
이 영화는 기독교가 위기 상황에서 인간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죠. 특히 카모디 부인이 자기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고, 피가 흘러 나왔으니 나는 신과 더 가까워졌노라고 말하는 장면이 백미입니다. 흔히 보는 비싼 정장 입은 목사님들이랑 하는 행동이 다르니까 관계가 없는 것 같죠? 이건 기독교를 아주 신랄히 비웃은거에요.
피에 의한 정화와 제물에 의한 구원.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군요. 일단 인신 공회를 일삼던 고대의 종교들이 보이고요, 그 위에 예수 보혈과 대속을 외치는 기독교가 오버랩되는군요.
아즈텍 인들은 이웃 부족을 납치해서 산 채로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냈죠. 페니키아 인들은 장남을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기독교의 모태 유대교는 소나 비둘기를 잡아와 번제를 드렸죠. 성경의 신명기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이 번제라는 제사 방식은 상당히 잔인해요. 인간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동물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입니다. 먹고 살자고 사냥당한 것도 아니고, 좀도둑질을 하거나 옆집 아줌마랑 간통을 한 어떤 이스라엘 아저씨의 죄를 씻기 위해 묶이고, 찢기고, 마침내는 불태워지는거에요. 소름끼쳐 죽겠네요.
아니 도대체 다른 생명체가 죽으면 자기 죄가 씻어진다니 그 무슨 발상입니까? 이런 원시적인 생각이 어딨나요? 맙소사! 옛날 유대인들은 착하게 살 필요 하나도 없었겠네. 맨날 죄 짓고 다니고 죄 지은 수 만큼 비둘기나 태워죽였으면 됐을테니.
예전 비즈니스 차원에서 교회를 다닌 제 친구가 해준 말이 있어요. 그것은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세속적으로 담백하게 만난 사람들보다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이 운이 나빠 그런 사람만 골라서 만난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게 경험이 쌓이고 사례가 누적되다보니, 어느 시점부터 이 친구는 그걸 일반화시키기 시작했다는군요. 나 모 교회 장로요, 집사요, 이런 식으로 말하며 친한 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주말에 교회 가서 눈물 흘리고 회개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깔려서는 아닐까요? 착하게 살아도 소용 없고 예수만 믿어야 천국 갈 수 있다고 믿는 종교는 이렇게 위험합니다.
기독교의 예수 대속에 대한 믿음은 인신 공양 종교의 한 변형된 형태일 뿐입니다. 물론 신의 아들이 자청해서 죽었다는 점에서 꽤 감동적입니다만 예수의 신성은 니케아 공인회에서 인간들끼리 격렬히 토론해서 간발의 차이로 채택된 하나의 '설'일 뿐입니다.
근데 이런 걸 보고 비웃으면 안 되요. 사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영화 <미스트> 같은 상황에 처하면 이런 무시무시한 종교 이론을 의심 없이 신봉할 여지가 아주 높거든요. 자 좀 더 이 영화를 살펴봅시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공포 마켓팅의 유구한 역사
일단 이 영화와 가장 흡사한 시기, 중세 암흑기로 가 봅시다. 사람이 하나 태어나면 스무살까지 살 가능성이 고작 25%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여기서 마흔까지 살 가능성은 또 25%네요. 사망자 비율만 따지면 세계 대전보다 더 끔찍하네요. 영화 <미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저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괴생물체들이 사람을 막 죽여요. 사람들은 곧 이성의 탈을 벗기 시작하죠.
여자 주인공이 묻습니다.
"우리는 문화인이잖아요. 선하고 서로를 도와주는 존재 아닌가요?"
그러자 주인공 남자가 대답합니다.
"그건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갈 때의 이야기죠. 지금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든 제물을 바치는 데 동조 할 껍니다."
여기서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갈 때'로 번역된 표현의 원문은, 'if our machines are working'입니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존엄을 갖추기 시작한건 기계가 등장하면서부터에요. 예전 아네테 시민들처럼 민주적이면서도 윤택한 삶을 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노예들이 대신 일을 해주었기 때문이죠. 일단 인간는 기계 등장 전까지 자연 재해의 피해를 그대로 감수하며 살아야 했어요. 한 번 터지면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나가는 전쟁이나 전염병, 야생 동물, 배고픔 등등, 어떻게 태어나긴 했는데 태어나고 보니까 그냥 괴로운 일 밖에 없는 겁니다. 그 고통 속에서 뭔가 믿을 만한 것,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죠.
사실 합리적인 답은, "그냥 넌 두 남녀가 섹스하고 배출해낸 체액의 결과물일 뿐이고, 농노로 태어나서 평생 일하든 왕자로 태어났지만 갑자기 반란이 일어나 탑에 갇혀 굶어 죽든, 이 광대한 우주는 네 운명에 아무 관심이 없어."일지도 모르죠. 너무 인간의 존재를 폄훼한다고요? 근데 제 생각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나는 신의 모사고 선택 받은 소중한 존재니 여기 해당 안 하는 사람들을 막 죽여도 된다는 이상한 결론은 안 나올 것 같네요. 자기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적어도 행복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괴롭히는 일도 덜 하겠죠.
근데 그렇게 믿으면 일단 본인 인생이 불행하고요, 지배 계급 입장에서는 얘네들이, 자기를 위해 전쟁터로 대신 싸우러 가질 않아요. 게다가 그런 유물론적 사고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면 없으면 픽픽 자살할테니 노동력이 손실됩니다. 이쯤되면 성경 어딜봐도 나와있지 않은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기독교의 교리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알 것 같군요.
여하간 사람들은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고 싶어해요. 그리고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죠. 카모디 부인은 괴물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사람을 산 채로 제물로 바칩니다. 그날 밤 정말 괴물들은 마트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건 단순히 우연이었겠죠. 그날이 마침 괴물들의 라마단 시즌이라 단체로 금식을 했다던가 등등. 독을 가진 벌레가 카모디 부인을 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죠. 카모디 부인이 신앙인이라 쏘지 않은건지, 체취가 너무 독해서 피해간건지는 아무도 몰라요.
기도 같은거 하지 않아도 어차피 될 일은 되게 되어 있고 가끔은 암도 자연치유됩니다. 근데 결과가 맞으면 기도해서 됐다고 인과관계를 갖다가 붙히죠. 저 두 사건을 계기로 카모디 부인의 추종자들을 급증합니다.
종교가 발전하고, 인신 공회나 마녀 사냥이 허용될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어리석은 확증편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한 두 번의 행운으로 영적 지도자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어차피 마흔까지 살 가능성도 희박하고 평생 허리 굽도록 농사 지어야 하는 중세에서 한 번 해볼만한 도박 아닙니까?
"저 여자 마녀입니다, 제 말대로 저 여자 불에 산채로 태우시면 내일부턴 전염병 싹 사라집니다."
운이 좋게 다음 날부터 전염병이 사라졌네요. 그럼 이 변태 싸이코 새끼는 그때부터 영적 지도자가 되는거에요. 일단 한 번 믿음을 얻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사람들은 믿음에 현실을 맞추어 해석하기 때문에, 좀 틀려도 상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제물을 바쳐는데도 괴물들이 쳐들어 왔다면, 제물과 습격은 아무 관계가 없다가 아니라 제물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버리게 되는 것이죠.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패전한 결정적 이유는 인적 자원의 부족입니다. 이들은 첫째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을 자행했죠. 당연히 카르타고의 인구수는 로마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풍습이 있어서 카르타고는 부유했음에도 그 시민권은 별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르타고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패배 원인을 비합리성에서 찾지 않고 신에 대한 정성의 부족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어린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카모디 부인을 욕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을 숭배한다
이런 종교는 형태를 바꿔 지금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당신의 재산을 빼앗고 딸들을 창녀로 만든다고 선동한 괴벨스. 부르주아만 타도하면 지상낙원이 올거라고 말했던 레닌, 화교가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하다고 선동한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 극단주의 세력 등등.
좀 먹고 살만해야 생각도 하고 그러죠. 지금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전세계적으로 마초 지도자들이 득세하고 그 유럽조차 징병제를 재검토 중입니다.
가난한 대중은 선동하기 참 쉽습니다. 악한 소수와 선량한 다수로 편을 가르고, 다수에게 악한 소수가 모든 악의 근원이고 얘네들만 죽이면 된다는 식으로 말해서 다수를 점거하고 그들의 분노를 이용하죠. 분노한 사람들은 현상의 진짜 원인에 대해 따져보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생각하기를 귀찮아했는데, 대신 이유를 설명해주는 지도자가 참 고마울 수 없을 겁니다. 보통은 거기까지 생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회든 간에 그 자리에서 고생하고 있지도 않을테니까요.
카모디 부인은, 이 모든 사태가 군대에 의해 일어났다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등병 두 명을 그저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하죠. 역사를 보아도 이런 사례는 흔합니다. 볼세비키들은 채 사춘기도 되지 않은 러시아 귀족의 딸들을 집단으로 강간한 뒤 살해했고, 평범하고 선량한 독일인들은(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대부분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나치 병사들의 행낭에는 보통 성경책이 들어있었음요) 유대인들을 가스 수용소로 보냈죠.
한국 사람들은 관동대지진이 났을 때,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이 우물에 독을 넣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을 들으면 이를 갈지만 저는 가끔 모 포털에서 조선족들 마을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댓글을 보면 겁이 나요. 지금이야 그냥 입으로 떠들고 말겠지만 만약 금융 위기나 재난이 닥쳐도 이게 아가리 파이팅으로 끝날지 두렵습니다.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 상당수는 저소득, 저학력자들이 많습니다. 원래 이 집단은 어디나 범죄율이 높습니다. 조선족이라서 특히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게 아니란 말이죠. 오원춘을 욕하지만 지존파가 인육을 섭취하고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범죄자가 있다고 한국 사람들이 모두 끔찍한 종자들입니까? 당장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과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들 간 범죄율 비교라도 좀 해보세요.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 중년 남성들만큼 이미지가 나쁜 집단도 없습니다.
아래는 제가 좋아하는 버나드 쇼의 격언입니다.
2%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3%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95%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잘난 척 하고 있다만 저 역시도 저기 2%안에 들어가는지 상당히 의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존재 가치가 위협을 당하거나 아니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비판을 수용하는데에는 인색합니다. 즉 사람은 언제나 의심하는 버릇이 있어야 한다는거죠. 특히 자기 자신을요.
스티븐 킹의 <미스트>는 비이성적 인간의 어리석음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는 소위 자신들이 '생각한다'고 믿는 이상주의자들 역시도 함께 까고 있어요. 자 이제 이 영화 감상의 마지막 단락을 보시죠.
휴머니즘의 역설
저는 이상주의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상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선함이나 지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가지는 관념인데, 군체로서의 사람이 선하다거나 이성적이라는 증거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혹시 제 글을 통해 제 정치색이 왼쪽이다라고 오인할 분들을 통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북한은 한민족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만큼 병신같은 순진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무슨 짓을 할 짓을 할지 모릅니다. 특히 북한처럼 한 명의 인간이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나라라면 더더욱요. '민족'이라는 그 어떤 종교보다 피지배층을 통치하기 쉬운 그 껍데기에 사로잡혀,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 하나 잘했다고 북한을 정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뇌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보통 현상을 이상론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런 이상한 결론에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죠.
현상을 해결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아마추어리즘으로 접근하지 말라는거죠. 제 3세계 개발도상국 아동들의 저임금 착취를 해결하기 위해 벌어진 불매운동은, 다국적 기업의 철수를 야기했고 일 자리가 사라진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징집되거나 아동 매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하지만 사실 별다른 대책도 없는 휴머니즘. 스티븐 킹은 이 영화를 통해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의 아마추어리즘을 아주 교묘히 비웃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약하고 악한 존재이니, 얼마간의 인간애가 있든 없든 거기서 거기, 그저 운 좋으면 살아남는 거고 거기 이유는 없다. 정도가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영화 <미스트>에는 인간애를 가지고 영웅적인 행동을 하면 죽는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바깥을 탐색하기 위해 끈으로 자기 허리를 두르고 용감하게 마트 밖을 나간 남자는 끔찍한 시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이 남자는 마트를 나가기 전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존재라고 카모디 부인에게 설파하지만, 그 말 직후 끔찍한 시신이 됨으로써 결국 카모디 부인의 신앙을 증명해버리죠. 동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창을 들고 싸운 남자, 난쟁이라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했지만 결정적 순간 괴물들을 쏘아 죽였던 주 사격대회 우승자 출신의 남자들은, 모두 괴물들에게 잡아 먹힙니다.
집단의 광기에서 벗어나, 용감히 탈출을 시도했던 주인공 일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비참하게 죽습니다. 반면 군 부대의 이동 속도를 고려했을 때 대형마트에서 악행을 자행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존엄을 보여준 인간들이 더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한거죠.
아쉽게도 원래 인간 역사는 이딴 식이었습니다. 재판에서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진술을 번복한 갈릴레오는 명성을 얻었지만, 진술을 번복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 조르다노 부르노는 혀가 바늘에 꿰매진 채 화형을 당했죠. 그리고 그는 역사의 무관심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정의가 이기고 희생이 보상 받는 것은 전래 동화나, 할리웃 영화의 클리쉐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2%에 해당하는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에 대한 스티븐 킹의 답이 참 소름 돋는군요.
영화 <미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잘 보세요. 군 부대가 제공한 보호 차량을 타고 지나가는 아줌마가 주인공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영화 초반부, 대형마트에서 가장 먼저 나간 여자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남습니다. 아마도 일찍 군 부대와 조우한게 아닐까 싶군요. 그녀는 분명 마트 안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 있음을 보고해서 일찍 군대가 오게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군 부대는 아주 뒤늦게야 마트에 오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어쩌면 그녀는 군 부대에게 이 마트 안의 사태를 알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방기한 것 아닐까요?
그냥 관심 끄고 자기 살 길 찾으라는게 스티븐 킹의 결론입니다. 참 냉정하죠.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아마 그게 답일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그게 틀렸다는 어떤 반증도 해낼 수가 없으니까요.
다만 하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하간 지금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었던 시대를 거쳐 그나마 인간이 이 정도의 권리와 문명의 도움을 받게된 것은, 침묵하는 똑똑한 소수가 아니라, 좀 덜 똑똑할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었다고요. 그래도 우리는 조금은 더 나아졌죠.
행동하지 말라는 것도 분명 염세적인 극단론입니다. 단 행동이라는 것은 늘 양날의 칼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기 신념을 위해 움직이면 여러 사람이 피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죠? 네 자신을 알라고. 그냥 모르면 조용히 있는게 도와주는거에요. 그래서 스티븐 킹이 차라리 무관심하게 방관하라고 말한 것이고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움직이고 싶다면 스팀잇 같은 이런 공간에서 끝없이 사유하고 성역 없이 비판하며 이 과정 중에 배우고 더 발전해야 하는 겁니다. 누구 말이 맞다더라, 하고 우르르 쫓아다니지 말고요. 물론 저부터 그래야겠죠.
고작 두 시간 안에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다 담은 이 영화에 찬사를 보냅니다. 실로 제 인생 영화라고 꼽힐 작품이군요. 주말에 별 약속 없으신 분들께 관람을 권합니다.
미스트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예요! 스티븐 킹 원작 영화중에서는 손꼽히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원작 소설과는 결말이 조금 다르지만, 저는 영화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들더라고요. 스티븐 킹도 영화만의 결말에 만족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이렇게 얼버무립니다ㅜㅜ) 글을 읽으면서 요 며칠 스팀잇에서 있었던 일을 보며 느꼈던 여러 감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느 곳이나 인간 군상이 모인 곳, 그리고 이익이나 생존을 위해 다투는 곳이라면 동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곱씹어서 관람할 가치가 충분한 영화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란 관점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입니다.
현실에서도 이상한 것을 믿는 경우가 참 많지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처음 보면 괜히 기분나쁘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영화.
근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
결국 다시 한 번 보게 만들고, 그 기분나쁨이 내면의 방어기제였음을 발견하게 하는 영화....
불편한 팩트폭행...
영화외적인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본문의 논조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영화에 대한 찬사는 정말 동의합니다.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부분이 있는건 맞습니다 ㅎㅎ 사실 그에 대한 동의를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모든 사람이 염세적이고 비판적이면 그건 그것대로 매우 심각한 문제겠죠.
관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 부분을 잘 골라내어 재밌게 읽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
단순한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깊은 생각이 담긴 영화였군요.
곧 시간내어 보겠습니다. 풍류판관님의 깊은 생각들에도 감탄합니다.
저도 집단 이기주의에 혐오감을 갖고 있어서 종교를 믿지 않거든요.
ㅎㅎ 시간나시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kyunga님이라면 역시 틀림 없이 재밌게 관람하실 겁니다 ^^
개인적으로 저는 종교의 악기능이 순기능의 5배 정도는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저도 전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마지막 결말까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하는 영화에요.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오히려 그게 슬래셔 무비보다 훨씬 잔인하고 충격적이었죠, 피도 눈물도 없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것이 어느 시대에나 리얼리스트가 필요한 이유겠지요.
마침 요즘 넛지를 읽고 있는데 풍류님의 적절한 글까지 읽으니 더 와닿습니다. 그래도 행동에 관해서는, 모르면 가만있어라, 보다는 넌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내가 먼저 보여주겠다가 더 멋진 것 같습니다 :)
미스트를 아직 보지 않아서 풍류님 권유대로 시간내어 봐야겠습니다!
이 리뷰는 원래 리틀 포레스트 쓰기 전에 워밍업으로 오래 전 썼던거를 퇴고나 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건데, 너무 시간을 많이 쏟았네요 ㅋㅋㅋ 내일 중 리틀 포레스트 리뷰도 올리겠습니다.
꼭 보세요 ㅎㅎ pistol4747님은 분명 재밌게 보실 겁니다 ^^
앗 마침 저도 리틀 포레스트 원고를 거의 다 다듬고 있었습니다! 벌써 기대가 됩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어릴적 괴물 나오는 영화라 좋아 했었는데
이런 뜻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ㅎㅎ
ㅎㅎ 해석하기 나름이죠 ^^
단순한 괴물 영화로서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열광했던 영화 미스트...
영화에 대해 쓰신 내용이 제 생각과 넘 같아서 읽다가 살짝 전율이..ㅎ
재밌는 영화한편 추천할께요.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
안보셨다면 추천합니다
너무 저평가된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맨 프럼 어스, 네 꼭 보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dustfree님 ^^
이 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정말 감동입니다. 판관님의 사유의 폭과 깊이는 참... 부럽습니다~ 가즈앗!!! ^^
ㅎㅎ 늘 과분한 평가 감사드립니다. 매일 수 많은 스티미언들의 글을 읽으시고 격려하시는 조선생님의 열정적인 활동이 부럽습니다. 가즈앗~!!! ^^
판관님이 쓰는 글과 같이 쓰려면 아마 댓글과 리스팀을 그리 활발히 못할 듯 합니다. 전 흉내낼 수 없는 글이라 늘 기다려집니다 ㅋ 가즈앗!!
아동노동력 착취와 관련된 단락에서 씁쓸함이 몰려오네요.
저는 3%에 속하는 것 같네요. 생각하는 척 하는 인간말이죠. 저는 타인에게 이성적인 척하지만 최우선 순위에는 저의 행복이 있기에 특정 상황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성담긴 포스팅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저는 홀로 여행을 떠날 때 영화를 몰아보는 편인데 꼭 기억해뒀다가 '미스트'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주말되셔요!
저도 아마 그렇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의 문제에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는 척을 하면서도 당장 본인 삶에 당면한 과제는 본인 편한대로 해석하기 나름이지요... 그래도 뭐 조금씩이나마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 생각하는 버릇이라도 있다는건 아예 생각하는걸 안 하려드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부족한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중에 시간나실 때 꼭 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