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능력의 한계, 언어의 한계, 사고의 한계
언어가 사고의 틀을 제한한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제2언어 학습이 유리한 시기가 있다는 이론과 맞물려 학부모들이 경쟁적으로 자식들에게 제2언어 교육을 강요하도록 하기도 한다.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학습이 유리한 기간에 제2언어를 습득시키겠다는 것이다. 제2언어 능력이 있는 아동들이 정신적으로 발달했다는 연구들도 있는만큼 학부모들이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인지의 틀을 제공하며, 언어적 표현의 틀을 제공할 뿐이지 사고를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수를 모른다고 많고 적음에 대한 사고 자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매듭법을 모르는 사람은 산악인, 뱃사람이 매듭 짓는 법을 구분하여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매듭 짓는 법을 지켜보게 한 후 표현하게 한다면 '매듭 짓는 사람'이라 표현하지, 그 매듭의 용도를 알지도, 그 매듭의 이름을 알지도 못 한다. 하지만 뱃사람의 매듭, 산악인의 매듭을 나란히 두고 둘을 구분하라고 하면 둘을 구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매듭의 형태, 용도, 이름에 대해 학습시킨다면 이전에 보았던 매듭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그들의 직업을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Sorry'와 '미안'은 용법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안'이라는 표현만 알고 살았던 한국인도 'Sorry'의 용법에 대해 배우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평생 언어적인 표현이 가능한 수단이 없이 살았던 사람도 표현이 가능한 수단을 학습한 이후에, 학습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표현할 수 있다. 언어적 능력이 없다는게 사고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서 언어는 사고의 틀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2언어 능력이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에서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사실 굉장히 간단하다. 제2언어 능력이 있다는건, 더 많은 환경에 노출되었고 더 많은 경험을 의미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발달 했다는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특히나 제2언어 능력과 아동의 사고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언어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그렇다면 언어적 환경에 노출이 많은 아동이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왜 놀라운가? 내가 보기에는 "하루에 축구만 1시간 한 아동에 비해 하루에 축구 1시간, 농구 1시간 한 아동이 축구를 더 잘 하더라"와 큰 차이 없게 느껴진다.
생각을 언어로 하느냐, 아니냐는 오랜 논란이 되는 주제다. 언어능력이 없는 사람도 생각할 능력은 있지만, 이와 별개로 언어를 이미 습득한 사람의 모든 인지와 경험은 언어를 토대로 일어났고, 따라서 생각 또한 언어를 토대로 하는게 아니냐는 가설도 존재한다. 내 주관적인 경험은 그 가설에도 반대한다. 때로는 이미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그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일이 어렵다. 머릿속에서는 명쾌한 생각이 말 혹은 글로는 명쾌하게 표현되지 못 한다. 나는 언어의 형태로 생각을 하고 생각을 그저 받아적듯 표현하는게 아니라, 생각을 언어로 번역하듯 표현한다. 물론 내 주관적인 경험이란 그 어떠한 신뢰도도 갖지 못 하고, 혹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어능력의 한계인지, 언어의 한계인지, 사고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내 머릿속에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명쾌하게 모든게 해결된 것 같은 순간임에도 나는 도저히 그 생각을 옮길 표현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이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던 생각이, 무언가에 부딪쳐 길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좋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손이 닿는 곳에 메모를 위한 도구를 두고 생각이 떠오른 즉시 이를 언어로 번역하여 기록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항상 실패한다. 과연 이는 머릿속에서 흘러간 생각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언어의 한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사고의 한계로 순간적인 번득임을 정리하지 못 했을 뿐일까?
글을 마무리하려다가 문득 가끔씩 나에게 찾아오는 자극이 생각났다. 충동, 느낌, 감정 중 어떤 것도 그 자극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꼭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나는 "부정적인 자극" 내지는 "육감"이라고 표현한다. 부정적인 자극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불쾌함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오기 때문이고, 무언가를 피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긍정적이라 표현하기는 어려운 자극 아닌가? 하지만 육감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문득 그 자극을 느꼈다.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자극은 결코 무시할만큼 약하지 않기에 나는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며 그 자극의 원인을 생각해보니, 내 지갑에는 현금이 없었다. 그리고 그 길로 건너면 ATM이 한동안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현금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자극이지만 분명 하나의 사고이긴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이었을까? 공황발작이 찾아오듯 부정적인 자극이 찾아왔는데, 우연히 그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황발작조차도 뚜렷하게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유는 있지 않은가?
스포츠 선수들이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주고, 그게 극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때 인터뷰어가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냐고 묻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인터뷰를 보고 그 선수의 동물적인 감각이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선수의 뇌가 의식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설명할 언어적 능력이 없는 선수들은 "그냥."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사고를.
확실히, 언어능력의 한계, 언어의 한계로 그 사고를 명확하게 남에게 전달하는게 어려울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 사고가 불가능하며, 존재하지 않는건 아닌가보다.
저는 언어가 사고의 폭을 제한한다고 생각해요.
단어는 어떤 뜻이나 개념에 매여있을 수 밖에 없고, 경계가 없는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꺼내려면 결국 언어라는 장벽을 만나게 되니, 유리천장처럼 표현될 때는 원래 생각에서 어느정도 재단되는 것 같아요.
의식적인 사고가 전부인건 아니니까요.
저도 언어가 사고의 폭을 제한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는, 우리는 언어로 생각을 표현할 때 사고의 폭을 제한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이 각 나라마다 다른 단어와 표현들일 것이구요. 각 나라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들이 그 나라만의 독특한 단어로서 나타나는 거죠.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한'이라는 단어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느낌이 있겠구요.
이런 느낌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건 참 어렵죠.
정리하자면
어떤 현상 자체는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자체의 의미는 언어라는 형식에 제한되어서 일부만 표현된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의미를 100%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물론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표현 모두 공통)
죄송합니다.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것도 언어적 표현의 한계일까요..? 아니면 그냥 저의 한계일까요;;;;
제 경우엔 글쓰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정리가 촥 되고 결론도 나왔는데, 막상 글로 쓰면 제가 생각한 바의 절반도 전달을 못 시키네요 ㅠㅠ
너무 자책하지 않고 끊임 없이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겠죠. 누구나 다 그럴거에요.
흥미로운 주제라 댓글 달아봅니다. 언어가 한계를 갖는 건 삶을 추상화한 기호이다보니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느낌 같은 것을 언어로 온전히 표현하기 어렵구요.
저는 그럴 바에야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생각의 방향에 주목하자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논의들이 스팀잇을 풍성하게 하리라 봅니다
역시..
리스팀합니당
성격이론에서 말하는'직관', .통찰을 잘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혹시 에니어그램이나 MBTI 받아보셨나요? ㅎㅎ 재미있습니다.
언어--농구, 축구를 아우르는 넒이를 얻게된다는 것에 완전 동의합니다. 저는 힘들지만요,
언어로 보자면 한국말로 영어의 have pp시제를 설명할 수 없듯이 한 언어를 습득하는것은 한 문화에 들어가는 일이죠.. 하지만,
통역학?에서볼때모 언어를 충분히 익힌 후에야 2차 언어를 익힐 수 있는데 , 어릴 때 영어공부는 모 언어의 부족으로 언어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합니다. 둘다 어설플수 있다눙 -^ㅡㅡ^MBTI는 여러번 받아보았지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영어의 시제를 한글로 설명하는게 어렵지만 이에 대한 사고가 없지는 않습니다. 만약 이에 대한 사고 자체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영어 습득 이후에도, 개념을 이해하는게 불가능하겠지요. 말씀처럼 문화가 다를 뿐이지 사고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 현상의 원인이 제2언어 습득 자체가 문제인지, 제2언어 교육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일들에 의한 영향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랑 친하게 못지내온 탓에 스티밋을 함에 한계를 많이 느끼는 요즘에야 비로서 독서란 것을 조금 하고 있습니다ㅜㅜ 언어능력의 바운더리를 넓혀보려구요ㅎㅎ
좋은 책을 많이 만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아이가 어렸을때 아이뇌는 말랑한 천재라는 발상을 가지고 영어공부를 시도한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생각도 바뀌었지만...
인간의 언어로 정확히 표현해 낼수 없는 것들 그런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언어의 위대함과 더불어 불완전성을 가끔 느끼기도 합니다
킴리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jsj1215 께서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언어는 인식을 제한하지 않습니다.일련의 실험들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있습니다. 독일어를 쓰면 논리적이 되고 프랑스어를 쓰면 감성이 풍부해진다는 식의 주장이 많았는데,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어 화자는 음악을 잘해야하고 한국어 화자는 예의발라야 하는데 어디 그렇습니까? 언어는 문화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지 그 원인이 된다고 보지않습니다. 관련해서 나중에 저도 레퍼런스를 들고 포스팅해볼 계획인 주제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언어가 인식을 제한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각각의 언어 사용자들은 그 언어가 주는 "외적인 느낌"을 어쩔수없이 안고 간다고 봅니다.
예로 들어주신, 프랑스어 사용자는 실제 성격이 불 같이 다혈질일 경우라도 그 분노를 표현함에 있어서 intonation 측면에서 '우아함' 이라는 제한을 받습니다. 화자가 원하는만큼 그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는거죠. 그래서 속은 불같은 분노를 갖고 있으나, 겉으로는 "유하고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그 언어가 주는 "느낌" 을 사용자는 평생 어쩔수 없이 안고가야하지 않을까요?
저 또한 언어가 우리의 사고력 또는 인지능력을 좌지우지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의 보여지는 모습 또는 성격 등등에 일정 수준 이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
음... 실제 프랑스어 화자가 분노를 표현하면서 자신이 우아하게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요. 화자끼리는 충분히 분노의 감정이 교환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린다는 것은 외부의 시선이지 않습니까. 우리말을 평생 써온 우리들은 우리말이 어떤 느낌으로 들리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피드백이 된다는 말씀인지요. 혹 단순히 외부에 보여지는 모습에만 집중하여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럴수 있겠다 생각하지만, 결국 그것은 사물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오해된 피상적 모습이니 별 실익이 없는 논의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하신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역시나 제 글 실력이 좋지 못해서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네요 ㅠㅠ
말씀하신 것처럼 같은 언어를 쓰는 사용자끼리는 그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각기 다른" 언어간의 차이에 초점을 두고 글을 썼어요. 제가 김리님께 쓴 댓글 이후에 sleeprince 님께 써서 해당 내용을 언급했다고 착각했습니다. 죄송해요, 댓글이 뜬금없는 내용이어서 당황하셨죠? ㅠㅠ
언급해주신 것처럼 언어간의 차이에 대해서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언어의 사용자가 아닌, 제3 자겠지요. 해당 언어 사용자는 그 언어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으로 인해 사용되었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으며, 무엇보다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외적인 느낌" 과 "보여지는 부분" 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적어주신 것처럼 평생 우리말만 써온 우리는 외부에서 우리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짐작하기 어려우며, 우리말과 다른 언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려우니까요 :) 때문에 제가 적은 "느낌" 이라는 표현은 해당 언어의 사용자 스스로는 모르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때의 느낌이라는 의미에서 적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sleeprince 님은 사물의 실제 모습을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그리고 알맹이가 아닌 피상적 또는 외적인 모습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는 1차적으로는 외적인 모습을 보고 살고 있는데 말이죠. ㅎㅎ 더군다나 해당 이슈처럼 수치화해서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문제일 경우,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 저는 사실 수치화해서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정성적인 문제나 인문학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습니다. 때문에 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또 배울 자세가 되어있어요 !
덧, 이건 다른 얘기지만,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는가' 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가설" 이 있더라구요. 혹시 나중에 이와 관련해서 포스팅하실 때 해당 가설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면 전 수강생 입장에서 감사히 읽겠습니다 :)
제가 말했던 사물의 실제 모습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 별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억센 경상도 말씨를 쓰지만 상냥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피상적으로 볼 때는 결코 상냥해 보이지 않지만, 막상 함께 지내보면 그 사람의 행동에서 실제 성격이 상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단순히 언어에서 느껴지는 외부인의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겉핥기식 추단과 실제의 성격 사이에는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실험해 보고 싶다면, 각기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 특정 상황을 주고 행동상 혹은 감정상 서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그것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것은 무척이나 실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언어가 사고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문화가 결과로서 각자 언어와 사람의 행태에 영향을 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실험 설계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대충 설계해서는 상관관계인지 인과관계인지 알기 어려울 테니까요.
저도 전공자가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ㅎㅎ제 의견은 설득력 있는 한 책에 설득당해버린 결과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도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주제는 제 친한 친구 하나와 만날때마다 논쟁하는 주제이기도 해서 관심이 많이 갑니다.
억센 경상도 말씨를 쓰는 상냥한 성격의 사진의 경우에서, '억센 경상도 말씨' 라는 외적 요소도 사람들이 그의 '실제 알맹이' 성격을 파악하는 데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에도 상냥하고 실제로도 상냥한 A와 겉으론 무서워보이지만 실제론 상냥한 B 를 비교한다고 가정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B 가 상냥한 행동을 보였을 때 B 에게 A 보다 더 큰 호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ㅎㅎ 그런 의미에서 저는 외부에서 보는 시선 또는 피상적인 면도 그 나름대로 분석해볼 가치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해당 이슈에 대해서 실험설계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란이 몇십년째 정리되지 못한 채, 학자들간의 이견과 가설만 난무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학계 대다수가 해당 문제는 증명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한 맥락일테구요 :)
저는 이러한 주제를 처음 접해봐서 언뜻 두려워하면서 다가갔는데, 생각하다보니 은근히 재미가 있네요 ! ㅎㅎ sleeprince 님은 관련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지 저와는 달리 생각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D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