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당나귀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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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의 레에서 마지막 날 저녁, 친지들에게 줄 선물 살겸 숙소를 나섰다. 레 시내로 향하는 길목에서 문득 거리를 활보하는 가축?을 만져보고 싶었다. 마침 당나귀가 눈에 들어오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한 젊은이가 나를 보며 자기가 주인?이라면서 와서 실컷 만저 보라고 한다. 아주 순한 놈이고 얘가 임신했다고 한다. 배를 보니 아주 빵빵하다. 그녀의 눈은 아주 선해 보였다. 라다크 소의 눈은 한국의 소 눈처럼 그리 선하지도 애처로워 보이지 않다. 예전 귀농을 준비하면서 어느 농가의 축사에서 소 눈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었다. 눈이 얼마나 선하고 애처로워 보이던지 그런데 그 소는 나를 보고 강아지처럼 반가워서 만져 달라고 음매 음매 제촉했다. 그 이후로 소의 눈을 보면 슬픔과 연민의 감정이 연상된다. 인도는 분명 소들에게 천국이긴 하다. 라다크에서 만나는 소의 눈은 그저 퉁명스럽다. 게다가 지역마다 소의 눈에서 느꺼지는 감정이 다르다. 사람이 많은 레에서 만나는 소는 사람을 개무시, 있거나 말거나 한다. 길에서 만나면 그냥 사람을 그저 물건 대하듯 무심하게 지나가 버린다. 반면 산골 울레의 소는 낯선 사람을 만날 것 같으면 이 곳은 내 나와비리인데 뭣하러 왔냐고 퉁명스럽게 째려보는 듯 하다. 그래서 쫄보인 나는 다가서기 좀 거시기했다. 하지만 유목에 길들여진 잔스카르의 소는 낯선 이에게 다소 경계감이 있어 조금 가까이 다가서면 도망가는 경향이 있다. 길가에 널부러져 사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해가 뜬 시간 까지 왠만해서는 잠만 쳐쟈시는 개그지들은 사납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혹 재수 없으면 물리기도 한단다. 사실 개그지 답게 꼬질꼬질 개털이 덕지 덕지 뭉쳐있어 드럽기 때문에 전혀 쓰다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참 순해서 한참 쓰담 쓰담해주고 배도 부드럽게 마사지 해주었다. 한 시간 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다시 마주쳤는데 나를 기억하는 듯 한참 서서 쳐다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부풀어 오른 배를 토닥토닥 쓰다듬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부디 순산하시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동물과 눈으로 교감하는 기분을 잠시느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이 참 애처로워 보였다. 내맘에 비친 모습인건 아닌지.


25년 라다크 여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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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peterchung, your travelogue of Ladakh continues to captivate! This post, with its beautiful photo and heartfelt reflections on the animal encounters, really stood out. I love how you contrasted the gazes of different animals – from the gentle donkey to the indifferent cows of Leh. It's fascinating how the environment shapes their demeanor, and your descriptions really brought them to life! The personal touch, reflecting on your past experiences with Korean cows, adds a layer of depth that's truly engaging. Thanks for sharing these unique perspectives! I'm looking forward to the next installment. Has your perspective on animals changed after this trip?

당나귀에 빠졌군요. ㅋㅋ

아주 어려서부터 소와 한집에서 살아 소의 눈이 얼마나 순하고 슬픈지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