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경계(心境)에 대한 소고 3
마음 경계(心境)에 대한 소고 1, 2 에 이어서
한 스님께서 종교를 불문하고 어떤 명상법이든 수행의 시작은 고요한 관찰을 통해서 명색(名色, nama-rupa)을 분리하고 체험하다 보면 수행이 깊어질수록 명색의 바탕 속(空性, emptiness)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수행 중에서 일어나는 다채롭고 정교해지는 정신적 체험에 대한 지적이다. 다만 여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로부터 통찰이 일어나야하는데 그것이 지혜이다. 명색은 12연기법의 4번째 요소인데 물질(色, rupa)과 정신(名, nama)의 복합체로 물질과 아주 굳건하게 의존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이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정신과 물질-정신(名色)의 상호 관계망(정신-명색)이다. 예를들어 불교의 사념처수행은 정신의 가장 기초 작용인 알아차림(念, sait)을 통해서 거친 물질로서의 몸(身)으로부터 시작하여 느낌(受), 심(心), 법(法)으로 인식의 범위를 미세한 영역으로 넓혀가는 것이다. 사념처수행은 물질과 정신의 복합체인 사람(名色)이 스스로에 속해있는 물질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는 방식으로 가장 거친 몸의 영역과 정신을 분리해서 바라보면서 수행이 발전해 나가도록 설계되었다. 물질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정의할까?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다. 딱딱하고 크고 거친 물질에서부터 보고 아는 마음이 막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한 생명이 인식하는 한계가 있게 되고, 무엇인가 걸리는 것에는 반드시 경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더해 정신적 프레임으로서 바깥 경계 뿐아니라 내적 경계도 모두 포함된다. 수행을 통해서 묶여있던 물질과 정신을 서서히 풀어나가다 보면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는 경계조차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있는 경계가 완전히 없어져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는 경계로서 존재하지만 정신을 걸리게 하는 한계가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하자면 육신통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경계가 없어진다는 무경계(無境界) 보다는 경계를 보는 관습을 넘어선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초월은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인식의 한계를 확장시켜 더이상 확장될 곳이 없으니 이 세계고 저세계고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랄까? 불생불사의 경지도 이와 같다. 이 몸이 불생불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알고 보는 마음이 불생불사가 되는 거라고 이해해야 할까? 명색의 바탕 속에서 깨어있는 것인데 몸도 경계로서 있는 것이고 느낌도 경계로서 있는 것이고 마음도 경계로서 있는 것이고 법(현상)도 경계로서 있는 것이지 절대 무(無)라는 허무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식의 무경계는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관계망으로서 현존하는 것이다.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습니다. 마땅히 이렇게 바라 보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가로막고 걸리는 물질 경계가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고 그렇다고 그러한 능력 또한 정신적 걸림의 경계이기 때문에 신기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대단한 것도 아니므로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처럼 이렇게 보아야하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실재로 그렇다고 체험으로써 인식되어진다. 그래서 수행자는 특이한 현상 경계를 특별한 것처럼 탐해서도 안된다. 탐한다면 이미 그것에 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환상이 나타나면 신기하고 즐겁긴 할 것이다. 달콤했던 첫 입맞춤처럼, (그렇지만 초보 수행자는 입 맞출 때 상대 입속에서 썩은 냄세가 난다고 상상하라고 권고한다. 탐욕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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