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안/시즌2] Chapter1. 반지의 광장

in #stimcity4 days ago (edited)



소년은 파리의 혁명 광장에서 자신의 삶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걸 직감했다. 추락 아니 날아오른 자리에는 충격적인 소식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에 착륙한 소년의 어깨에는 무지갯빛 낙하산이 매달려 있었다. 분명 추락하는 것이라고, 적어도 떨어져 내릴 때의 중력법칙은 그러했건만, 우주는 소년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그의 어깨에 낙하산을 달아주었고, 소년은 서쪽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활주로 삼아 육지로 미끄러져 내렸다. 푸른 빛 용이 승천하던 그 자리로. 소년의 낙하산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소년이 착륙한 파리의 나시옹 광장은 혼돈의 극치였다. 사람들은 악화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분노했고, 이대로면 자신들도 소년처럼 추락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공포스러워했다. 모여야 한다고, 뭉쳐서 반항해야 한다고 소문들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년은 알고 있다. 이미 경험했다. 끝없이 회전하는 지구 위에서 안전한 일상이란 나도 함께 움직이는 일임을. 가만히 정주하려는 인간들에게 다시 지구의 주기가 움직이라고 동작 사인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물론 소년의 일상도 뒤집어져 있었다. 입학하려던 마법 학교가 파산을 해 버린 것이다. 소년은 광장에서 그 소식을 접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떨어져 내리며 마법사에게서 이 선택은, 이 추락 이후의 상황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랄탄 같을 거라고 듣기는 했으나, 멀쩡하던 학교가 파산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년은 다급한 마음에 마법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법사님, 학교가 파산했어요!'



언제나 회신이 빠른 마법사에게서 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마법사가 파산했으니 마법 학교도 파산하는 거지. 어쨌거나 잘 도착했으니 다행이네.'

'하지만, 저는 이제 어떡하죠?'

'뭘 어떡해? 직관을 따르면 되지. 자네의 학교는 이미 시작된 거라네.'



마법사는 소년에게 직관을 따르라고 답했다. 그렇다. 직관어를 배우려고 마법 학교에 입학한 건데, 직관어를 배울 수 있다면 그 어디도 학교가 아니겠는가.



소년은 방향성을 잃고 잠시 당황했지만, 어디로 가도 학교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직관의 법칙을 따라 발길이 인도하는 대로. 지구는 둥그니까.



소년은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단 파산한 학교에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누군가가 남아서 소년에게 새로운 정보를 줄지도 모를 일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파산한 학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심지어 건물 현관 앞쪽에는 처분을 기다리는 걸상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소년은 미련이 남아 초인종을 연신 눌러 보았지만 나와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건물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역시 닫혔구나. 아니 어떻게 그사이에 학교가 파산할 수가 있지? 분명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역시 직관의 세계는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구만. 자초지종이라도 알고 싶은데... 등록금을 안 내서 그랬나? 입학한 뒤에 낸다고 했는데, 아니 안내서 손해는 아니지만 말이야.'



소년은 문득 등록금을 나중에 내도 된다고 했던 통지문을 기억하고는 그것 때문에 학교가 파산했는가 생각했다. 직관의 세계에서는 사기나 지체가 통하지 않으니 언제나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마법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물리법칙에 종속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물리법칙으로 구현될 뿐이다. 때에 맞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상식의 세계에서는 공정할지 모르나, 변화하는 세상에 대비해 선불하는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누구도 모르게 전 재산을 털어 사는 것만큼의 차이를 가져온다. 이 차이는 경쟁 사회에서 흔하게 희비를 교차시키는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이다. 그러나 상식의 세계에 익숙한 소년으로서는 이런 일은 그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참사일 뿐이다. 다리가 무너져 내릴지 모르고 건너던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이 혁명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에 다시 저항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들이 누리는 일상 역시 과거의 그들이 변화시킨 세상임을 잊고 있었다.



소년은 발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발길은 소년을 2년 전, 마법 학교에 입학해야겠다는 꿈을 심어준 바로 그 자리로 이끌었다. 소년의 그림이 팔려나가던 그곳, 샵 'Unknown'.



'어? 여기네.'



소년은 신비로운 공간에 들어서며 자신이 포탈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운명과 기회의 포탈. 2년 전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곳에서 다른 이들이 자신의 기회를 팔고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년은 신비로운 마음으로 공간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설레였다. 그것은 반지였다. 물음표 모양의 반지. 소년의 마음을 그대로 형상화해 낸 듯한 반지가 소년의 눈앞에서 반짝였다.



"이거.. 얼마죠?"



소년은 흥분해서 이 반지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지의 대가는 소년의 주머니 형편에는 사치였다. 낯선 도시에 떨어져 갈 곳 없어진 소년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사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년의 상식은 아직 그러했다.



소년은 반지를 들었다 놨다, 손에 끼었다 뺏다 하며 망설였다. 소년의 마음도 함께 사치의 경계를 오르내렸다. 소년은 일단 건너편 카페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 감정의 오르내림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말차 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카운터에서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창밖 너머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반지가 계속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파산한 학교에 대한 생각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선택의 순간을 기다리는 반지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마치 환청이 들리듯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기회는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삶은 쳇바퀴를 돌기 시작한다는. 그러자 소년의 눈앞에 아른거리던 반지가 거대한 은빛 수레바퀴가 되어 소년을 휘감고 돌기 시작했다. 소년은 바로 카페를 뛰쳐나가 포탈로 다시 진입했다. 순간 세계가 멈추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광장에 착륙하던 소년과 떠오르던 무지개. 에펠탑을 거꾸로 날아오르던 소년과 마법사. 그리고 죽기를 결심하고 떨어져 내리던 성탑의 창턱. 도전하는 이들을 처벌하던 광장의 단두대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세계는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소년은 포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카페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는 소년의 손에는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삶의 모든 질문이 담긴 반지.



"말차 라떼 나왔습니다. 마법 학교를 찾아오셨죠? 여기 이거,"



카페 주인은 소년에게 말차 라떼를 내어주며 무언가를 함께 건넸다. 열쇠였다. 푸른 빛의 광채에 둘러싸인 마법사가 그려진 열쇠.



"네? 이건 뭐죠?"

"아, 마법사님이 말차 라떼를 주문하는 이가 오거든 전해달라고"

"네? 마법사님이요?"



마법사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니, 열쇠가 등장했다. 소년은 말차 라떼를 주문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어떻게 자신인 줄 알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카페 주인은 그런 건 직관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소년의 손에 끼워진 물음표의 반지, 그것이 표지라고. 카페 주인의 눈에서 검은 별이 반짝였다. 소년은 더 묻고 싶었지만, 손님들이 줄을 지어서 있어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물음표의 반지와 마법사의 열쇠. 그때 마법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열쇠를 받았는가?'

'네? 그런데 이건 뭐죠?'

'입학증이네. 마법 학교에 입학한 걸 축하하네.'

'네? 입학증이라구요?'



마법사는 대가를 지불한 소년은 마법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반지를 사지 않았다면 세계가 붕괴했을 거라고. 그렇게 되면 돌아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2년 전 소년의 꿈을 사주었던 사람들 때문에 소년이 기회를 얻었고, 지금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 꿈을 팔고 있으므로 소년은 다시 그것을 사줌으로써 인류의 진화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년은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말차 라떼를 들이켰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무엇이든 이미 맛있었다. 인생의 맛을 이미 경험했으므로.



그때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파산한 학교를 누군가 인수했다는 공지가 소년에게 전해졌다. 학교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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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년이안/시즌2] Chapter1. 바다의 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