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고양이를 버리다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무라카미 하루키 - 고양이를 버리다

많은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왔지만, 이상할 정도로 부모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하루키의 가정 환경을 궁금해했었기에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고로엔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고 돌아온 일화를 시작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추하며 아버지가 군인으로 참여했던 전시戰時 상황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하루키가 아버지와 20년 이상의 세월을 절연 비슷한 관계로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돌아보며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혈연의 굴레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힘과 의식을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화해 비슷한 것'을 한다.

이 책은 새로운 방향으로 하루키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감을 계속 느끼게 되었는데, 늘 실없는 이야기만 하던 오랜 친구가 갑자기 표정을 바꿔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기분이었다. 글을 읽는 동안 하루키가 이 글을 쓰면서 느꼈을 감정을 상상했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아빠와 화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어쩌면 아직도 화해의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덤덤한 문체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도 하루키처럼 화해하는 일보다 하고자 하는 일에 더 집중하는 편이 나았을까 하고. 당연히 그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적잖이 낙담한 듯했다. 당신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방해하는 것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좀 더 면학에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가' 하고, 내 근면하다 할 수 없는 생활 태도를 보고 안타깝게 여겼을 것이다. 그는 내가 톱클래스의 성적을 받아주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이 시대의 방해로 걸을 수 없었던 인생을, 당신을 대신해 내가 걸어주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까워하지 않을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없었다. 차분히 공부에 집중하려는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학교 수업은 대부분 따분했고, 그 교육 시스템은 너무도 획일적이며 억압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는 내게 만성적인 불만을 품게 되었고, 나는 만성적인 고통(무의식적인 분노를 포함한 고통이다)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기뻐한 듯하지만, 그 시점에 우리 부자 관계는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나는 지금도,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버지를 줄곧 실망시켰다, 기대를 저버렸다 하는 기분을ㅡ또는 그 잔재 같은 것을ㅡ 품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넘어서부터는 ‘사람은 각자 개성이란 게 있으니까, 뭐' 하고 떨어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십대의 내게는 어느 모로나 그다지 마음 편한 환경이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막연한 가책 같은 것이 따라다녔다. 지금도 때로 학교에서 시험 치는 꿈을 꾼다. 나는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재깍재깍 흘러간다. 그 시험에 떨어지면, 나는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도······. 그런 꿈이다. 그러고는 대개 식은 땀을 흘리며 눈을 뜬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책상에 들러붙어 주어진 과제를 하고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밖에 나가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마작을 하거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이 옳았다고, 지금은 확신을 갖고 단언할 수 있지만.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