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31.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 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먼빛으로 두서너 번 보았을 뿐인 여인의 모습에서 다시 잠든 서희의 얼굴로, 서희에게서 다시 먼 강 아래서 물들어오는 놀과 추억이 삼십을 넘은 용이를 옛날로, 어린 시절로 이끌고 가는 것이었다.
손님네 인간이 불민해서 저질렀십니다. 노음 거두시고 한 분만 실피주시이소. 새는 날에는 대시루 안쳐 떡하고 밥하고 걸게해서 손님네 대접하겄십니다. 돌아가실 적에는 마부 부려서 노자 싸고, 인간이 멋을 압니까. 손님네, 우짜든지 열한 살 묵은 이씨 방성, 일월겉이 살피셔서 곱게 앉히주시이소.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을 용이놈은 잘 알고 있지요. 그놈이 글을 배웠더라면 시인이 되었을 게고 말을 타고 창을 들었으면 앞장섰을 게고 부모 묘소에 벌초할 때마다 머리카락에까지 울음이 맺히고 여인을 보석으로 생각하는, 그렇지요, 복 많은 이땅의 농부요.
- 토지 제2편 추적과 음모 5장, 풋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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