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물건 값도 못 깎는 사람이
아침이면 사과를 깎는다
사과는 손 안에서 자전을 하면서
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사과의 속살이 드러나고
날이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다음 생을 설계하던 씨도 잘려나갔다
사과의 대물림이 끝나면서
아침 시간도 끝이 난다
사각사각 사과를 깎는 소리에 갇힌
시간이 깎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째깍째깍 멈추지 않는 바늘이
칼을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사과 껍질을 치우면서
죽어간 시간의 허물이 손에 잡혔다
중심을 벗어나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 바늘이 칼이라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시간을 위한 장례는 없다
시간은 습관처럼 죽어가고 있을 뿐
한 줄의 추도사도 듣지 못했다
시간의 그늘 / 정현종
시간은 항상
그늘이 깊다.
그 움직임이 늘
저녁 어스름처럼
비밀스러워
그늘은
더욱 깊어진다.
시간의 그림자는 그리하여
그늘의 협곡
그늘의 단층을 이루고,
거기서는
희미한 발소리 같은 것
희미한 숨결 같은 것의
화석(化石)이 붐빈다.
시간의 그늘의
심원한 협곡,
살고 죽는 움직임들의
그림자,
끝없이 다시 태어나는
화석 그림자.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jjy, what a powerful and evocative poem! The imagery of the apple being peeled, a metaphor for time slipping away and life being consumed, is absolutely striking. I especially love the lines about the "씨도 잘려나갔다," capturing the finality of lost opportunities and the end of a lineage.
The connection you draw to 정현종's poem, highlighting the deep shadows and secrets of time, adds another layer of depth to your own work. The idea of time dying like a habit, without even a eulogy, is a poignant and thought-provoking observation.
The accompanying image perfectly complements the poem's somber and reflective mood. Thank you for sharing this beautiful and insightful piece of art with us! What inspired you to explore this particular theme of time and its passage? I'd love to hear more about your creative process!
오늘 아침이 늦었습니다.
사과를 깎으면서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 순간의 느낌을 적은 시입니다.
방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