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steemzzang15 days ago

살이 부러진 빗처럼 허술한 울타리 안에
황매화가 무성했던 한 때를 말하고 지나갔다
앵두나무가 하룻만에 꽃을 털어내고
말로만 하던 무성했던 날을 재현한다

울타리 틈으로 팔을 뻗고
지나가는 할머니의 지팡이를 붙들기도 하고
머리 위에서 노래를 하는 체
향기를 훔쳐 달아났던 새들을
땡볕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사각사각 햇볕을 갉아먹으며 떠올리는
지나간 날들의 영화보다
지금 그 자리의 작은 움직임이 빛이 되었다
움직일 수 없는 생애를 복제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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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그림자가 더 편하다/ 김밝은

살구나무가 등을 살짝 굽힌 채 큰길 너머 사잇길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비켜
서지 못한 바람이 울컥 치미는 향기를 쥐여주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잠깐 마음
이 휘청거렸지만 아쉬움이 묻은 얼굴을 파란 하늘에게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정지된 화면처럼 가슴에 와 박혔다

오래 걸었던 풍경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고 익숙해진 인연도 여기까지라고
몸을 돌려 뒤돌아갔다

동백꽃이 툭 툭, 죽비를 치며 떨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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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부러진 빗처럼 허술한 울타리 안에
황매화가 무성했던 한 때를 말하고 지나갔다
앵두나무가 하룻만에 꽃을 털어내고
말로만 하던 무성했던 날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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