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밤 사이 첫눈이 내렸다
곱게 내려 고운 눈꽃으로 피어나기를
꿈속에서도 등불을 들고
함박눈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아침을 기다려 만난 첫눈은
첫눈이 아니라 큰 눈이었다
먼 산도 낮은 지붕도
모두 첫눈의 발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렇게 첫눈이 풍성하게 내리면
보리풍년 든다는데
지금은 상품이 된 보리밭
첫눈 같은 얼굴로 가득하기를
드문 드문 날리는 눈송이가
촛불 같은 가슴으로 날아든다
첫눈/ 문병란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사내들은 모두 예수가 되고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여자들은 모두 천사가 된다
여보게 우리도 이런 밤
소주 몇 잔 비우고 조금 취해
모닥불 가에 언 손 비비며
쓸쓸한 추억 하나 만들어볼까
만 원짜리 한 장에 꿈을 달래고
포실거리는 눈발에 맞춰
여보게 우리도 첫눈 밤 같은
사랑 하나 만들까
그립다
첫눈이 내리면 먼데
마을 하나 둘 등불 꺼지고
지금쯤 그리운 사람은
혼자서 외로이 잠이 드는데
창가에 기대어 먼데
여인의 발자국 소리 엿들어 볼까
이런 밤 우리도 고요히
손 모아 촛불 하나 지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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