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steemzzang14 days ago

떠날 때는 누구나 마음이 스산하듯
여름도 놓치고 가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꽃도 지고 없는 산딸나무 그늘을 지나다말고
넋을 놓은 사람이 되어
벽돌 한 장 남기지 않고 담쟁이 차지가 된
짙은 녹색의 벽을 바라봅니다
그게 여름이 해 놓은 일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을 타는 것도 시들해진 고추잠자리들
구름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다
꽁지에서 타던 불이 옮겨 붙고 말았습다

붉게 타던 하늘이 먹빛으로 식어가는 밤
후두둑 달아나는 빗방울이
앙상한 여름의 어깨를 토닥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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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부근/ 정일근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쫓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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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jjy, what a beautifully melancholic and evocative piece! The way you weave the imagery of late summer – the fading 산딸나무, the 담쟁이 consuming the walls, the tired 고추잠자리 – with 정일근's poem is simply masterful. I especially love the poignant moment with the 거미, choosing compassion over convenience. It speaks volumes about the gentle shift in perspective that autumn brings. The photo perfectly complements the wistful tone. This is the kind of thoughtful content that makes Steemit special. Thank you for sharing this reflective glimpse into the turning of the seasons. I'm curious, what inspired you to pair this particular poem with your own reflections? Upvoted and resteemed!

치열하고 가혹했지만 지나고 나니 순리임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