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일기 #219

in #life23 hours ago

2025.8.23 (토)



아내와 말다툼. 참 오랜만이다. 속상하다. 우리부부는 '돈' 이야기만 하면 서로 첨예하게 부딪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돈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정생활에서 어찌 돈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사 중이라 돈쓸 일이 참 많다. 새로 들어가는 집이라 이것저것 손 볼 곳도 많고 사고 싶은 물건도 많다. 그런데 돈은 그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이사하기 전부터 미리 조금씩 예비비를 모아 두었지만 그 예비비는 한달만에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아내에게 상황을 세세하게 알려달라고 하고. 아내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니 자꾸 캐묻지 마라고 한다. 이런 식이다.

나의 입장 (생존모드)

  1. 나는 현재 상황이 불안하다. 다른 자금을 가져오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 돈 나가는 상황을 자세히 알아야 미리 조절하고 대비할 수 있다.
  2. 왜 내가 대비하려는 이 노력을 '쓸데없는' 행위로 평가절하 하나.
  3. 지금 이렇게 신경쓰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댓가를 치를 수 있다. 그러니 꼭 미리 대비해야 한다.

아내 입장 (생활모드)

  1. 나는 지금 살아가는 거다. 나한테 너무 과도하게 간섭하지 마라. 돈은 충분하지 않은 건 알지만 난 꼭 필요하고 어쩔수 없는 일이다.
  2. 왜 내가 필요로하는 걸 '불필요한' 것이라고 부정하나. 나는 꼭 필요하다.
  3. 내가 필요한 건 필요한거다. 나중에 돈이 부족하면 그때 상황에 맞춰서 대응하면 된다.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는 거다. 모든 걸 미리 다 준비할 수 없다. 그렇게 복잡하게 살기 싫다.

우리 부부의 돈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고, 예민하다. 잔고가 줄어드는 초기에는 그냥저냥 넘어가는데, 돈이 점점 바닥을 보이면 내가 먼저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돈문제를 생존과 직결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돈을 모을 순 없어도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는 건 건강하지 못한 소비다. 건강문제와 같이 예측이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이너스 잔고는 심각한 문제다.

돈에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가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소비로 인한 일시적인 마이너스 잔고는 과연 괜찮은 걸까. 사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반복이다. 모든 일이 처음이 어렵지 그 뒤부터는 관성이 붙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소비패턴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논리가 망가진다. 마이너스 잔고, 전에는 되고 지금은 왜 안되나. 이런식으로 생각이 전개되면 걷잡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러한 잘못된 소비습관이 정착되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쓰면 되고, 돈이 적은 사람은 적게 쓰면 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돈이라는 건 최소한으로 써야한다는 주의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는데 사람의 습관은 그처럼 자유자재로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부터 최소한의 소비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마음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오늘 우리부부사이에 이 돈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우리는 결국 통화를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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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이라도 서로 의견 통일이 안되는 건 어쩔 수없는 일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돈은 절약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해 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부부간에 돈문제는 정말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대한 입장 차이도 있구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