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달랐던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뭔가 달랐던’ 다섯 편을 꼽아보았습니다.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소년이 온다> 한강.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소설들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길고 깊은 어떤 감정이 벅차게 밀려 들어와 의식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렬하고, ‘감격’이라고 하기엔 서늘하고 잔잔한 뿌듯함이었습니다.
이 느낌을 문자화해 끄집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 스베보는 글쓰기가 이토록 힘든 이유는 현재가 ‘생각-환상’을 명확하게 붙잡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각-환상’은, (아마도 다른 말로 감정은, 느낌은) 글쓰기 전에 떠오르는 것이므로 언제나 과거일 수밖에 없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져 글은 언제나 ‘근사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동감합니다.
그리고 이 다섯 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아마도 (아니, 절대로) 이 소설들은 영상으로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죽기 전까지 <백년의 고독>을 영화화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다섯 편의 소설 중 가장 영상으로 만들기 힘든 소설은 <백년의 고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백년의 고독>을 봤습니다.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인 마르케스의 아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너무 좋았습니다. 소설이 길어서 다음 시즌에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는데, 시즌 2에서 어떻게 영상화될지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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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으니 소설을 읽지 않은 분은 넘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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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제는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백마흔다섯살이 된 고조할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이 잊혀져 있는 정지된 현재 시간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카드 점을 통해 염탐을 하고 음험한 예측을 함으로써 혼란스러워져 버린 미래가 아닌,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미래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미래가,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묘사에 테드 창의 SF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고전적인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아니라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동시성’이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멋진 문장이었습니다.
백년의 고독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네. 저는 참 좋았습니다.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우연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을 발견하고 담아뒀는데 꼭 읽고 싶어지네요. 달에 울다란 작품도 읽어보겠습니다.
특별한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D
네. 저한테는 참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bestella님께도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좀 무거웠지만(그래서 더 좋았고), 모두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