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단상
출근 시간 지하철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적다니. 곳곳에 빈자리가 많았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비어있는 맨 끝자리(모두 다 원하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너무나도 쾌적하게 갈… 뻔했다.
세 정거장 지나서 올라탄 한 중년 남성이 날카로운 눈으로 빈자리를 스캔하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11자로 다리를 모으고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앉은 나의 옆 자리가 편해 보였을 것이다. 내심 내 옆에 앉지 말길 바랐으나 덩지가 나만한 작은 남성이니 뭐 괜찮겠지. 하지만 웬걸, 다리가 닿는 것이었다. 짧고 뭉툭한 다리를 오므려본 적 없는 ‘평범한’ 중년의 쩍벌남.
이 쩍벌남이 곧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는 섣부른 도박보다는 바로 지금 ‘현재’를 택했다. 근처 빈자리로 바로 옮겼다. 선택은 옳았다. 내가 앉았던 자리로 이동한 중년의 쩍벌남은 내가 내릴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마터면 30분 넘게 뜨끈한 다리를 그대로 느끼면서 갈 뻔했다.
잠시 문제가 발생하긴 했지만, 어쨌든 노동절 아침의 지하철은 쾌적했다. 아.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생존에 내몰려 낮은 삶의 질을 견디며 살아오고 있었는지. 매일 노동절 같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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