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없이 NO, 북한산 염초봉 산행후기-7 보리사(菩提寺) 무량사(無量寺) 대서문(大西門)
장비없이 NO, 북한산 염초봉 산행후기-7 보리사(菩提寺) 무량사(無量寺) 대서문(大西門)
내려오는 중에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구었다.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1분도 버티기 어렵다. 등산으로 쌓인 피로를 푸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등산으로 쌓인 활성산소를 어싱(지구와의 접촉)을 통해 몸 밖으로 빼내 활력을 되찾는 요법이다.
보리사나 무량사는 북한산성입구로 가는 길에 있는 사찰이다. 항상 지나다니며 보는 사찰로 특별한 감흥이 없다. 울타리도 없고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고요한 절이다. 거의 등산 막바지에서 만나는 절이라 내려가기에 바빠 경내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저 멀리 앞서간 Y를 불러 세우고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북한산 보리사(菩提寺)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 대서문길 219-6에 위치한다. 좌우로 의상봉과 원효봉, 뒤로는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에 둘러 쌓인 명단 자리에 있다. 보리사 원래는 1957년 경기도에서 외빈을 접대하기 위해 지은 등운각(登雲閣)이었다.
등운각은 ‘구름 속에 높이 솟아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1957년 경기도지사 최헌길(崔獻吉)이 경기도를 방문하는 외빈을 접대하기 위해 지은 것이나 그후 어떤 이유에선가 조계종 소속 사찰로 개조되었다
북한산 보호수인 북한동 향나무는 1982년에 지정됐을 때가 수령이 350년이니 지금은 390년이 넘었다. 둘레가 무려 2.3미터, 높이는 7미터이다.
무량사(無量寺)
조선 말 고종(高宗)의 후궁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嚴氏, 1854-1911)가 창건하여 백일기도를 올리고 영친왕(英親王)을 낳은 절로 알려져 있다. 원당(願堂) 또는 약수암(藥水巖)이라고 하였는데 후에 무량사(無量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절의 건물로 1902년에 지은 대웅전(大雄殿)이 있고, 약사전에는 황귀비 엄씨가 모시고 백일기도를 올렸다고 전하는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남아 있다. 경기도 전통사찰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 내에 위치한 13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입구(북한산성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성문 중 하나이다. 조선 숙종 때(1711년) 축조된 북한산성 성벽의 일부로, 서쪽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던 중요한 출입문이었다. 현재의 모습은 여러 차례의 복원 작업을 거쳐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문양이 그려진 문루는 임금이 지나다녔다는 걸 의미하는 징표이다.
북한산성은 재위 46년간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며 조선의 태양왕이라 불리는 19대 임금 숙종(1661~1720)이 조성했다. 대동법의 확대 등 여러 가지 치적을 남겼지만 최고의 업적은 역시 국권 수호의 염원이었던 북한산성을 축조 한 일이다. 대서문(大西門) 현판은 1958년 복원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쓴 글씨라고 한다.
우리에 삶 보다 한참이나
자기 자리에서 오랜 세월 지내온 할아버지 나무들은
그 긴 세월 어떤 생각을 하며 자리를 지켜 \왔을까요 ^^
할아버지나무... 웃음을 짓게하는 표현입니다.
다음에 가면 한번 물어볼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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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을 가던지 곳곳에 크고 작은 절들이 참 많은거 같아요. 유지관리 하는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래도 다들 깨끗하게 유지되는거 같아요.
산에 다니다보니 자연히 산속에 있는 사찰도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북한산에만 45개가 넘는 사찰이 있다니 다 들려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