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패키지, 자유와 불확실성
나는 프리랜서다.
내가 프리의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다니엘 핑크의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온다'를 읽은 후부터였다. 이때가 2006년 아니면 2007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때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당시 사회적인 여건이나 환경도 너무 척박했고..
기회는 몇 년 후에 찾아왔다. 경력이 쌓이면서 난 특화된 분야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후 이 분야의 시스템은 급속하게 진화했고 경험자가 아니면 쉽사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때맞춰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 이때가 프리로 전향할 적기라고 판단했다. 레퍼런스도 충분히 쌓여있는 상태였다. 난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잡코리아에 프리랜서로 내 이력서를 업데이트해 올려놓았다. 예상대로 업체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이것이 내 프리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프리로 전향하고 가장 좋았던 점은 업무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있으면 어떻게든 내 업무목록에 뭐 하나라도 더 갖다얹으려는 상사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데 프리는 계약서에 명시된 프로젝트의 업무만 수행하면 된다. 맡은 업무 하나를 퀄리티 있게 끝내는 게 내 성질에도 맞았다.
누구든 나의 노동력을 쓰고 싶으면 계약서를 쓰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은 내게 독립성을 보장해준다. 그러니 맡은 업무만 확실히 끝내면 내 개인 시간을 침해 당할 일은 거의 없게 되는 것이다.
프로젝트 사이사이 며칠 정도 텀이 뜨면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도 프리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난 다음 프로젝트의 출근일을 확정지어놓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그러나 프리의 좋은 점은 여기까지..
프리를 염두에 두고 계신 분이 있다면 먼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 '불확실성'이라는 사실을 새겨두셔야 한다. 이것은 자유를 선택한 자에게 따라오는 대가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이 들어오는 날짜가 불규칙하게 변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다. 돈이 들어오는 시기는 불규칙한데 신용카드대금은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청구된다. 이것 뿐인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매달 고정비용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이런 돈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날짜에 지불돼야 한다. 나는 이것들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그래서 프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금보유고다. 프리 생활을 오래 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현금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프리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단기 자금에 몰리는 것인데 충분한 현금보유는 이것을 방지해준다. 옛날 시골집에 가면 수동 펌프 옆에 항상 물이 차 있는 커다란 다라이가 있었다. 지금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지만 상수도라는 게 없었던 그 시절 다라이에 고여 있던 물은 생활용수로 유용하게 사용됐고 마중물 역할도 했다. 이것은 물에 대한 즉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요즘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아마도 자유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바쁜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그냥 누릴 수 없다. 자유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확실성을 일정 수준 이상 해소할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다.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게 된다.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얄궂은 패키지죠... 자유와 불확실성은[불안]은 다르면서도 어쩌면 같은 말인 것도 같아요.
어울리지 않는데 찰떡처럼 붙어다닌다는..ㅎ
불확실성과 자유..참으로 얄궂죠..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말하는 것처럼요
너무 얄궂어요..ㅎ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처럼..ㅎ
프리를 희망하는 제게, 정말 도움이 된 글이었습니다. 자유를 얻지만 그에 따르는 불확실성도 책임져야 하는 게 다시금 와닿네요. 그래도 저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맡은 업무만 확실히 마치면 개인 시간을 침해 당할 일이 없고, 중첩되는 업무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 게 너무 좋아서요. 잠깐이었지만, 회사 경험을 할 때는 제가 쳇바퀴 안의 햄스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프리 생활을 하며 돈을 벌 때도 힘들기는 했지만 출근할 때보다는 훨씬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회사에 단단히 데였나 봅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회사라는 조직은 체질적으로 안 맞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장애일 수 있어요.
뜻이 확실하신 것 같으니 노력하시면 될 겁니다.
같은 프리로서 응원할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