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알파와 오메가 #6

in #kr-writing7 years ago
ⓒkim the writer



들어가기에 앞서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이미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머리를 감아야 하나 거울에 비춰 보다가 문득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늦잠을 못 자서가 아니라 그전 같았으면 더 분주했을 날이니까. 전화가 울린 건 그때였다. 헤어진 지 꼭 보름 만에 온 전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중에 나온 책이든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든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보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단문으로 써라, 불필요한 수식어를 제거하라, 부사를 쓰지 마라, 일본어/영어 번역투 쓰지 마라, 이걸 빼고 저걸 빼라, 헤밍웨이가 이랬느니 김훈이 저랬느니… 모두 문장에 관한 얘기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왜 이런 조언을 했는지, 정확하게는 왜 이런 조언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문장은 중요하다. 내용을 이해하려면 문장을 읽어야 하니까. 조사 하나만 바뀌어도 느낌이 달라지니까. 문장을 통해 글쓴이의 개성이 드러나니까. 하지만 글에서 문장의 중요성은 1순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용이다. 문장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쓰이고 존재할 뿐이다. 아무리 완벽하고 미려한 문장이라도 내용이 개떡 같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글은 기껏해야 잘 쓴 개소리로써 읽고 나면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 그런데도 문과로 흥했다 문과로 망한 역사와 삐뚤어진 천재병에 걸린 일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탓인지 한국에선 여전히 ‘명문’ 타령이 한창이다.

  책을 읽고 나서 ‘그 작가는 용언을 기가 막히게 잘 썼어’ 따위를 얘기하진 않는다. 그런 건 문학 매니아들 사이에서나 오고 갈 말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만화든 책이든 모든 컨텐츠는 첫째도 둘째도 내용이 먼저다. 물론 영화는 연출과 연기, 만화는 그림으로 완성도를 올리듯 글도 문장의 힘으로 수준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문장이 내용을 배제하고 혼자 하드 캐리할 정도로 피지컬이 좋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글에 오탈자와 비문, 틀린 맞춤법이 많으면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런 건 교정 교열자가 손 봐 주면 그만인 것이다. (여러분은 셀프로…) 모든 대가, 대문호들의 작품도 여러분이 읽은 최종 버전은 누군가 손 봐 준 것이다. 자기가 쓴 건 토씨 하나 건들지 못하게 한다는 어느 드라마 작가의 고집은 장인의 고집이 아닌 병적인 집착이다. 그런 걸 미덕으로 여기지 마시라. 거듭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용이다. 그것이야말로 교정 교열자도 편집자도 독자도 건들 수 없는, 오직 글쓴이만의 것이며 글쓴이만의 것이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아무리 위대한들 역자마다 문장이 달라지는 건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없는 문장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거기에 담긴 메시지까지 변질될까? 오역이 아니라면 내용은 성역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번역이 엉망이어도 우리는 참수당한 네드의 비극을 전 세계 팬들과 공유하고, 호그와츠가 아닌 호그와트에 다니는 학생들의 명랑한 기숙사 생활을 탐닉할 수 있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자. 헤밍웨이나 스티븐 킹의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은 모두 단문/끊어 쓰기에 집착한다. 그렇게 해야 술술 잘 읽히고 힘 있는 문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내놓는 문장의 전형을 보자.



눈을 떴다. 10시였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났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에 머리를 비춰보다가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한숨을 쉬었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늦잠을 못 자서는 아니다. 그전 같았으면 더 분주했을 날이다. 그때 전화가 왔다. 헤어진 지 보름만이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했다. ~했다. ~했고 ~했다. 이들의 글은 100미터 달리기만 있다. 글 전체를 생각한 호흡과 리듬이 아닌 단거리 질주의 연속이다. 읽는 내내 숨이 차고, 심지어 모래를 씹는 기분도 든다. 이들은 자기 글에 필요한 톤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멜로를 쓰려는 사람이 하드보일드를 쓰고 있다.

  대가들의 조언은 모두 자신의 글에 맞춰져 있다. 게다가 너무 전문적이다. 그들은 몇 개의 문장을 거쳐 한 문단이 나오고 다시 몇 개의 문단이 모여 하나의 장을 이룰지 알기 때문에 그에 맞는 달리기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이 무슨 얘기를 어떻게 쓸지 모른다. 그러니 자기 관점에서 해 줄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것뿐이다.

  추종자들의 문제는 또 있다. 아무리 봐도 그들은 자신들이 떠받드는 대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젠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게 ‘살라오’, 즉 운수가 완전히 바닥난 지경이 되었다고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를 타고 나갔고, 그 배는 일주일 동안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노인과 바다> 문학동네, 이인규 역


  위는 <노인과 바다>의 도입부다. 예상외로 긴 복문이다. 다음의 원문을 보자.



But after forty days without a fish the boy’s parents had told him that the old man was now definitely and finally salao, which is the worst from of unlucky, and the boy had gone at their orders in another boat which caught three good fish the first week.


  번역본에서 두 문장으로 쓰인 것이 사실은 한 문장이다. 이번에는 원문과 동일하게 끊은 문장을 보자.


오두막은 ‘구아노’라고 부르는 대왕야자수의 질긴 싹눈껍질로 지은 것으로, 그 안에 침대와 식탁과 의자가 하나씩 있었으며 흙바닥에는 숯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자리가 있었다. 섬유질이 억센 구아노 잎사귀를 편편하게 겹쳐 바른 갈색 벽면에는 예수성심상 채색화와 코브레의 성모상 채색화가 각각 걸려 있었다. 죽은 아내가 남긴 유물들이었다.



  단문으로 쓰라더니 온통 복문이다. 그렇다. 단문으로 쓰라고 충고한 헤밍웨이는 정작 단문으로만 쓰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단문만 나열된 글을 읽고 있노라면 숨이 딸려 오히려 읽는 맛이 떨어지는 데다 효과적인 연출도 할 수 없다. 이걸 추종자 버전으로 바꿔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오두막은 ‘구아노’라고 부르는 대왕야자수의 싹눈껍질로 지었다. 그 안에는 침대와 식탁과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 흙바닥에는 숯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자리가 있었다. 벽면은 구아노 잎사귀를 편편하게 겹쳐 발랐다. 예수성심상 채색화와 코브레의 성모상 채색화가 걸려 있었다. 죽은 아내가 남긴 유물들이었다.



  느낌이 오시는지? 오두막 대한 묘사를 복문으로 쭉 이어가다가 마침내 그것들이 죽은 아내가 남긴 유물들이었음을 단문으로 밝힌 것과 ~했다 ~했다 식의 단문들을 나열하다가 끝에 가서 다시 단문을 툭 붙인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스토리텔러를 위한 알파



  지금은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사실 이 시대는 도래한 지 100년도 넘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문장 신경 쓰지 말고 내용을 신경 쓰자. <미드나잇 인 파리>의 헤밍웨이가 주인공에게 하는 충고는 실로 적절하다.



끔찍한 주제란 없소. 그 이야기가 진실하다면.



  <출처: 내 머리> 이거 하나면 끝난다.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면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쓰라고 만들어 놓은 거 마음껏 쓰세요.



  단문이든 복문이든, 형용사든 부사든 맘껏 쓰시라. 지금껏 인류가 다 필요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쓰라고 만들었는데 왜 쓰질 못하니 문장의 리듬과 호흡은 자신의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1km로 시작해 10, 20km까지 매일같이 거리를 꾸준히 늘리며 달려 본 분들은 알 것이다. 달리기는 자기 페이스대로 혼자 달리는 일이라는 걸. 그럼에도 아직 신경 쓰인다면 당장은 이것만 주의해도 좋다.

  문장 부호를 쓸데없이 남발하지 말자. 특히 줄임표…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가끔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내가 별루다.
맘이 아파서 소리치며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뭐 꼭 슬퍼야만 우는 건 아니잖아.
난 눈물이 좋다. 아니… 머리가 아닌 맘으로 우는 내가 좋다.


  위의 예시는 내가 지은 게 아니다. 약간 오글거리지만 영 못 봐 주겠다 싶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쩐지 익숙하다 싶은 분도 있으리라. 원문을 아래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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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가끔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내가 별루다...
맘이 아파서…
소리치며…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뭐… 꼭 슬퍼야만 우는 건 아니잖아…
난… 눈물이…. 좋다…..
아니…
머리가 아닌…..
맘으로…..우는 내가 좋다…..

<출처: 싸이월드 원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흑역사는 밝히지 않는 게 도리이니…>



  사실 원문은 자음과 모음을 분리하는 스킬도 썼는데 줄임표의 역할을 비교하려고 일부러 정리했다. 이외에도 따옴표, 쉼표 등의 부호를 쓸데없이 쓰지만 않으면 문장이 훨씬 깔끔해진다.






문장가가 아닌 스토리텔러를 위한 오메가



  세간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문장의 힘을 믿습니다.



  믿긴 뭘 믿나. 지금 있는 종교들만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 저 문장이야말로 한국 문학이 왜 죽었는지, 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는지 잘 보여 주는 표현일 것이다. 저 표현은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글을 계속 읽게 한다는 걸 뜻한다. 내용이 아무리 흥미로워도 문장이 난해하면 읽기 어려우니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 말에선 알맹이 빠진 내용이라도 가독성 좋은 문장으로 읽게 하겠다는 오만한 의지가 더 강하게 읽힌다. 그것으로 그치면 그나마 나을 텐데 사람을 휘어잡을 ‘절대문장’이 있다는 믿음을 문학 매니아들에게 심어 주는 게 문제다. 읽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문장, 그걸 쓸 수 있는 천재가 있다는 믿음. 이런 믿음은 천재병에 오염된 일본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feat. 히비키)

  그런 건 없다. 누구나 한 번 보면 감동할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뿐 아니라 지금껏 존재한 모든 게 그러하다. 천만 관객 동원 영화도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아바타>를 극장에서만 열 번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보고는 쌍욕을 하며 다신 안 본 사람도 있다. <모나 리자> 진본을 눈앞에 두고도 그저 눈썹 없는 여자 그림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은 감동을 일으키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일어난다. 보편적 감성을 건드는 일도 쉽지 않다. 취향 때문이다. ‘더 락’ 드웨인 존슨 주연 영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 같은 영화만 골라보는 친구를 감동시키는 건 불가능…까진 아니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드웨인 존슨의 <램페이지>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거면... 절대문장 인정



  사실, 문제는 저게 아니다. 글은 글자를 알면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온전한 해독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글은 전적으로 독자에 의존한다. 영화나 만화에서 한 장면 보여 주면 간단히 끝날 일도 글에서는 만만치 않다.



카이지는 온 힘을 다해 20면체 주사위를 굴렸다.



  이 문장에 여러분이 모르는 단어는 없다. 그럼에도 장면을 완성하는 게 어려운 분들이 있을 것이다. 20면체 주사위 때문이다. 여러분은 주사위도 알고 20면체라는 개념도 안다. 그런데 실제로 본 적이 없다면 20개의 면을 가진 주사위를 상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20면체 주사위를 본 적 없는 독자를 생각해 덧붙인다.



카이지는 온 힘을 다해 별사탕 모양의 20면체 주사위를 굴렸다.



  건빵에 들어 있던 별사탕을 아시는 분이라면 대충이라도 근접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별사탕을 모르는 분에게는 이 또한 뜬구름 잡는 묘사다. 물론 이런 부분은 글을 이해하는 데 상관없다. 1부터 20이 쓰인 주사위를 카이지가 굴렸다는 것과 어떤 숫자가 나오느냐에 따라 도박의 성패가 갈린다는 건 20면체 주사위를 모르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사위를 굴리는 행위에 ‘온 힘을 다한다’는 걸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라면? ‘천재라면 그런 사람까지 이해시킬 역량이 있겠지’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그런 건 예수님도 못 했다.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글을 이해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데 여기에 ‘문학적 문장’을 쓰면 답이 없다. 이러면 독자로선 글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은 사라지고 고된 작업만 남는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대가로 꼽히는 작가들은 대개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면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단어와 표현을 썼다. (러시아 작가들은 빼자. 게네는 좀…) 현실이 이런 데도 한국과 일본의 문학은 ‘문장가’의 면모를 더 중요시한다. 거기에 동조한, 혹은 동조할 수밖에 없는 문학 매니아들은 기성 작가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일상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요상한 표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감수성 만땅인 문장으로만 점철된 글은 매니아에게나 먹히지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 같은 일반인 독자에겐 손발이 오그라드는 ‘방법’일 뿐이다.

  멋들어진 억지 표현 만들 시간에 내용에 힘써라. 경험을 바탕으로 진실한 글을 써라. 모든 독자가 바보는 아니다. 거짓된 글로 한 줌의 추종자를 속이고 만족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머지 침묵하는 다수는 그게 허세인지 알아볼 테니까. <- 이상은 문학 매니아에게 고함

  여러분은 이상한 문장 연구할 시간에 차라리 외국 작가의 베스트셀러 번역본을 보시라. 어쩌면 표준이라 불러도 마땅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읽히는 ‘번역가의 문장’이 거기 있다.

  이제 문장의 힘은 개에게 주자. 문장이 힘을 발휘한 건 한자를 조합해 써야 했던 선비 시대의 일이다. 선비질은 영주 선비문화축제에서 하자.






부록.
  문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예외가 하나 있다. 시적 표현이다. 시는 문장 자체로 완성되기 때문에 모든 언어 요소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다. 영화로 치면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시적 함축을 영상에 올인한 경우다. 이런 시적 표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컨텐츠는 내용이 1순위다. 작가로 불리고 싶다면 문장과 스토리텔링 양쪽 다 신경 써야 하지만 그럼에도 중점을 둬야 할 건 스토리텔링이다.
  이야기에 힘을 100% 쏟아도 모자랄 판국에 문장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평생 문장만 다듬다가 끝난다. 문장에 가로막히지 말고 내용을 끝까지 완성하라. 시간이 지난 뒤에 읽으면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일 것이다.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으면 다음 날 한 번 더 보면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의 글을 성심성의껏 읽어 줄 사람에게 보여 주자. 그들은 여러분이 미처 놓쳤던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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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체 주사위 (출처: pixbay.com)






순화 버전으로 다시 쓰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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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 잘 읽고 갑니다.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kimthewriter님 같은 분이
아름다운 글들을 쓰시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다면
스팀잇 kr은 훨씬 더 아름다운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김삿갓( @yungonkim)이 깊은 감명을 받고
풀보팅을 하고 갑니다~~

@kimthewriter님 안녕하세요. 별이 입니다. @stylegold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아...중요한 건 내용이구나. 물론 문장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작가들도 있겠습니다만..히가시노 게이고는 오로지 내용으로만 승부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실제로도 만화 책마저 읽지 않을정도로 책 읽기를 싫어했죠. 문장을,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그런 선입견을 깨준게 히가시노 게이고였습니다. 저도 문장을 잘 쓰려다 못쓴 시간들을 깨부수고 그냥 무작정 앉아서 씁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쓰기 관련 글 참 유익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신기하네요. 히가시노 게이고를 예시로 들려고 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뭐에 쓰려고 했는진 까먹었지만요ㅋㅋ

저는 문장을 매우 중요시해요.
음,,, 아니아니... 문장을 1순위로 중요시해요.
문장이 어려우면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없고,
문장을 이해할 수 없으면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그 글을 이해할 수 없거든요.
우선 잘 읽히는 문장을 쓴 다음, 내용을 잘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번역서를 잘 못 읽어요.
분명 한글로 써놨는데, 읽어도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분명 한 페이지 읽었는데, 한 페이지가 몽땅 기억이 안 나요.
읽은 지 1초도 안 지났는데도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 이유는 이해하기 힘든 문장 때문이거든요.
제가 '글디자인'이라고 가끔 쓰는데,,,
음... 오늘은 시간을 내서... 이해가 안 되는 글을 고쳐봐야겠어요.
아~~ 예전에 고친 글이 있으려나... 찾아봐야겠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글이 쫀득쫀듯해서 쭉 읽어졌어요.
확실히 뭘 담았느냐, 컨텐츠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문장이 중요하다는 건 좋은 문장이 내용을 더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와전된 것 같아 보여요.

예전에 유명작가의 소설책은 읽다가 책 전체에 깔린 말줄임표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어서 그 후로 저도 줄임표는 이상하게 거슬리더라구요ㅜ 글 잘읽고 갑니다!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를 찾는게 제일 중요하지만 가장 어렵기도 한 것 같아요ㅜ

문장을 만들고 열번 봐도 안 보이는 틀린 문장은 왜 포스팅하면 확 보이는 걸까요? 내용 구상하기 정말 힘들어요. 계속 구상한 것도 글로 만들면 이상하게 써지내요.

  1. 자신은 이미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스킵하는 부분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2. 구상화 작업 중 글이 난이도가 가장 높을 겁니다. 지금 자료를 찾을 수가 없는데... 소설/시나리오 작가의 작업이 과학자의 연구와 같은 수준의 복잡성을 가진다는 걸 본 적이 있네요.

구상화 작업은 개요 짜기라고 볼 수 있나요?
저도 글 쓸 때 비슷한 어려움을 느끼거든요
분명 개요를 먼저 작성하고 글을 쓰라고 했는데
개요를 짜기가 쉽지 않고 개요 작성 후 쓴 글은 손 가는 대로 쓴 글 보다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흠ㅎㅎ

위에서 말한 구상화는 머릿속에 있는 걸 실현하는, 즉 완성작을 만들기까지의 전 과정을 뜻합니다. 개요를 짜는 건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의 상당 부분이 이 과정에서 날아갈 겁니다. 글을 쓰기 전이나 개요를 짜기 전에 일단 머릿속에 있는 키워드와 문장을 모두 적어 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이때는 맞춤법이나 문장, 글의 전체 구성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재빨리 써야 합니다. 의식은 어떤 생각이든 논리적으로 구성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의식이 개입하면 할수록 놓치게 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단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네요 ^^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 싸이월드 시절 그 유명했던 글을 인용하셨네요 ㅎ ㅎ

아침부터 긴 글 읽어버렸습니다.
즐거리와 스토리가 진실하다면
장문단문 정답이 없다는 말씀
문장의 힘?
믿긴 뭘 믿나. 그런거 없다.
바로 감명주는 글따위 없다.
구구절절 새기게 됩니다.

  • 별사탕은 아재개그 냄새가 납니다. ㅋㅋ..
    20면체로 감이 딱 와버렸는데 제가 공간지각력이 넘 좋은건가요? ㅋㅋ

나는 가끔....운다..이 글은 스팀에서도 본 기억이 ㅎㅎ
문장의....
힘.... 힘을....
믿...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