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억 #창경궁 #카나자와 겐로쿠엔

in #kr-daily7 years ago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 산다는 것이 새삼스레 감사해질 때가 있다.
삶의 순간이 계절과 날씨로 기억되는 선물을 받을 때가 그러하다.

계절의 변화에 삶과 마음이 달라짐을 느낄 때면 대자연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신은 모든 창조물에게 계절을 느끼는 공평함을 주셨는데
문득 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를 떠올리니
계절을 느낄 시간을 낸다는 게 괜히 특별해진 듯한 착각이 들어 우습다.

언제부터 계절의 변화에 민감했는가를 생각하며 떠올린 내 봄의 기억이 카나자와인걸 보면
계절에 따라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아마 그를 만나고나서 부터겠지.

KakaoTalk_20180316_200023728_Easy-Resize.com.jpg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지만 겨울의 찬 바람이 채 떠나지 못한 오늘과 같은 날씨는 카나자와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중부를 돌았던 3월 여행 중 겨울의 마지막을 붙잡고 있던 게로, 다카야마, 시라카와고를 거쳐
봄 기운을 처음 맞닥뜨린 곳이 바로 카나자와였다.
자전거를 타고 겐로쿠엔에 갔다. 일본의 오래된 옛 정원의 특유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나무들은 똑같이 정돈된 모습으로 정갈하게 서있다.
따뜻한 햇살에 이따금씩 부는 찬 바람과 함께 그 곳을 걸으며 그는 내게 이 조용함과 정갈함이 무섭다고 말했다.

KakaoTalk_20180316_195748928_Easy-Resize.com.jpg
[겐로쿠엔, 일본 카나자와]

아, 그때부터 였나보다. 봄이 오며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이 짧은 시기를 주목하게 된 건.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봄의 온도로 날씨가 정돈되는 이 순간 나는 조용한 무서움을 느낀다.

KakaoTalk_20180316_200046727_Easy-Resize.com.jpg

서울대병원에 일이 있어 들렀다 나오니 눈 앞에 창경궁이 보인다.
봄의 햇살을 오롯이 느끼고자 창경궁에 들어섰다.
마침 여행주간이라 입장료는 반값. 500원의 여유를 누리자.

창경궁에 들어서니 옥천교 앞에 해설 가이드 한 분이 서계신다.
우연히 시간이 맞아 나처럼 홀로 온 여자 두 명과 함께 조용히 창경궁을 구석구석 거닐며 이야기를 듣는다.
성종의 효심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궁궐이지만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마당이 있는 곳이자
청에서 8-9년을 잡혀있었던 소현세자가 청에서 접한 넓은 시야와 신문물에 대한 꿈을 품고 조선에 돌아온지 두 달만에 아버지 인조의 외면을 받으며 죽은 곳,
그리고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죽은 쥐와 해골가루 등의 흉물을 묻어뒀던 게 발각된 곳이다.

KakaoTalk_20180316_200046471_Easy-Resize.com.jpg

일본은 이 곳을 창경원으로 바꿔 많은 건물을 부수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조선의 왕들이 백성을 이해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논은
인공연못이 되어 보트를 띄우고 케이블카를 세웠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은 이 연못에 얼마 전 원앙들이 날아왔다는 얘기를 들어도 이상하게 반갑지만은 않다.

KakaoTalk_20180316_200045889_Easy-Resize.com.jpg

1909년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이 마침 재개방했다.
아름다운 흰색의 대온실을 마주해도 온실 내 꽃을 보고 또 봐도
이미 밀려온 쓸쓸함을 어쩔 수가 없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시린 손은 자꾸만 주머니로 향한다.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KakaoTalk_20180316_202715456_Easy-Resize.com (1).jpg

괜히 혼자 온실에서 찍어본 셀카에
오늘의 햇살과 맑은 하늘을 담아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다.
이렇게 또, 이런 감정이 뒤섞여 오늘의 날씨를 기억한다.


창경궁에 다녀왔습니다-
새순이 돋아난 나뭇가지에 활짝 꽃이 필 4월 쯤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창경궁의 꽃이 피고 단풍에 물든 후원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홀로 여유를 느꼈습니다.
이번 주말엔 친한 친구와 단 둘이 경주의 봄을 느끼고 오려합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고등래퍼봐야징ㅎㅎ
모두 신나는 불금되세요!

Sort:  

@xinnong님 장소 물건 하나하나 표현력이...
내공의 깊이를 느낍니다

오늘은 쌀쌀한 가운대 다정한 햇살이 봄과 쌀쌀함을 주었죠
오랜만에 강남역에 나갔다가....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계절이 감정과 함께 뒤죽 박죽...섞여 있었습니다

새벽에 다녀갑니다^^*

고등래퍼 이야기 보니 동생분이 생각나네요^^ 오늘날씨가 추운것도 따뜻한것도 아니라서 하루종일 졸고 졸고 ㅜ 씬뇽님은 창경궁에 갔다오셨네요 정말 4월이 되면 꽃이 피고 더 아름다운거 같아요!!
주말 친구분과 경주에서 힐링하고 오세요 ㅎ

으그~^^♥
언제 봐도 이쁜 신농님

창경궁에는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었네요
슬프기도 하고 기구한 사연들이
이쁜 신농님 편한밤 되세요~!

어제 화이트데이 관련 글을 봐서 인지, 카나자와가 그분의 이름인줄 알았어요..ㅋㅋㅋ
사계절과 우리나라 궁, 정말이지 찰떡궁합이죠~
저도 궁안에서의 산책, 좋아해요.:p
궁에 있으면 씨농님처럼 사계절도 느껴지고,
내가 어느나라에 있는지 더 생각해보게 되고,
터벅터벅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끄집어 내게되는
좋은 장소인듯해요.

그나저나 창경궁에도 후원이 있나요?? 두번정도 가봤는데 후원이 있는지는 오늘 처음 들어봐서요.

소현세자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바꼈을꺼란 시각을 배운적이 있는데
다음에 창경국을 간다면, 사계절과 소현세자에 대해 터벅터벅 산책해봐야겠네요~

네! 후원 있어요! 아... 궁마다 후원의 이름이 다르다고 하던데
창경궁의 후원 이름이 벌써 기억이 ㅠㅠ...
사실 너무 자연과 조화로운? 후원이라 ㅎㅎ
다른 곳보다 꽃나무가 많은 정도 더라고요 ㅎㅎ
꽃 피면 꼭 다시 가보려고요!

씬농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부디 주말엔 미세먼지가 없길 ...ㅠ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혹독한 추위가 싹 사라지고 봄내음이 풍기는 요즘이네요~
창경궁 그립네요.. 대학시절 학교가 대학로 근처였어서 창경궁 근처에 자취를 해서 뭔가 마음이 답답하고 고민이 많을때면 혼자 창경궁을 가곤 했엇거든요~

사진을 보니
그때가 또 그립네요. 봄처럼 말이죠~>_<

안그래도 이번주 일요일에 근처에 갈 일이 있어 아이들 데리고 창경궁에 갈 계획이었는데..
신농님 포스팅에서 이렇게 딱 보니 신기하네요.ㅎㅎ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이니 대온실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요즘 고등래퍼.. 아이들 레벨이 후덜덜하더군요. 쇼미 보는줄 -ㅅ-

보팅이안돼요 ㅠㅠ 계속 뺑뺑 돌기만

와.. 대온실 엄청 예뻐보이는데요?
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신농님 불금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