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는 이야기
날은 여전히 뜨겁다.
요양 보호사님이 너무 덥다며 들어선다.
작은 아들과 같이 어머니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물러 난다.
점심으로 는 냉면을 드셨다.
아들은 할머니 저 올라갈게요, 라며 작별인사까지 하고 나온다.
언제 또 주겠냐며 10만 원을 봉투에 준비해 달라 시어 드렸더니 손자에게 주신다.
안 주셔도 돼요, 하는 놈에게 할머니가 주시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 받아라, 주시는 건 주시는 거고 네가 드리는 건 드리는 거다, 하니 받는다.
그런데 이놈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챙기는 걸 못 봤다.
월급도 많이 타는 놈이 오히려 그런 걸 더 못한다.
나름대로 다 살기가 어려워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아침에 따서 쪄놓은 옥수수를 가지고 바로 올라간다.
뒷모습이 개운하게 깔끔스럽지 않다.
어딘가 모르게 흑수저로 태어난 게 원망까지는 아니라도 많은걸 체념하게 만드는 거 같다.
저 아이가 저럴 정도면 세상에 젊은이들이 살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딘지 모르게 생각보다 세상에 험난함에 부딪쳐 많이 힘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대로 제법 잘 나간다고 생각되는 아이가 저러니 누구나 자신의 처지는 어려운 자리이고 만족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란 생각이다.
허긴 세상에 만족하는 인간이 얼마니 있겠는가 싶기는 하다.
그런데 만족 못하는 게 에너지가 되어 만족을 위한 것으로 발현되어 더 전진하고자 하는 생각이 중요할 텐데 거기까지는 아닌듯하다.
어머니는 손주와 공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네 아비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중학교 졸업장도 없지 하시는데 그런데 그게 자신의 아버지 일이지만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거 같아 약간은 서운했다.
이름하여 명문대를 나온 아이가 저렇다고 하는 생각까지 드는데 그게 아비의 책임이 될 수도 있다는데서 인생 참 씁쓸 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집에서 도망쳐 서러도 학교를 못 다녔지는 후회를 했어도 일만 시키는 부모에 대한 원망은 없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닌 거 같다. 원망은 아니라도 너무나 아쉬워하며 자기 인생에 있어 자랑스럽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 약간은 자조적인 그 무엇이 깔려 있는 거 같은 느낌이라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기대를 하거나 의지할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러니 나도 열심히는 살았어도 잘 산 것은 아니란 사실을 오늘 또 확인하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비관하거나 실망할 것은 없다.
어차피 자식은 부모 책임이며 부모는 자식 책임이 아닌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시대를 살고 있으니 거기에 순응하면 된다.
아직도 아이들에게 할게 남아있다는 걸 오늘 다시 느끼는 그런 날이니 다행이다.
이 말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로 그냥 새기면 되는 것이지 생각한다.
그렇다, 예전 같으면 산에 가 있어야 할 나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으니 남아있는 그 문제, 그 희망을 마무리 달성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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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님 아드님이 흑수저면 울집 애들은 그냥 손가락으로 먹는 거네요. ㅎㅎ
자기 몫 열심히 살겁니다. 염려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