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위

in #zzan3 days ago (edited)

어머니의 상태가 좀 좋아진 거 같다.
다행이다.
이는 어머니도 느끼시는 거 같다.
그러니 이제는 또 걱정이 생기신 거 같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실 때만 해도 얼마 못 살 거 같으니 집에 가서 죽지 하셨단다.

그런데 요즘 많이 좋아지셨는지 배에도 살이 찌셨다며 내 금방 죽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백살도 더 살 거 같다며, 내게 살짝 말씀하시기를 며느리에게 미안하니까 나 요양원으로 보내 줘라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럴듯하다.
아주 깜빡 속아 넘어가기 그렇듯 하게 말씀을 하신다.
이야기는 이렇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 살 거 같은데 며느리를 너무 고생시키는 거 같고 집에서 바쁜 사람들 붙들어 놓고 있는 것도 미안하다.
그런데 요양원 가면 병원 가면 친구들도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은 없다.

그런데 집에서는 너희들 아침에 밭에 간다고 나가면 나 혼자 있어야 하는데 요양원 같은데서는 항상 옆에 사람이 있지 않느냐 그리고 요양원 같은데서는 밤에 참도 준다.
그러니 나도 편하고 너희도 편하게 요양원으로 보내 줘라, 이 말씀이시다.

난 이런 말씀이 속상하다.
눈치를 보게 해 드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 연세에 이 상황에서도 자식 생각이 우선이시니 그것도 속상하다.
물론 혼자 두어시간 계시게 할 때는 죄송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가기 전에 기저귀를 갈아 드리거나 뭔가 좀 드시게 하거나 하여 나름 어머니에 대한 여타 일들을 감안하여 조치를 취하고 나간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러저러한 것을 두루 생각하시어 양수겸장을 하듯 말씀을 하시는 거다.
그런 말씀에 응대를 하다 보면 잘못하면 말려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가급적 모른 척 엉뚱한 이야기를 둘러대는 게 내 방식이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서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니, 아직도 자식 생각이 먼저면 어쩌시겠다는 건지 좀 편히 지내시면 안 되나 싶다.
또 한편으로는 혹시 눈치를 보시는 건가, 아니면 요놈들의 진심이 뭔지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건가 싶어 속상할 때도 있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이 어머니의 말씀을 그럴듯하게 듣고 요양원 알아볼까요, 하는 눈치라도 보여드리면 안 된다.
그러면 어머니는 바로 마음 정리 하실 분이다.
그러니 절대로 그런 눈치를 안 보여야 한다.
하여, 시장에 가서 장을 봐가지고 오는 아내를 향해 속상한 투로 어머니 요양원으로 가시면 좋겠다고 하시네 했다.
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하지 말라는 말까지 해가며 아예 고자질하듯 해버린 것이다.
아내는 어머니의 수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며 어머니를 달래 드린다.

아내랑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니 아내가 웃으며 한마디 한다.
어머니가 한수 위에 계세요,
우리가 뭐라 할까 봐 어머니가 먼저 포석을 깔고 선수를 치시는 거 같아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라며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라며 그럴 땐 모른 척 그냥 넘기거나 져드리거나 하면 돼요 한다.

그렇다, 잘 모르겠다는 투로 모른척하며 져드리거나 어머니 계산 속에 있는 답을 능청스럽게 하면 된다.
그 게 최고다 싶다.
어머니가 정말 하고 싶은 속 마음은 그게 아니란 걸 알면 된다.
빨리 건강을 챙기시어 화장실만 거동하실 정도만 되어도 아니 그러실 거 같다.
지금은 그 정도로만 회복이 되면 그 이상의 축복은 없지 싶다.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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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steemzzang, this is such a touching and relatable post. The delicate dance of caregiving, the guilt, the love, and your mother's sharp wit really shine through. It's beautiful how you've captured the complexities of family dynamics and the unspoken communication that happens when caring for an elderly parent.

The way you navigate your mother's subtle requests and your wife's insightful understanding is heartwarming. I especially appreciate the humor mixed with the poignant moments. The line "어머니가 한수위에 계세요" really resonated!

Thank you for sharing this intimate glimpse into your life. It's a reminder to cherish these moments and to find the humor in the everyday. I'm sure many readers can relate to this. What are some other ways you navigate these conversations with your mother? Thanks for sharing!

그만 하시길 너무나 다행입니다.
어서 화장실 가시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