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탱크(김희재)

in #zzan10 hours ago (edited)

IMG_1806.jpeg

탱크, 그러면 전쟁이 떠오르고 더하여 우리의 산하를 자근자근 밟았던 육이오도 생각난다.
인류의 지성이 좀 더 세련 되어져 이제는 야만스런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던 모두의 기대를 비웃으며 이 시각에도 지구 여기 저기가 펑펑 터지고 있다.
인간이 이토록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인 게 믿기지가 않는다. 모두에게 손해인 짓을, 아니 분명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있겠지만, 왜 이런 정신나간 짓을 하는지.

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지혜롭지도 못하다. 그저 자기 안의 고독과 불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잘난 체 하는 유인원에 불과하다.
그런 인간들이 장벽이 만나면 어떻게 할까. 손가락이 헤지도록 장벽을 기어 오를 것이고 열 받아 두드려 부수는 자들도 있을 것이며 그것도 아니면 포기하고 돌아앉을 것이다.

포기한 사람들의 그 다음 행동은?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한계를 인식하고 신을 찾는 것이다. 그들은 신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편안해 한다. 더러는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개입하는 교주를 받들기도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시름을 잊게 하는 물질에 자기를 맡기는 것이다. 환각과 마비는 근심 걱정을 몰아내주나 다음 날 더 큰 환멸이 몰려온다는 게 문제다.

이 책에서의 '탱크'는 '잠재의식의 탱크'로 하나의 상징적인 장소를 뜻한다.
보기에는 흔해빠진 컨테이너인데 그것이 산속이라면, 그것도 약간 특이하게 생긴 큰 바위 근처라면, 나아가 캄캄한 그 안에서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마주하고 통곡할 수 밖에 없도록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면 '탱크'의 의미가 아주 색달라지는 것이다.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이 탱크에 와서 명상 혹은 기도를 하고 간다. 탱크를 설치한 사람은 임용고시에 계속 낙방하는 여자의 성이 다른 언니다. 언니는 세상살이에 지쳐있다가 출장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탱크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감화를 받아 한국에도 비슷한 시설을 설치했다.
탱크의 존재는 비밀리에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탱크를 찾아 위안을 받았으며 성스러운 장소로 인식되어 갔다.

그러다 겨울 마른 바람에 산불이 번졌고 그것이 탱크도 삼버렸다. 당시 탱크 속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해받지 못해 부모 곁을 떠나 온 대학생과 그를 사랑하는 공장 근로자 남자가 있었는데 어인 일인지 대학생은 이미 숨져 있었고 그의 연인은 곁에서 절규하고 있다. 기도하러 왔던 시나리오 작가가 발견하고 둘을 탈출시킨다.

탱크 설립자인 언니는 무허가 건축물로 인해 구속되었는데, 구속된 상태에도 또 컨테이너를 들여 새로운 탱크를 구상중인 것에 반감을 품은 동생은 언니의 계획을 본격적으로 막아 선다. 사이비 종교가 다 그렇게 시작 되는 것이라면서.

생각해 보니 특별한 주제는 없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힘든 삶을 등에 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는 거. 그나마 산불이 모두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니 안전한 곳은 세상에 없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을 꽤 읽었는데, 생활형 작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노동은 삶의 근간이 되는 아주 진지한 것이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몰입감이 좋다.



김희재/ 2023 / 한겨레출판 / 15000/ 장편소설

Sort: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