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9, 음성 전투에서의 부상과 복귀
7연대는 춘천에서 원주를 거쳐 충주로 철수를 했다. 청주에서 3일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데 7월 5일 경 명령이 내려왔다. 음성에 적이 들어왔으니 이를 격파하고 전진해서 무극리를 점령하라는 것이었다. 음성근처의 기름고개에서 적군을 만났다. 적은 첨병부대였다. 대대는 1중대를 우측에 3중대를 좌측에 그리고 제2중대를 예비로 공격을 실시했다. 적은 1개 대대 규모였다. 저녁까지 적을 공격하고 밀어부쳤다. 한참 전진을 하고 있는데 적의 대포가 앞에 보였다. 일몰이라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대용은 저 대포를 뺏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중대의 예비소대인 3소대장인 손종구 소위를 불렀다.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너무 빨라 뛰어 나간 것이었다. 그 순간 적이 기관총 소리가 앞에서 들렸고 대포가 이대용을 향해 포를 발사하는 것을 보았다.
비가 오고 있었는데 직흙이 확올라오면서 몽둥이로 후려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5미터 정도 붕 떴다가 뒤로 날라가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앞에 있는 카빈 소총을 간신히 다시 잡았다. 그리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모두 9군데에 파편과 기관총탄을 맞았다. 다행이 모두 뼈를 살짝 비켜갔다. 볼에도 맞았으나 다행히 눈에는 부상을 입지 않았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데 하사관 한명이 와서 업고 군의관에게 데리고 갔다.
군의관은 조현묵 대위였다. 아직 의식이 있었을때라 조현문 대위가 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연신 “아휴 야단났네. 중상이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위험한데 어쩌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팬티하나만 입히고 부상부위는 모두 붕대로 감아서 트럭으로 후송되었다. 약 10명정도가 같이 후송되었다. 병사들은 “어머니” 하면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모두 죽은 것이었다.
청주 도립병원에 도착한 다음에 바로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은 다음에는 모든 것이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한참이 지나 눈을 떴다. 낮인 것 같은데 컴컴했다. 왜 대낮이 이렇게 컴컴하냐라고 물었더니 지금 해가 쨍쨍한데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했다. 시력이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벌써 미국의 의약품들이 들어오고 있어서 응급조치를 받은 다음 바로 기차로 부산 5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부산 5병원에서 이대용을 수술한 군의관은 이경용 대위였다.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이대용을 보고 바로 수술을 시작했다. 모두 두번에 걸쳐 수술을 했다. 파편을 모두 제거하고 누워있을때 간호장교 최소위가 돌봐주었다.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서 대소변을 해결해야 했다. 최소위가 모두 대소변을 받아 주었다. 의정부 출신이었고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씨가 너무 착해서 마음에 들었다. 살아 남으면 최소위에게 장가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가 곪아서 다시 수술을 하고 붕대를 감고 있는데 낙동강이 위험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선으로 복귀하려고 했으나 군의관 이경용 대위가 무슨소리냐 이몸으로는 못간다고 막아섰다. 어찌어찌하다가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7연대 부식차가 부식을 구매하러 부산시장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7연대 중대장으로 다시 복귀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부식차를 타고 병원에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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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 갑니다
이대용 장군 녹취록, 계속 잘 읽고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제 안위는 살피지 않는 진정한 애국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