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어떻게 인간이 인간다움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기꺼이,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영원의 절대적 고독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

그들은 의식, 추적, 의도의 마스터로서, 다른 필멸자들처럼 죽음에 붙잡히지 않고, 이 세상에서 떠나는 순간과 방식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했다. 그 순간 그들은 내면의 불에 휩싸여 지상에서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유롭게.
죽지않고 세상을 떠나는 꿈을 꾸었다. 성서에 기록된 에녹과 엘리야처럼. 그들은 죽지않고 사라졌다고 했다. 아직 남은 꿈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했다. 죽지않고 떠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나구알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 이들이 인간의 역사에 계속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사의 목표라고 말했다.
돈 후안은 완전한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선견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죽음 거스르기의 정수(quintessence)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구알의 우주는 독수리의 들숨과 날숨 같은 것이다. 독수리가 발산한 빛의 어떤 조합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인간을 이루는 띠(band)속에서 의식을 조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조합점이 이동할 때마다 다른 현실이 등장하는 것이다. 평행우주, 타임머신처럼.
첫 번째 진실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익숙함이 우리를 둘러싼 물체들이 우리 인식대로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믿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물체의 세계는 없고, 독수리의 발산으로 이루어진 우주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독수리가 독수리인 것은 태초의 그것, 우주, 본질의 형상이 마치 독수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선견자들이 그것을 그렇게 보았다고 했다.
그는 고대 선견자들이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유정 존재의 근원인 묘사할 수 없는 힘을 실제로 봤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독수리라고 불렀다.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몇 번의 짧은 순간에서, 그들은 그것이 무한한 크기의 흑백 독수리를 닮은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그들은 독수리가 의식을 부여하는 존재임을 봤다고 했다. 독수리는 유정 존재들을 창조해 그들이 살아가며 독수리가 준 의식을 삶으로 풍요롭게 하도록 한다. 그들은 또한 독수리가 죽음의 순간에 유정 존재들로 하여금 그 풍요로워진 의식을 포기하게 한 뒤, 그것을 삼킨다고 봤다.
"그들은 유정 존재의 의식이 죽음의 순간에 날아가 빛나는 솜털처럼 독수리의 부리로 떠올라 소멸되는 것을 봤지. 고대 선견자들에게 그것은 유정 존재들이 오직 독수리의 먹이인 의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산다는 증거였어."
그는 고대 선견자들은 유기적 존재의 높은 에너지와 그로 인한 높은 의식 발달이 독수리에게 맛있는 먹잇감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독수리는 유정 존재들의 의식을 먹고 산다. 인간이 달걀을 삶아 먹듯, 잘 키워 닭으로 잡아먹듯, 무럭무럭 자라나는 인간의 의식은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삼켜지는 것이다. LCL의 바다에 흡수되듯이, 흙에서 온 것이 흙으로 돌아가 토양을 비옥케 하듯이. 독수리는 신인가? 우주인가? 그는 인간이 가진 신의 이미지란 인간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비적 경험을 우연한 보기(chance seeing)라고 불렀다.
“그건 조합점의 무작위 이동 결과로 생긴, 단발성 사건이야. 전혀 의미가 없지.”
그는 새로운 선견자들만이 이 문제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들은 우연한 보기를 배제했고, 원하는 만큼 자주 인간의 틀을 볼 수 있었지.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무런 힘도 없는 정적인 인간다움의 원형(prototype)이라는 걸 봤어. 인간의 틀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대신해 개입하거나, 우리의 잘못을 벌하거나, 우리에게 보상할 수 없어. 우리는 단지 그 틀이 찍어낸 산물이야. 우리는 그 틀의 흔적이야. 인간의 틀은 이름이 말해주듯 정확히 패턴, 형태, 특정 섬유 같은 요소들을 묶어 인간이라고 부르는 주형(cast)이야.”
“자네가 보는 걸 가능하게 한 건 나구알이야. 나구알의 기술, 나구알의 힘이지. 나구알은 안내자야.”
그 순간, 나는 귀에 들리는 목소리에 대해 뭔가를 깨달았다. 그건 돈 후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록 그의 목소리와 매우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옳았다. 그 보기를 촉발한 이는 나구알 후안 마투스였다. 그의 기술과 힘이 내게 신을 보게 했던 것이다. 그는 그게 신이 아니라 인간의 틀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옳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짜증이나 고집 때문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신성에 대한 궁극적인 충성심과 사랑 때문이었다. 내가 온 열정을 다해 빛을 응시하자, 빛이 응축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한 남자를 보았다. 카리스마, 사랑, 이해, 진실함, 진실을 발산하는 빛나는 남자. 모든 선한 것의 총합인 남자. 그 남자를 본 순간의 열정은 내가 평생 느껴본 어떤 것보다 강렬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신으로 의인화된 존재를 숭배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 후안이 끼어들어 내 왼쪽 상부 가슴, 쇄골 근처를 쳤고, 나는 신의 모습을 잃었다. 나는 후회, 환희, 확신, 그리고 의심이 뒤섞인 감질나는 느낌만 남았다.
나는 왜 항상 인간의 틀을 남성으로 보았는지 물었다. 그는 그건 당시 내 조합점이 새 위치에 완전히 고정될 안정성이 부족해서 인간의 띠(band) 안에서 측면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합점을 측면으로 이동시킨 것은 불가해한 것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으로 해석하려는 거의 피할 수 없는 욕망, 또는 필요 때문이었다.
나구알의 우주론은 일체유심조의 신비론 그 자체인 듯 보인다. 그러나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세계. 마음의 환영이면서 동시에 물리적 작용의 세계인 양자 우주는 전사들이 육체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다. 그들의 이동은 유체 이탈이 아니다. 그들은 육체를 가진 채로 이동한다. 게다가 육체를 복사하기까지 한다.
돈 후안은 조합점이 인간의 고치 중간선(midline)을 넘어 이동하면 우리가 아는 세계가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단언했다.
“마치 지워진 것처럼.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의 안정성과 실체성은 단지 정렬(alignment)의 힘이야.”
특정 발산들은 조합점이 한 특정 지점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정렬된다.
“그게 우리 세계의 전부야. 세계의 견고함은 환영(mirage)이 아니야. 환영은 조합점이 어떤 지점에 고정되는 거야. 선견자들이 조합점을 이동시킬 때, 그들은 환영과 마주하는 게 아니야. 다른 세계와 마주하는 거지. 그 새로운 세계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만큼이나 실제야. 하지만 그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새로운 조합점의 고정은, 예전의 고정만큼이나 환영이야.
자네를 예로 들어보지. 자네는 지금 고양된 의식 상태에 있어. 이 상태에서 자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환영이 아니야. 그건 내일 자네가 일상에서 마주할 세계만큼이나 실제야. 하지만 내일이면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건 자네의 조합점이 지금 자네가 있는 특정 지점으로 이동했을 때만 존재하지.”
....
갑자기 돈 헤나로가 말했다.
“나는 일어나지 않고 내 몸을 이 벤치에서 떠나게 할 거야.”
돈 헤나로가 내 주의를 끌려고 나를 쿡 찔렀다. 그리고 나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실제로 광장 반대편에 있는 헤나로를 보았다. 그는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돈 헤나로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돈 후안처럼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경외감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주위의 어떤 힘이 나를 묶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시 광장 반대편의 헤나로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고, 고갯짓으로 나에게 함께 가자고 손짓했다. 내 감정적 혼란은 초 단위로 커졌다. 속이 울렁거렸고, 마침내 터널 시야가 생겼다. 그 터널은 광장 반대편의 헤나로에게 곧장 이어졌다. 그러다 강한 호기심, 혹은 그 순간엔 같은 것처럼 느껴진 강한 두려움이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나는 실제로 공중을 날아 그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는 나를 돌려세우고, 세 사람—벤치에 앉아 있는—을 가리켰다. 그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인 자세였다.
나는 끔찍한 불편함, 마치 내 몸 안의 연약한 장기들이 불타는 듯한 내적 가려움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벤치에 있었다. 하지만 헤나로는 사라졌다. 그는 광장 반대편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돈 후안은 매우 활기차 보였다. 그는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일어나 내 주위를 걸어 다녔다. 다시 앉아서 나와 이야기할 때 얼굴을 찡그리지 못했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돈 후안의 도움 없이 고양된 의식 상태에 들어갔다. 헤나로는 내 조합점이 스스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조합점, 고정된 인식이 생겨나기 전에는 누구나 이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과 사회화를 거쳐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자유는 속박과 함께 하는 것이다. 고정되는 것이 없다면 풀어지는 것도 없다. 조합점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되는 것은 그것이 고정되는 어느 시점으로부터이다.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고정되고 그 이후에는 누구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삶의 전부라고 여긴다. 닭장 속에서 독수리의 먹이가 될 차례를 향해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독수리 우주의 섭리이자 모든 유정 존재의 운명이다.
“나는 인간이 유아일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했어. 그 시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끝없는 대화를 반복하도록 가르치네. 그 대화는 내면화되고, 그 힘만으로 조합점이 고정된다네. 새로운 선견자들은 유아들이 조합점을 정확히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수백 명의 교사를 가진다고 말해.” 그가 말했다.
그는 선견자들이 유아의 조합점이 처음에는 고정되지 않은 것을 본다고 말했다.
“그들의 갇힌 발산은 큰 혼란 상태에 있고, 조합점은 인간의 띠 안에서 여기저기 이동하지. 이건 아이들에게 나중에 완전히 무시될 발산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큰 능력을 주네. 그러다 그들이 자라면서, 주변의 나이 든 인간들이 그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점점 더 복잡한 내면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조합점을 더 안정되게 만드네.” 그가 말했다.
그는 내면의 대화가 조합점의 위치를 끊임없이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 위치는 임의적인 것이어서 꾸준한 강화를 필요로 해.” 그가 말했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본다네. 보는 아이들 대부분은 괴짜로 여겨지고, 그들의 조합점 위치를 굳히기 위해 모든 노력이 기울여져.”
독수리 우주의 법칙이 원래 그러했는지 모른다. 독수리의 천지창조 목적이 잘 익은 의식을 먹이로 섭취하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의식은 태어나 잘 자라면 그만인 것이리라. 그것을 위해 인간의 조합점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밴드에 고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운명이겠지. 그러나 나구알은 그것이 인간의 운명일지언정, 인간, 전사의 궁극적인 성취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성취는,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그 주의 수준에 도달하는 거야. 육체 없는 의식이 되어 독수리의 부리로 깜빡이는 빛처럼 올라가 삼켜지지 않고 말이야."
"자유는 독수리가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야. 불행히도, 아주 적은 사람만이 그 엄청난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건 충분한 에너지라는 걸 이해하지. 그게 우리가 필요한 전부라면, 우리는 반드시 에너지의 구두쇠가 되어야 해.”
“전사의 길을 매우 위험하게 만드는 건, 그게 현대인의 삶의 상황과 정반대이기 때문이야. 현대인은 미지와 신비의 영역을 떠나 기능적인 영역에 정착했어. 불길하고 환희로운 세계에 등을 돌리고 따분한 세계를 환영했다네.”
나구알의 가르침이 여타의 영적 가르침과 다른 것은 우주의 신비가 인간을 향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구원이 우주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수리는 그저 인간의 의식을 먹이로 삼을 뿐이고 대부분의 인간은 독수리의 날숨으로부터 태어나 인간 밴드 울타리 내에서 무럭무럭 자라 한 생을 살고, 독수리 들숨의 먹이로 생을 마감하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나 전사들은 독수리가 준 선물을 놓치지 않는다. 불길하고 환희로운 세계로 육체를 가진 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어떤 밴드에도 고정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영혼의 노마드로서.
그는 새로운 선견자들이 내린 가장 행운의 결정 중 하나는 조합점을 고양된 의식(heightened awareness) 이외의 어떤 위치에도 영구히 고정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 위치에서 그들은 무의미함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단순히 죽을 다른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의식, 완전한 자유를 선택한다는 답을 찾았다.
그들은 떠났다. 어느 밴드에도 고정되지 않는 그들은 무한한 독수리의 우주를 향해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슬픔일 것이다. 고정되고 익숙한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큰 슬픔이다. 어디에도 나의 집이 없기 때문이다. 정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독수리 먹이로써의 본능이다. 양식되는 인간의 의식은 노마드의 삶을 거부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테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강조되고 또 강요된다. 그러나 자유의 전사들은 집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밴드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
내 평생 이렇게 깊은 우울을 느낀 적은 없었다. 뚜렷한 근거가 없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것을 거울에서 본 깊이에 대한 기억과 연관 지었다. 그 깊이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그 섬뜩한 고독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돈 후안은 전사의 삶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슬퍼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선견자들은 빛나는 달걀, 즉 에너지 장이 알려진 경계를 깨뜨릴 때마다 최종 목적지를 감지한다고 한다. 고치 밖 영원의 단 한 번의 엿봄만으로도 우리 목록의 안락함이 무너진다. 그로 인한 우울은 때로 너무 강렬해서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는 우울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롱하는 투로, 내 첫 번째 주의가 맹우와의 접촉으로 무너진 질서를 복원하려고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복원할 수 없으니, 내 첫 번째 주의는 모든 힘을 슬픔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우울이 진짜라고 말했다. 그것에 빠져들거나 우울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그 깊이를 떠올리며 느낀 고독감과는 달랐다.
“마침내 뭔가가 자네에게 스며들고 있어. 자네 말이 맞아. 영원보다 더 고독한 건 없지. 그리고 우리에게 인간으로 있는 것보다 더 안락한 것도 없어. 이건 또 다른 모순이야. 어떻게 인간이 인간다움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기꺼이,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영원의 절대적 고독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 이 수수께끼를 풀 때, 자네는 최종 여정에 준비될 거야.” 그가 말했다.
나는 내 슬픔의 이유를 완전히 확신하며 알았다. 그것은 반복되는 감정이었다. 내가 같은 것을 다시 깨달을 때까지 항상 잊곤 했다. 거울에 비친 그 자체의 거대한 것에 비해 인간의 보잘것없음이었다.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돈 후안.” 내가 말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 맞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게 바로 궁극의 도전을 만드는 거지. 우리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영원의 고독에 실제로 맞설 수 있다는 거야.”
이 노마드 전사들의 가르침은 신으로부터 계시된 천상의 가르침이 아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또한 탐구적이다. 그들은 모험가이고 탐험가이며 도전가이다. 그들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우주의 신비를 직접 탐험해 들어갔다. 그들의 지식은 하늘로부터 계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경험한 지식이다. 그러므로 완전하지 않을진 모르나 인간으로서 온전하다. 경험되고 실험되었으므로.
나는 이 사실에 매료되었다. 어떤 가르침도 죽어보기 전까지, 심지어 죽어서도 완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된 세계는 그것만큼 나의 것이다. 그리고 탐험하고 모험하는 인류는 그 도전과 경험의 지경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왔다. 이제 우주로 나아갈 차례이고 인간 의식의 심연으로 빠져들 차례이다. 그것이 독수리의 세계로 이어진들 탐험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돈 후안은 전사들이 훈련을 마칠 때, 정상 의식 상태에서 시작해 혼자 힘으로 인식의 장벽을 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구알은 전사들을 그 문턱으로 이끌지만, 성공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 나구알은 그들을 계속 밀어붙여 스스로 헤쳐 나가게 시험할 뿐이다.
“정렬(alignment)을 일시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정렬이야.” 그가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일상 세계를 지각하게 하는 정렬을 취소해야 해. 조합점을 새로운 위치로 의도(intent)하고, 그 위치에 충분히 오래 고정되도록 의도함으로써, 자네는 다른 세계를 조합하고 이 세계를 벗어날 거야. 고대 선견자들은 바로 그걸 했어. 그들의 조합점을 일곱 세계 중 하나에 위치시키는 위치에 고정되도록 의도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죽음을 거스르고 있지.”
“내가 다른 세계를 정렬하는 데 성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내가 물었다.
“자네는 그 세계로 갈 거야.” 그가 대답했다.
“헤나로가 이곳에서 정렬의 신비를 보여줬을 때 했던 것처럼.”
“돈 후안, 저는 어디에 있게 될까요?”
“당연히 다른 세계에 있겠지. 어디겠어?”
“주변 사람들, 건물, 산, 그리고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되나요?” 내가 물었다.
“자네가 깬 바로 그 장벽, 인식의 장벽에 의해 모든 것과 분리될 거야. 죽음을 거스르려 자신을 매장한 선견자들처럼, 자네는 이 세계에 있지 않을 거야.”
그의 말을 들으며 내 안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내 일부는 돈 후안의 입장이 터무니없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그가 옳다는 걸 의심의 여지 없이 알고 있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 한복판, 꽉 막힌 교통체증 속에서 조합점을 이동시키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로스앤젤레스는 한 줌 바람처럼 사라질 거야.”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는 남아 있을 거야. 그게 내가 자네에게 설명하려 했던 신비야. 자네는 그걸 경험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했어. 그리고 오늘, 자네는 그걸 이해할 거야.”
LCL의 바다에 흡수되는 것은 모든 존재의 종착지일 테니, 영원에 속하고 싶다면 어느 때에라도 선택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구알의 선견자들은 용감하게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졌다. 그것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다. 그들은 심연으로 몸을 던진다.
며칠 후, 나구알 일행 전원과 모든 견습생들이 돈 후안이 말했던 평평한 산꼭대기에 모였다. 돈 후안은 모든 견습생이 이미 모두와 작별을 나눴으며, 우리 모두 감상주의를 허락하지 않는 의식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행동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완전한 전쟁 상태에 있는 전사들이었다.
돈 후안은 우리를 정상 의식 상태로 들어가게 했다.
해질녘, 파블리토, 네스토르, 그리고 나는 심연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돈 후안과 나구알 일행은 내면의 불(fire from within)로 불타올랐다. 그들은 완전한 의식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유라는 경이로운 선물을 받아들일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파블리토, 네스토르, 그리고 나는 그 협곡 바닥에서 죽지 않았다. 앞서 뛰어내린 다른 견습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바닥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으로 뛰어내리는 그 엄청나고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의 충격 아래, 조합점을 이동시켜 다른 세계들을 조합했다. 이제 우리는 고양된 의식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의 전체성(totality)을 되찾기 위해 남겨졌다는 걸 안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이 기억할수록, 우리의 환희와 경이로움은 더 강렬해지지만, 동시에 우리의 의심과 혼란도 더 커진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다움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기꺼이,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영원의 절대적 고독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
나의 여정도 여전히 이 질문에 머물러 있다. 나구알의 전사들은 혼자서는 그곳에 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 전사의 행렬에 함께 뛰어들 영혼의 나툼, 소울 메이트들을 찾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두려움과 그들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 독수리의 먹이가 될지언정, 아니면 죽지 못하고 영원히 수많은 빛의 밴드 속에서 길을 잃을지언정, 그 인간다움의 유대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마음에 새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감히 내가 접한 모든 영적 가르침 중 최고라고 손꼽았다. 그것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사에 관한 이야기. 모험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두루미가 내게 물었다.
"만일, 이 순간 나와 함께 심연으로 뛰어들 수 있겠냐고 물으면 그대로 손을 뻗어 인식의 장벽 너머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맹우가 우글거리는 초자연의 들판으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야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의 공포 속으로, 그러나 인간다움의 유대가 살아 숨 쉬는 거친 모험 속으로 나와 함께 떠날 수 있겠는가?"
나는 답했다.
언제나 그래왔다고,
지금도 전사들을 기다린다고.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달라. 왜냐하면 우리는 길의 끝에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아무것도 찾지 않아. 우리 모두가 여기서 하는 건 전사에게만 이해되는 거야. 우리는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다네. 우리는 기다리고 있어. 나는 이 말을 반복하는 데 지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알아. 우리는 자유를 기다린다! 이제 자네도 그걸 알았으니,”
[위즈덤 레이스 + Book100] 020. The fire from within_ Carlos Castaneda
유대와 절대 고독. 자유 안에서 뜨겁게 숨쉬는 전사들!
함께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