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행전 Reboot] 날아오른 걔
공항 활주로에 정비사들이 도열해 나란히 섰다. 작열하는 7월의 태양 빛 아래 한 치도 소홀할 수 없는 정비사들은 비행의 무사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활주로에 도열해 서 있었다.
숲의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태양의 시대는 시작부터 화마를 이끌고 천지에 호통을 쳐댔다. 날아가는 것들을 잡아채기도 하고 거꾸러 떨어뜨리며 위용을 자랑해 댔다. 누가 태양에게로 날아갈까. 날개가 녹아내려 버린 소년의 과거를 잊었던가.
눈부신 활주로를 바라보던 마법사는 도열한 정비사들 머리 위로 힘겹게 날아오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무언가 태양을 향해 하늘을 박차고 날아오른 것이다. 너무나 힘겨워 보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날아오르고 있는 그 모습에 고군분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려는 것들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을까 두렵고,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의 폭염 속에서는 날개가 녹아내릴까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격납고에 전시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추락을 하더라도 날아올라야지. 활주로를 내달리고, 박차고 올라 태양 속으로 나아가야지. 관대한 태양신은 용기 있는 도전자를 품에 안아주시리라. 불같은 기운으로 오랜 상념의 찌꺼기와 거칠게 돋아난 영혼의 가시들을 불살라 주시리라.
예열을 마친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비사들은 마지막 인사를 정중하게 허리 굽혀서 하고는, 움직임을 시작한 비행기와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빤히 바라고 있던 마법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힘겹게 이륙하여 저 멀리 점이 되어 가고 있는 비행기와 손을 흔들며 배웅 하고 있는 정비사들을 보고 있던 마법사는 갑자기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그런 광경을 보고 싶다.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무엇이
박차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광경을,
모두가 날아오른 그것에 꽂혀
세계가 정지되던 그 광경을,
움직이지 못한 채로,
말도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로,
아, 저거 걔 아니야?
까맣게 잊고 있던 걔가
갑자기 날아오른 광경.
그 아이가 날아오른 광경.
마법사는 갑자기 섬광처럼 떠오른 광경에 푹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광경은. 언제나 보고 싶던 그 광경은. 마법사의 이번 생에 좀처럼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걔가. 이번에는, 이번 생에는 날아올랐으면 좋으련만. 까맣게 잊고 있지 않아 그랬던가. 오만한 희생과 앞서나간 헌신이 운명의 중첩 상태를 자꾸 붕괴시켜 그랬는가. 가만두었더라면, 까맣게 잊었더라면 걔는, 걔는 날아올랐을까?'
마법사는 자꾸 마음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주르륵주르륵 흘려 댔다.
'날아오르고 싶은 건 마법사가 아니야. 날아오르고 싶은 건 비행기. 비행기야. 비행기는 날아오르기 위해 탄생했으니까. 나는 그 광경을, 걔가 날아오르는 그 광경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걸 보고 싶었어.'
그게 보고 싶어 900년을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면 온 세상에 날아오르려는 걔들을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마법사는 그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 소망하고 소원했다.
'한 번도 없었다고,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야. 매번 생의 기억은 리셋되고 마니까. 그런데 목마름이 있는 거야. 한 번도 보지 못해 그런지도, 충분히 보지 못해 그런지도, 아니면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어 그런지를, 나는 몰라. 그 이유를 나는 몰라.'
마법사를 태운 비행기도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기체를 심하게 흔드는 난기류를 뚫고 마침내 구름 위로 날아올랐다. 얼굴을 파묻은 채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마법사를 창공의 고요 속에서 태양이 반겨주었다.
"어서 오렴. 태양의 시대가 시작되었단다."
_ [마법행전 Reboot] 1장. 날아오른 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