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셋,

in #stimcity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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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지팡이 위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아니 기절을 했다. 마법사는 고소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사막여우에게 간을 파먹힌 이후로 마법사에게는 전에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겨났다. 사실 모두가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만 건강한 간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해 주고 있을 뿐.



서쪽 마녀는 자신의 등에 기대어 기절해 버린 마법사의 체온을 느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위키드 해지시라니까...'



마법사는 도통 서쪽 마녀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했다. 런던에 처음 방문한 마법사에게 서쪽 마녀는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마법을 부렸다. 들뜬 마음으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예매한 마법사는 기쁜 마음에 티켓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를 본 서쪽 마녀는 마법사의 티켓을 뮤지컬 <위키드>의 티켓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리고 공연 당일, <빌리 엘리어트> 공연장에 도착한 마법사는 입장을 거부당했다.



"헤이~ 마법사 양반, 이건 뮤지컬 <위키드> 티켓이라구."



검은 정장을 입은 공연장 시큐리티 요원이 마법사에게 티켓을 돌려주며 말했다. 마법사는 티켓을 다시 확인하고는 망연자실해졌다. 그리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아, 내가 뒤에 '~ed'만 얼핏 보고 'Reserved'로 착각 했나보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사악한 서쪽 마녀가 마법사의 티켓을 바꿔치기했다지. 마법사는 내용도 모르고 대사도 못 알아듣는 이상한 뮤지컬을 보며, 간절히 보고 싶었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렸다.



'그걸 보려고 런던에 온 건데. 나도 무대를 박차고 뛰어오르고 싶었는데.'



가이드형 마법사인 그는 날 줄을 모른다. 그에게도 날개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포탈 여행자들과 함께 지구를 걸어야 하기에 날개를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백조처럼 날아오르던 영화 속 빌리를 보고 멋지다 생각했다. 그와 함께하는 포탈 여행자들이 미운 오리의 허물을 벗고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동행을 약속했던 이들은 부모에게, 아내와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가로막혔다. 아니 그들을 방패 삼아 마법사와의 약속을 파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모두들 여우 같은 생활전선과 관습의 저주에 간을 파먹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기를 두려워했다. 추락의 공포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박차고 날아오르는 상승의 공포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상에서 멀어진다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연약한 간을 움켜쥐고는 자신을 미운 오리로 남겨 두었다.



그러나 위키드의 서쪽 마녀는 달리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언리미티드~"



그녀에게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중력 따위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아니 그녀는 여건과 조건을 방패 삼지 않아도 좋을 만큼 튼튼한 간을 가진 것이다. 서쪽 마녀는 마법사가 안쓰러웠다. 망가진 간으로 고군분투하는 그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위키드의 안식을 그가 누리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마법사 주위를 떠돌며 열심히 메시지를 남겼다. 마법사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위키드'의 메시지에 질려버릴 정도였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고개를 돌리면 온통 '위키드'라고 적힌 현수막이 가득했다. 게다가 귀국편 열차에서 우연히 본 영화 속 주인공은 마법사와 같은 이름이었고, 심지어 그와 그의 친구들은 '위키드'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의 일원이었다.



Wicked is good,
Wicked is good!
위키드는 좋은 거야
위키드는 좋은 거라고.



기절해 버린 마법사는 아직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포탈 순례는 '언리미티드'인 것이다. 브리튼 섬을 벗어나 에스파냐의 하늘에 진입한 서쪽 마녀의 지팡이는 순례자들의 종착지인 별들의 들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서쪽 마녀는 잠이 든 마법사와 순례자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오리인지 백조인지 깨닫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위키드의 마법에 자신을 내맡기기를 기원했다. 내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하다는 진리를 깨닫기를 바라며, 자신처럼 중력을 뚫고 비상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혼자 날아오른 하늘은 외롭기 때문이다. 아무도 비행하지 않는 상공을 날아다니는 자유는 홀로 뜬 달처럼 외롭고 또 외롭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한 신의 외로움이 서쪽 마녀의 가슴으로 밀려들자, 그녀의 눈에서 초록색 눈물이 흘러내려 대지에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에스파냐의 광활한 들판이 그녀의 눈물에 젖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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