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행전 Reboot] 바다의 교토
마법사들은 지구상의 포털을 통해 어떤 차원으로, 다른 차원으로, 다른 공간으로, 어떤 시공간으로 이동을 한다. 생은 다시 시작되고 마무리되지 않은 채 연속된다. 그러므로 마법사가 만난 이들 역시 중첩되고 연속되고 또 분리되어 있다. 한번에는 하나의 만남이, 또 그 만남은 지난 만남과 연속되어 있다. 마법사는 그래서 모든 만남이 익숙하고 또한 새롭다. 처음 만난 사람처럼 인연과의 만남을 새롭게 여기고, 매번 한결같은 인연과 또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목적은 하나다.
마법사는 교토의 바다를 통해 이 세기에 진입했다. 교토에는 사실 바다가 없다. 교토의 주요한 하천인 가모가와(鴨川)를 마법사는 바다라고 칭했다. 생명은 바다로부터이니까. 마법사의 새로운 생이 이곳에서 시작되었으니 바다로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토바다'라는 時적자아로써 마법사의 인격과 통합되었으며 또한 분리되었다.
마법사는 이제까지 교토에 바다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어머니의 바다인 가모가와만을 바다로 여겨왔는데 교토에도 바다가 있었던 것이다.
海の京都
바다의 교토는 교토시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일본 서쪽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海の京都'라고 부른다. 교토의 바다가 아닌 바다의 교토. 바다의 교토에서 마법사는 뜻밖에도 용을 만났다.
"용을 만나러 오셨구만."
자전거를 빌리려던 마법사에게 자전거 렌탈점의 노부인이 말을 걸었다.
"네? 용이라구요?"
"마법사 아니유? 딱 보니 마법산데."
"어..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가끔들 들러요. 자전거 빌리러."
노부인은 무심한 듯 마법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자전거 열쇠 꾸러미를 서랍에서 꺼냈다.
"아, 그런데 저 산에는 올라 갔다 오셨수?" 노부인이 자전거 열쇠를 꺼내다 말고 마법사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산이요? 무슨 산이요?"
"아, 저기 뷰랜드라고 경치 좋은 산 있어요. 거기 갔다 오셔야 용을
만나지."
"산 이름이 뷰랜드예요? 희한한 이름이네. 어.. 어디로 가면 되죠?"
노부인은 손가락으로 가게 너머로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저 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곳에 가면 용을 부를 수 있는 반지가 있다며.
"반지라구요?"
"나는 반지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고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암튼 용을 만나려면 반지를 먼저 찾아야 해요. 다녀오슈. 자전거는 준비해 놓을 테니." 노부인은 자전거 열쇠 꾸러미를 도로 서랍에 넣고 닫으며 마법사에게 먼저 산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마법사는 얼떨결에 산에 오르게 생겼다며, 이게 잘하는 짓인지 망설였다. 하지만 노부인의 말이 직관어로 들렸기 때문에 간과할 수는 없었다.
교토에도 바다가 있다고. 교토의 바다가 아닌 바다의 교토를 찾아가는 일은 알게 된 이상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마법사가 교토의 바다를 통해 이 시공간에 진입한 지도 어언 15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바다의 교토에 닿게 되었다. 그런데 용이라니.
'용이라니, 이제 용과 싸워야 할 차례인가?'
마법사는 용과의 싸움이 내키지 않았다. 태양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시작부터 용과 대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 피곤한데, 산에 언제 오르지?'
마법사는 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마스터 회의의 뒤풀이로,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급작스런 산행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새벽 사원에서의 춤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마법사는 버스를 타고 바다의 교토를 오는 내내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사원에서의 춤을 생각했다. 시나와 입을 맞추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깨어나 보니 바다의 교토로 가는 고속버스 안이었다. 꿈을 꾸었는지, 환상을 보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부채 삼아 들고 있던 사원의 소개 책자만이 현실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새벽의 사원, 시나의 춤, 바다의 교토 그리고 용이라니...'
마법사는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빠져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여우가 나타났다. 마법사는 처음에는 들개인가 싶어 한참을 바라봤다. 귀의 모양과 꼬리가 누가 봐도 여우였다. 여우는 마법사와 한동안 눈을 마주치고 꼼짝도 않더니 꼬리를 살살 흔들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어디론가로 마법사를 이끌었다. 마법사는 홀린 듯 여우를 따라나섰다. 한동안 오솔길을 이리저리 끌고 가던 여우가 언덕 위에서 멈춰 섰다. 마법사도 여우를 쫓느라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올랐는데, 여우가 멈춰 선 곳에 아주 오래된 리프트가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오호, 이런 곳에 리프트라니. 여기 무슨 스키장이었나?'
리프트는 1인용으로 안전바도, 안전벨트도 아무것도 없이 레일에 의자만 덜렁 매달려 있었다. 여우는 보란 듯이 올라타고서는 마법사에게도 어서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마법사는 순간 안전장치도 없는 낡은 리프트가 위험하지 않을까 망설여졌지만, 힘들게 산을 걸어 올라가느니 타고 올라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그런데 움직이긴 하는 거야? 방치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중간에 멈춰 서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멈추면 뛰어내리면 되죠."
여우가 마법사의 마음을 읽었는지 살짝 조소를 섞어 말했다.
"어, 여우가 말을 하네. 너 왜 여태 조용했니? 말할 줄 알면서."
여우는 자기가 언제 말을 했냐는 듯, 다시 입을 다물고 앞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덜컹하고 리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여우 말고는 아무도 타지 않은 리프트는 유령 놀이동산의 그것처럼 기괴해 보였지만, 매우 부드럽고 안전하게 움직였다. 케이블카만 타도 고소공포증 때문에 가슴이 저릿저릿한 마법사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덜컹이는 이 리프트 위에서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
'여우에게 간을 파먹혀 고소공포증이 생겼는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며 여우한테 생간을 돌려받은 걸까? 기억에는 없는데, 지난 차원을 거치며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마법사는 직관 속 기억들을 뒤적여 보았지만, 마땅히 생간을 돌려받은 기억은 나지 않았다. 아무튼 고소공포증 없이 리프트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래야 날지 않겠는가.
"제 탓이 아니에요. 여우가 간을 파먹는 게 무슨 문제겠어요. 무방비하게 간을 파먹힌 인간이 문제지. 마법사님 간은 제가 파먹은 게 아니니까 저한테 책임은 묻지 마시구요. 암튼 우리 종족과는 이미 화해 협정을 맺으셨잖습니까? 저는 부여받은 임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누가 파먹었든, 너도 여우잖아. 나도 옛 원한을 들먹일 생각은 없어. 네 말처럼 우리는 화해 협정을 맺었으니까 날 잘 도와주며 돼지. 홀리지만 말고."
"아, 뭐 얼마나 홀렸다고 그러십니까? 홀리는 것도 여우의 본분이죠. 안 넘어가면 되지. 좋아서 홀라당 마음 깔 때는 언제고 꼭 여우탓 들을 한다니까."
"그런데 여기로 가면 용을 만날 수 있다던데. 너가 나를 인도하는 거니?"
'용? 용이라고? 이 마법사 양반, 용을 만나러 온 거란 말이야?'
여우는 깜짝 놀라 리프트에서 떨어질 뻔했다. 자신의 임무는 마법사를 산 위에까지 인도하는 것이었는데 용을 만나러 왔다는 마법사의 말에 간이 쪼그라든 것이다.
"용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아니, 저 밑에 자전거 렌탈점 노부인이 나보고 용을 만나고 오라던데."
"아, 그분이 말씀하신 거면..."
"그런데 그 부인은 누구니?"
"마법사님은 그분을 모르시는군요. 그분의 이름은 '테라 메테르(Terra Mater)'예요. 죽음의 어머니시죠. 천상의 도시에 살며 여러 자식을 두었는데 막내인 불의 아이를 낳다가 화상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러고는 이 땅으로 내려오셨죠."
"뭐? 뭐라고 죽었다고?"
"네. 돌아가셨어요. 아주 오랜전에. 그리고 여기서 남편을 기다렸다죠. 남편이 용을 타고 이 땅에 내려와 부인을 찾아왔는데 아내의 화상 입은 모습을 보고는 그만 도망을 쳐버렸어요. 그러자 분노한 부인은 하루에 천 명의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저주를 내렸죠. 그 저주에 맞아 남편분이 타고 온 용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되었죠."
"용이 다리가 되었다고?"
"네.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용의 등을 타고 섬을 건너요."
"그럼 부인의 저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야? 천 명의 아이들을 죽이겠다며."
"전 잘 몰라요. 하지만 부인의 저주를 풀려면 용을 하늘로 올려보내야 할 거예요."
여우가 말을 마치자, 리프트가 정상에 멈춰 섰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 아래 바다 위로 여우가 말한 용의 다리가 보였다. 구불구불한 모양이 보기에 따라 용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저거구나. 진짜 용처럼 생기긴 했네. 그런데 부인이 용을 부를 수 있는 반지가 있다고 하던데. 너 아니?"
여우는 마법사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를 반복해서 훌러덩 넘나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원형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중앙의 원형 고리를 통해 용의 다리가 내려다 보였다. 선 위치에 따라서는 원형 고리 안에 용을 그대로 담을 수도 있었다.
"너 뭐 하는 거야? 왜 자꾸 원을 넘는 거야."
"이러면 지혜로워진다구요. 이 비석이 지혜의 고리거든요. 사람들은 우리를 잔꾀의 화신처럼 여기지만, 그건 잔꾀가 아니고 지혜라구요. 우리 여우들은 지혜의 고리를 자주 넘나들어 아주 지혜롭답니다."
"그래? 지혜는 충분한데."
"마법사님은 뭐 필요한 거 없으셔요? 이 고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니까요. 지혜만 주는 게 아니에요."
마법사는 잠시 생각했다. '소원이라.' 늘 사람들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기만 했지. 본인의 소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언제나 소원은 그것이었다. '위대한 이들의 거대한 백그라운드'
"아니, 아니에요. 마법사님 다른 사람과 연결 짓지 마시고 마법사님의 소원을 떠올려 봐요."
"그럼 뭐겠어. 돈이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잖아."
"그럼 돈을 달라고 해요!"
마법사는 여우의 말에 흠칫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돈을 달라고? 그게 소원이라고? 그걸 빌라고? 마법사 체면에 돈을 달라고 하기엔 거시기한 마음이 들었다.
'돈은 연금술사 놈들의 소원이지. 마법사의 소원이란 모름지기... 그래! 돈을 빌자. 이제 돈을 빌자! 연금술사 놈들은 지들밖에 모르니 위대한 과업에 돈을 쓸 줄 모르잖아. 좋아! 그럼 얼마를 빌어 볼까?'
마법사는 생각했다. 충분한 돈에 대해. 얼마면 될까, 얼마면 충분할까? 생각나는 액수가 있었지만, 충분이란 말만큼 충분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연금술사 놈들은 언제나 정확한 숫자로 말하라고 하는데. 감이 없네. 필요한 비용은 언제나 생겨났으니, 필요보다 먼저 액수를 감잡을 수가 없잖아.'
해보지 않은 생각에 곤란한 마음이 든 마법사는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굴려 보았지만 통 분명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마법사는 새벽의 사원에서 나눈 시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 사원이 왜 이렇게 크게 지어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성당과 교회들은 또 왜 그렇게 크게 지어졌는지도요. 수도원을 크게 짓는 이들은 없어요. 지을 필요가 없지요. 다수의 헌신된 전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힘은 모을수록 커지고 뭉칠수록 단단해지죠. 하지만 큰 힘은 단단하지 않고, 단단한 힘은 확대하기가 어렵죠. 이 세계는 아직 크고 단단한 힘을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크기만 힘과 단단하기만 힘이 서로 순서를 바꿔가며 경쟁했을 뿐이에요. 마법사님, 크고 단단한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전사로 가득한 거대사원은 과연 가능할까요?'
힘의 용도는 오로지 소원과 소망뿐이라던 시나의 말이 마법사의 머리를 맴돌았다. 소원과 소망. 마법사의 소원과 소망. 그리고 크고 단단한 힘. 마법사가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소원과 소망에 대해 골몰하고 있는데 여우가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마법사님, 숫자 따질 때가 아니에요. 곧 용이 나타날 거라구요. 용을 못 만나면 소원을 빌어봐야 아무 소용 없어요."
"어떡하면 용을 만날 수 있지?"
여우는 고리를 통해 용을 불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리에 불을 붙여야 한다고.
"어떻게 불을 붙여? 난 라이터도 성냥도 없는데."
"마법사님. 이 고리는 고대로부터 등대였어요. 이곳에 횃불을 밝혀 지나가는 배들의 안녕을 빌었죠. 불을 붙이면 용이 배를 집어삼키지 않거든요. 그리고 불을 붙이는 건 마법사들의 몫이에요. 마법사님은 태양의 마법사시죠?"
여우는 마법사에게 고리에 불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마법사는 순간, 불타오르는 태양의 이글거림을 생각했다. 그리고 빛을 생각했다.
'불타오르는 것은 빛나는 것이야. 빛에 에너지가 쌓이면 발화하게 되지. 아 그렇구나. 불타게 하는 것은 바라보는 거야.'
마법사는 고리를 통해 땅에 떨어진 용을 바라보았다. 천상으로 올라가야 할 그것이 저주를 받아 땅에 묶여 있었다. 그를 자유케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마법사의 임무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라보아도 불이 붙기는커녕 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이거 잘 안되네. 여우야, 무슨 방법이 없을까?"
여우는 대답은 하지 않고 빙글거리며 마법사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너도 모르지? 네가 알 턱이 있나. 홀릴 줄만 아는 여우 주제에."
"제가 모른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혜의 여우한테 말을 함부로 하시네. 뭐 어차피 알려드릴 셈이었지만. 마법사님도 잘 아실 텐데요? '추락하는 것은 날아오르는 것이다.' 기억 안나세요?"
여우는 '추락하는 것은 날아오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법사의 머리에 어떤 광경이 스쳤다. 에펠탑 아래로 추락하는 소년과 마법사. 그리고 뒤집힌 세상에서 날아오르기.
"자,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저를 따라 하세요."
여우는 바위 위에 올라 벌떡 두 다리로 서더니, 가랑이 사이로 고리를 통해 용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세상을 뒤집은 것이다. 추락한 용이 하늘로 다시 승천하는 것이다. 뒤집힌 세상에서.
'그래! 뒤집는 것은 바로잡는 거야. 세상을, 뒤집은 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지. 부인의 저주는 뒤집음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어. 용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추락하는 이들은 사실 날아오르게 되지.'
마법사는 주문처럼 깨달음을 되뇌이며 허리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고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고리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며 그 속에서 땅에 박혀 있던 용이 꿈틀거렸다. 불의 고리가 용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휘감으며 에너지를 전달하자, 드디어 용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사님 지금이에요! 용이 곧 승천할 거예요. 어서 고리를 통해 뛰어내리세요. 용의 등에 올라타셔야죠."
"뭐? 뛰어내리라고? 지금?"
"네, 지금이에요. 바로 지금!"
마법사는 여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혜의 고리, 불타는 반지를 향해 몸을 던졌다. 몸을 던지는 일은 마법사의 일상이 아닌가. 두려운 것은 멈추는 것이지 던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주에서 멈추는 일은 중력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던지는 일은 나아가는 일이므로 심지어 역방향이어도 에너지를 얻게 되어 있다. 그러니 뛰어내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멈춰진 채 땅에 박혀 있는 용은 저주를 받은 것이다. 중력의 저주.
불타는 반지는 태양의 시대의 상징이다. 불타는 어머니는 세상을 저주로 묶었지만, 세상을 뒤집는 아이들은 저주를 푸는 열쇠를 가지고 태어난다. 불타는 반지의 아이들이 하루에 천 명씩 죽어 나간 가여운 아이들의 빈 공간을 채울 것이다. 마법사가 저주를 풀었으므로.
마법사의 몸이 '붕'하고 날아오르자, 세상이 뒤집히면서 빙글 돌더니 마법사는 어느새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노부인이 준비해 놓겠다던 마법사의 자전거는 이제 막 승천하려는 용의 몸 위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마법사는 자전거를 타고 용의 등줄기를 내달렸다. 용의 머리를 잡고 함께 날아올라야 하니까.
드디어 저주에서 풀려난 용은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거대한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용의 머리까지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용의 뿔을 붙들었다. 그러자 용이 크게 용트림을 하며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마법사는 자전거에 탄 채로 용의 뿔을 잡고 날아오르는 용의 속도를 온몸으로 맞았다.
"마법사 양반! 이번에는 비밀을 푸셨구만. 덕분에 나는 저주를 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소. 보답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두려움을 내가 가져가지. 어떤 두려움이 있나? 말해 보시게."
용은 마법사에게 보은하겠다며 두려움을 말해보라고 했다. 산 위에서 여우는 소원을 빌라 하더니, 이번에는 두려움을 가져가겠다는 용의 말에 마법사는 두려움에 관해 생각했다.
"중단될까 두려운 거야. 매번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지친 거야. 그리고 또 중단될 거라고, 시작도 전에 마음이 생겨나는 거야. 어차피 끝이 없는 이야기인데 말이야. 이 두려움을 가져가 주겠니?"
용은 대답 대신 창공에서 빙그르르 회전했다. 용의 몸을 뒤덮은 소나무 가지들이 안전벨트처럼 마법사와 마법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휘감았다. 용의 어떤 회전에도 마법사는 떨어지지 않았다. 용은 그대로 세상을 한 바퀴 돌았다. 천년 같은 하루가 지나고 또 지났다. 그리고 하늘 위에 거대한 지혜의 반지가 다시 나타났다. 용은 이제 자신은 천상의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며 마법사를 바다의 교토 해변에 내려주고는 작별을 고했다.
"지구는 둥그니까 이야기도 계속될 거야. 그러니까 중단은 없어. 멈춘 이야기도 지구가 회전하면 뒤집히고 다시 시작되지. 필요한 건 기다림 뿐이야. 우리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마법사들이 세상을 또 뒤집을 테니까."
마법사는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과 불타는 반지 앞에 선 용을 올려다보며 용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용은 선물이라며 마법사의 심장에 박혀있던 마지막 검, 900년 동안 박혀있던 모반과 좌절의 검을 뽑아주었다. 그리고 유유히 불타는 반지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마법사는 심장에서 검이 빠져나가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노부인은 정신을 잃은 마법사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법사의 귀에 속삭였다.
"저주를 풀어내셨군요. 수고하셨어요. 이제 천오백 명의 아이들을 도울 차례랍니다. 세상 어딘가 매시간 아이를 낳는 여인들이 있으니 찾아보셔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그리고 우리의 언약은 지혜의 반지에 그대로 새겨져 있으니 천년 전에도, 천년이 지나도 영원할 거예요. 비록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자석처럼 서로 끌릴 테니. 우리의 춤을 잊지 못할 거예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
노부인은 정신을 잃은 마법사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마법사는 꿈속에서 알아듣고 있는지, 뭐라고 계속 숫자를 중얼거렸다.
_ [마법행전 Reboot] 4장. 바다의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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