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21.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 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김서방댁은 흙 묻은 손으로 속곳을 걷어올리더니, 말라 뱀가죽같이 된 허벅지를 긁적긁적 긁는다. 별당 끌에는 권대로운 한잦이 쭉 늘어져 있었다.
조그마한 머리통이 두 개, 갑사댕기도 두 개, 앙증스럽게 바라진 어깨, 나무 그늘에서 비어져나온 그림자도 두 개다.
갈매빛 상침을 둔 모시 걱삼과 양 어깨에 분홍빛 꽃수를 놓은 생명주 적삼 위에 버드나무 그늘이 들숭날숭 걸려있다.
- 토지 1부 1권 19장, 사자(使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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