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18.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 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불빛과 달빛을 받은, 울듯울듯 찡그리다가 다시 긴장으로 돌아간 월선의 얼굴은 나무로 깎은 듯 딱딱해진다.
낮의 열기가 식은 들판에서 썰렁한 바람이 숲을 끼고 갈을 따라 바삐 달음질쳐서 가는 강청댁 땀 배인 목덜미를 식혀준다. 바람이 땀을 식혀 주지만 마음까지는 식혀주지 않은 다. 때린 쪽은 이편이지만 분풀이는커녕 오히려 싸움에 지고 동마쳐가는 것 같은 생각만 들어 갈 길이 바쁘지 않으면 강변 모래밭이 가서 두 다리를 뻗어 울고 싶은 심정이다.
여름밤은 짧다. 짤은 밤에 가는 데 삼십리 오는 데 삼십 리, 육십 리 길을 걸었으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방은 옥색빛으로 걷혀져가고 있었으며 울타리에 핀 박꽃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토지 1부 1권 17장, 습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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