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공부 #8

in #philosophy21 hours ago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말하는 '비극의 정신'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고대 그리스 비극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고통을 탐구하는 심오한 철학적 저작이다. 이 글의 핵심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충동의 상호작용이다. 아폴론적인 것은 질서, 조화, 아름다움, 개별화, 그리고 이성을 상징하는 반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혼돈, 도취, 본능, 하나됨, 그리고 삶의 고통과 환희를 나타낸다.

'개별화의 원리'는 아폴론적인 것의 핵심적인 인식 방식이다. 이는 세상을 개별적인 요소들로 나누어 이해하는 능력이며, 현실을 파악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 개별화의 원리가 신격화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개별화와 이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것(즉, 신격화 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주의'로 변질되며, 이는 삶의 본질적인 혼돈과 비합리적 고통을 외면하게 만들어 오히려 고통의 근원이 된다. 삶의 복잡성을 단순한 이성적 틀에 가두려 할 때 인간은 진정한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고 더 큰 번뇌에 빠지게 된다.

반면,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아폴론적인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균형을 이룰 때 삶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순수한 아폴론적인 것은 삶의 가차 없는 진실과 혼돈스러운 본질을 아름다운 예술적 형식으로 '미화'하고 '승화'시킨다. 이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비극성을 예술적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고, 그 속에서 미적 감동과 의미를 발견하여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치 헤라클레이토스가 세계의 변화를 '어린아이 신이 장난으로 모래성을 쌓고 허무는 놀이'에 비유했듯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삶의 놀이이며, 아폴론적인 것은 그 놀이 속에서 잠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형태이자 환상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구절은 고통스러운 삶조차도 '소풍'으로 미화하여 궁극적으로 긍정하는 아폴론적인 승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니체가 말하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은 바로 이러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조화이다. 이는 삶의 근원적인 고통과 혼돈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삶을 긍정하는 능력이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러한 균형을 통해 삶의 비극성을 끌어안고 강하게 긍정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 시대를 거쳐 소크라테스적 이성 중심주의가 대두되면서, 아폴론적인 것이 지나치게 극대화되고 디오니소스적인 요소가 억압되면서 '비극의 정신'은 몰락하게 된다. 비극은 삶의 불가해한 운명을 다루기보다, 이성적 분석과 도덕적 판단을 강조하는 형태로 변질된 것이다.

현대사회는 니체가 비판했던 아폴론적인 것의 극대화 현상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남에게 보여주기'에 급급하고, 효율성과 성공을 지상 목표로 삼는 경향은 '개별화의 원리'가 신격화된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는 삶의 비합리적인 측면, 감정의 혼돈, 그리고 집단적 도취와 같은 디오니소스적인 욕구들을 억압하거나 외면한다. 그러나 억압된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평소 정제되고 개인화된 사회에서 해소되지 못했던 '하나됨'에 대한 갈망과 원초적 에너지가 건강하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유도되지 못할 때, 비합리적이거나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고 예술의 본원적인 역할을 재인식하여 삶의 비극적 본질을 승화시키고 긍정하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디오니소스적인 혼돈과 아폴론적인 질서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균형을 잡는 이러한 자세는 현대적인 개념의 '회복 탄력성'과 비슷하다. 고통을 단순히 견디는 것을 넘어,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고 삶을 긍정하는 지혜는 니체의 '비극의 정신'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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