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공부 #9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자유와 현대인의 도덕적 삶
인류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지, 그리고 그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이에 대해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독특한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을 두 가지 측면, 즉 현상(Phenomenal)과 예지(Noumenal)로 나누어 설명한다. 현상적 측면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지각하고 경험하며, 과학의 법칙으로 설명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이는 우리의 신체, 감정, 생각의 흐름과 같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모습이다. 반면 예지적 측면은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사물 자체'의 영역으로, 진정한 도덕적 행위와 자유가 거주하는 심오한 차원이다.
칸트의 예지적 자유는 종종 '외부적 강제가 없는 자유'나 단순히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의 자유' 정도로 축소되어 이해될 위험이 있지만, 이는 칸트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다. 칸트가 말하는 예지적 자유는 현대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자유와는 구별된다. 그것은 자연의 필연성과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인간 본질을 이루는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초월적 자아의 자유인 것이다.
초월적 자아, 즉 예지적 존재로서의 자유는 시간, 공간, 인과율이라는 현상계의 제약에서 벗어난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타고난 본능이나 무의식과도 구별되는, 순수한 이성의 능력에 기반한 개념이다. 칸트는 이 초월적 자유가 '경험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경험 자체가 시간, 공간, 그리고 인과율이라는 우리의 현상적 인식 틀 안에서만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의 틀을 초월하는 자유는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한다(Sollen)'는 도덕적 의무감을 통해 초월적 자아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도덕적 의무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그러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Können)'는 자유가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결심하는 그 순간', 즉 '찰나의 의지'는 바로 이러한 초월적 자아의 자유가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는 현상계의 인과적 사슬을 끊고 이성적 명령에 따라 새로운 지속을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칸트의 관점에서 초월적 자아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박탈당할 수 없다. 감옥에 갇혀 신체적 행동의 자유와 같은 현상적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존재로서 도덕 법칙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의지를 결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정신이 심하게 손상된 경우, 이성적 판단 능력 자체의 제약으로 인해 그 자유를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되는 부분이다. 이는 자유의 본질적 소멸이 아닌, 자유 발현 능력의 제한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칸트는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 안에 있는 이성적 의지(초월적 자아)에 따라 도덕 법칙을 스스로 세우고 그에 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그 이성적 결단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 초월적 자아의 판단은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정언명령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어느 선택을 할지는 초월적 자아의 자유 영역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개인의 감성적 경향성이 아닌, 보편적 도덕적 판단에 대한 존경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행위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칸트의 윤리학은 언뜻 이상적이고 엄격해 보인다. 특히, 우리가 도덕 법칙을 어기고 죄책감을 느낄 때, 칸트의 철학이 우리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칸트의 관점에서 죄책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벌이나 강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내면의 이성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이 신호는 "네가 가진 자유와 이성적 능력을 더 잘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구나"라고 알려주며, 다음번에는 더 나은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도덕적 이상은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할 뿐, 우리에게 죄책감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서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성장하려는 자율적 의지의 발현이다.
현실의 삶은 복잡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가치관 충돌처럼, '근면'과 '효율성' 같은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때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각자의 행위 원리인 '준칙'을 보편화 가능성이라는 '정언명령 테스트'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네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는 이 테스트는 어떤 행동 원리가 자신의 이익이나 특정 집단의 편견을 넘어,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인지를 검증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손님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해야 할 의무는, 설령 가게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하는 정직의 의무이다. 칸트에게 도덕적 가치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동기', 즉 '선의지'에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의지는 도덕 법칙에 대한 순수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의지이며, 이는 어떤 외부적 결과나 현실적인 손익에도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마녀사냥이나 종교전쟁과 같이 '선의'를 명분으로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가 자행될 때, 그들의 동기가 '타율적'이며 '비합리적'이었기에 진정한 선의지가 아니었다고 단호하게 평가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칸트는 평생 규칙적이고 사색적인 삶을 살았으며, 독실한 경건주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이성을 통해 도덕의 근거를 찾으려 했다. 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실천하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칸트의 윤리학은 우리에게 도덕적 이상을 제시하는 철학이다. 이 이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완벽하게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바로 그 이상이 있기에 우리는 도덕적으로 길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넘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며, 우리가 '어떻게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이는 마치 불교에서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도 버리라는 가르침처럼, 도덕적 이상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나룻배'와 같다. 도덕적 이상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도덕적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내면의 성찰과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하며, 이성적인 존재로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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