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공부 #3
베르그손(Henri Bergson)이 바라본 세상의 본질: 비일원론적 형이상학
베르그손은 세상을 두 가지 근본적인 흐름으로 보았다.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창조하며 흘러가는 '지속'의 세계이다. 우리의 의식, 생명력, 그리고 예술가의 창조성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예측 불가능하고, 멈추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물결과도 같다. 다른 하나는 이 물결이 굳어져 딱딱하게 변한 '공간'의 세계, 즉 우리가 인지하는 물질이다. 고정되어 있고, 반복적이며, 예측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이 세계는 마치 딱딱한 얼음 덩어리 같다.
흥미로운 점은 베르그손이 이 두 세계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물질이 단순히 생명과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활기찬 흐름이 '중단'되거나 '부재'할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방 안의 밝은 빛이 꺼지면 어둠이 생겨나듯이 말이다. 빛이 없다고 어둠이 빛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물질도 생명/정신이라는 근원적인 힘이 약해지거나 사라질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독특한 '비일원론'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베르그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생명의 '부재'로 물질이 생긴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렇게 생성된 물질이 원래의 생명력과 '역전'된, 즉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다고 본다. 어둠이 단순히 빛의 부재일 뿐만 아니라, 빛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대립되는 특성(어둡고, 차갑고, 사물을 감추는)을 가지는 것과 같다. 생명이 자유롭고 창조적이라면, 물질은 고정되고 예측 가능하며 필연적이라는 성질을 지닌다. 이처럼 물질은 생명에서 나왔지만, 생명과는 다른, 오히려 생명을 제한하고 억누르는 경향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역전=중단"이라는 등식이 베르그손의 비일원론적 형이상학을 탁월하게 요약하는 이유이다. 모든 것이 하나의 근원에서 파생되지만(일원론적 지향하지만), 그 파생물이 근원과 대립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단순한 일원론을 넘어선다.
이러한 논리는 단순히 우주론적 관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의 정신은 무한한 기억과 가능성을 가진 '지속'의 흐름이다. 하지만 신체, 특히 뇌는 이 무한한 정신의 흐름 중 특정 목적(행동, 생존)에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걸러냄'으로써 정신 활동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중단'된 결과물인 신체는 정신의 자유로움에 '역전'되어 물리적 한계와 결정론적 제약을 가한다.
베르그손은 우리가 흔히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들, 특히 당시 주류였던 기계론적 근현대 과학의 시계처럼 째깍거리는 정지된 시간과 예측 가능한 법칙을 비판한다. 그는 과학이 실재의 움직임을 '사진 찍듯이' 정지시키고, 양적으로 쪼개어 '공간화'함으로써 진정한 변화와 생명력을 놓친다고 본다. 물질은 바로 이러한 '공간화 운동'의 결과물이며, 모든 것을 무질서하게 만들고(열역학 제2법칙) 고정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 이에 맞서 물질의 이러한 '공간화 운동'을 '지연시키고', 세계 안에 '최대한의 비결정성(예측 불가능한 자유로움)'을 도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의 역할이라고 베르그손은 역설한다. 즉, 생명은 정해진 운명에 저항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힘은 물질 세계의 진화뿐만 아니라, 우리 정신의 창조성과 자유 의지에서도 발현된다.
이러한 베르그손의 철학은 21세기에 새롭게 부상하는 신유물론이나 주류 물리주의 철학과도 차별화되는 독특한 '제3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그는 정신을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물질에 무조건적인 능동성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대신, 생명과 물질의 역동적이고 상호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우주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베르그손의 사유는 여전히 우리에게 현실을 이해하고, 생명과 의식의 신비를 탐구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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