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공부 #5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말하는 '결혼'의 의미
오늘날 결혼은 '선택사항' 또는 '필수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며 '비혼'과 '동거'가 자연스러워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하여 임마누엘 칸트는 결혼을 '성행위의 합법적 승인을 위한 계약론적 제도'로 정의했다. 굳이 '성행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앞의 '정의'로 미루어보아 그 당시 사회적으로 성행위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정의의 핵심은 바로 '인격의 사물화'를 막는 것이다. 칸트에게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다. 그런데 성적 욕망은 자칫하면 상대를 단순히 '나의 쾌락을 위한 도구'나 '육체적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인격의 사물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다.
성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온전히 존중하는 방법은 칸트에게 '결혼'이다. 결혼은 두 이성적 존재가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상호 소유하며,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종의 계약이다. 이 계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는 더 이상 일방적인 '이용'이 아니라, 두 인격이 서로를 온전히 인정하고 통합되는 행위가 된다.
결혼이라는 계약 안에 들어선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이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나의 욕망이 상대를 수단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려는 노력이 바로 '내재적 인격존중과 책임'이다. 이는 타인을 존중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이성적이고 존엄한 인격을 지키는 행위이다.
칸트 관점에서 본 '결혼을 통한 행복'은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나 외적인 '조건'과 같은 단편적이고 미시적인 행복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자율적 행복론'이라는 그의 큰 틀 안에서 설명된다. '자율적 행복'이란 스스로의 이성에 따라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내적인 충만함과 의미 있는 삶이다.
결혼 생활에서의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이 내재적이고 상호적으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이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칸트가 말하는 결혼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단순히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감성적인 단계에서 나아가, 결혼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의지를 통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오늘날, '결혼 종말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칸트의 시각은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다. 그는 결혼이라는 형식보다는, 그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라고 한다. 즉, 결혼은 단순히 남녀가 가정을 이루는 사회적 제도를 넘어, 두 인격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가장 숭고한 '자율적-인격적 연합'이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제도들이 등장하는 것도, 결혼이라는 틀을 벗어나면서도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인격적 존중'과 '책임'이라는 가치를 추구한다.
칸트는 결혼이라는 관계가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인간답고, 존엄하며, 행복할 수 있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겪는 관계의 혼란은, 칸트가 그토록 강조했던 '내재적-상호적 인격존중'과 '책임의식'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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