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늙었구나.라고 느낄 때 8.
예전에 썼던 주방 가위들은 대개 (아니 전부) 절삭력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붉은 녹이 슬어 오래 쓰지 못했다. 또 이러네. 으레 그러려니 하고 그때마다 가위를 바꿨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붉은 녹이 마치 노인의 얼굴에 피는 저승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저승꽃(검버섯)과 달리 가위날 표면에 핀 저승꽃은 검붉어서 저승꽃이라는 이름과 더욱 어울렸다.
어느 날 일회용 겨자소스의 비닐을 자르다가 주방 가위의 절삭력이 예전과 달리 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 교체할 때가 되었나. 가위날 표면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가위는 여전히 깨끗했다. 붉은 녹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예전 가위들보다 이 가위 하나를 훨씬 더 오래 썼다는 걸 깨달았다.
궁금해서 이 가위의 브랜드를 검색했다. 국산이었다. 국산 가위가 이렇게 오래간다고? 일제나 독일제도 아닌데? 다시 검색하니 요즘엔 국산이 더 좋다는 후기들이 많았다. 당연하게 (그리고 여전히) 일제나 독일제 가위가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떠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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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gr.with (74) 2 day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