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오
지하철 문이 열렸다. 그런데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는 여전히 휴대폰에 코를 처박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저 자와 몸이 닿고 싶지 않았지만, 황급히 그를 밀치고 내렸다.
오전 일곱 시 이십 분의 사당역 플랫폼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백 명의 인간들이 유동하는 한 덩어리로 뭉쳐 주기적으로 밀려들었다가 밀려나가는 모습은 인파人波라는 말 그대로 거대한 파도 같다. 생명이 없을 파도가 생명체로 느껴지는 것과는 반대로 저 인간 덩어리는 의식이 없는 무생물처럼 보인다.
4번 출구 앞의 통근 버스 출발 시간은 일곱 시 오십 분. 아직 삼십 분이 남았다. 이 역의 플랫폼 중간에는 사람이 붐비지 않는 기적 같은 널찍한 공간이 있다. 평소 그곳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간다.
오늘은 그 벤치에 웬 60대 여성 한 명이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집 앞에 잠깐 마실 나온 듯한 흐트러진 옷차림에 느긋한 몸가짐이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과 달리 여유로워 보인다. 순간 왠지 모를 꺼림칙함에 다른 벤치로 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앉아 휴대폰으로 어제 쓰다 만 글을 이어 쓰기 시작했다.
지하철 청소 노동자 분이 벤치 주변 바닥을 물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어유, 냄새!~~”
옆에 앉은 그 60대 여성이 짜증 가득한 말투로 외마디소리를 뿜었다. 깨진 꽹과리 소리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끈적하고 둔탁한 목소리였다.
인간의 목소리에도 냄새가 나는구나. 그 목소리에서 나는 냄새는 물걸레에서 풍기는 군내보다 훨씬 더 자극적으로 콧속을 찔러 들어왔고, 더 깊게 염오스러웠다.
‘염오’라는 단어가 품은 두 의미가 모두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염오厭惡 - 마음으로부터 싫어하여 미워함
염오染汚 - 더러운 것이 옮음
염오에 이런뜻이 있었군요..
아. 네. 사전을 뒤져 보니 이런 뜻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