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건

in #krsuccess14 days ago (edited)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저녁 일곱 시 반 무렵의 지하철이었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한산해지는 구간에 들어섰다. 가벼운 등산도 가능할 듯한 편한 옷차림의 중년 남녀가 탔다. 남자는 바로 내 옆자리에, 여자는 남자 옆에 앉았다. 인 이어 이이폰 사이를 뚫고 들리는 그들의 대화로 짐작건대 오래된 부부인 것 같다.

남자한테서 술냄새, 안주냄새, 땀냄새가 뒤섞인 오묘한 냄새가 진하게 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냄새 분자는 바이러스보다 작다. 술과 안주의 종류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몇 분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옆에 꼭 붙어 앉아 있을 수 있는 것. 아마도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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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한 순간, 남자가 뭐라 말할 때 여자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 건 말의 내용 때문이었을까. 냄새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