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
<미스터 플라워(Bed of Roses)> 1996. 마이클 골든버그 감독.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여자는 어릴 적에 친부모에게 버려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를 거두어준 양부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랑받기를, 사랑하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양부에게 다가갔지만 양부는 얼음으로 지어진 담벼락 같았다. 그녀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은 채 메마른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그녀에게 익명으로 예쁜 꽃다발이 배달된다. 그녀는 설레는 마음과 주체할 수 없이 커지는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자신에게 꽃을 보낸 사람을 찾기 시작하다가 꽃을 배달했던 남자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 남자가 바로 크리스찬 슬레이터. 훈남이다.
실은 (역시) 꽃을 배달한 훈남이 바로 익명으로 꽃을 보낸 그 사람이었다. 그는 (또 역시) 꽃집 사장님이었다. 남자는 하루 날을 잡아 그녀를 데리고 함께 꽃을 배달한다. 꽃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내미는 꽃을 보자마자 웃음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활짝 웃는다. 꽃배달을 어색해했던 여자는 처음과 달리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에 점점 빠져들면서 즐겁게 꽃을 배달하게 된다. 남자는 자신이 이 직업을 택한 이유가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을 보며 ‘위로받고 싶어서’라고 여자에게 말한다. 남자 역시 과거에 마음의 상처를 깊게 입었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이 참 좋았다. 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을 지녔다. 물론 꽃보다는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해진 사랑과 내가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안도감이 마법을 일으켰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영화의 원제목이 'Bed of Roses'인 것처럼, 영화 속에는 장미가 많이 등장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전 세계의 노동당들이 공통적으로 붉은 장미를 정당의 심벌로 사용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붉은 장미는 ‘인간의 존엄’을 상징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 서로 존엄하고 존엄받는 삶.
꽃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사랑(존엄)하게 되는 두 주인공.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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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공강 시간에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콘크리트 담장 틈새를 비집고 자라난 이 꽃을 발견했다. 다소 추레하지만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들꽃을 보며 영화 <미스터 플라워> 속의 예쁜 꽃들을 생각했다. 뿌리가 잘려나가고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가공된 그 꽃들은 사랑과 존엄을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막상 그들은 존엄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