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 있는, DMZ 평화의길 18코스를 가다-5 구변교(舊變橋)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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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 있는, DMZ 평화의길 18코스를 가다-5 구변교(舊變橋)

총부리를 마주하며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에서 군대란 상당히 특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지금도 막걸리 한잔하며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만큼 젊은 날의 추억이 깊이 쌓여 있는 곳이다.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 풀어내자면 대하소설 몇 권 분량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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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신참 소위가 TOC 교환기 공사 감독을 맡아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방카 공사를 마쳤지만, 그건 끝이 아닌 고통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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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 교환기는 독일에서 개발한 EMD 교환기를 당시 금성통신에서 개조하여 만든 자동식 교환기였다. 수동식 교환기에서 상급 부대부터 자동식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였기에, 대부분의 군인들은 새롭게 도입된 자동식 교환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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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장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장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여기 교환 소대장 누구야? 전화 연결이 너무 오래 걸리고 완전 엉망이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멍든 주먹을 불끈 쥐고 대대장급 장교들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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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환 소대장입니다! 애들을 하도 닦달했더니 이제 때릴 주먹도 없어요! 자동 교환기는 3자리 번호를 눌러 자동 호출하는 방식인데, 다들 번호를 모른다고 0번만 누르고 바꿔달라고 하니 하루 종일 0번 불이 20개나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환병들이 어떻게 다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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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수동식일 때는 군단장, 참모장, 보안대 등 중요 부서에 해당하는 램프가 따로 있어서 급한 전화를 바로 연결할 수 있었지만, 자동식으로 바뀌면서는 먼저 걸려온 순서대로 연결될 뿐 누가 건 전화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끗발 있는 높으신 분들이나 보안대에서는 호출해도 바로 연결이 안 된다고 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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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전화만 들면 바로 연결되던 것을, 돈 들여 공사까지 마쳤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니 군기가 빠졌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 자동 교환기와 다이얼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 나는 군단 최고의 고문관 소위로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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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변교(舊變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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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 일반국도47호선에 위치해 있는 구변교는 교량길이가 108.0m이며 교량 폭은 13.0m이다. 상부형식은 RC슬래브교이며, 하부 형식은 라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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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로운 DMZ 평화의 길 18코스, 구변교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syskwl님!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네요. 특히 젊은 시절 군대에서의 TOC 교환기 에피소드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아요! 자동 교환기 도입 초기의 혼란과 고군분투, 그리고 마지막 외침까지! 읽는 내내 웃음과 안타까움이 교차했습니다.

구변교의 풍경 사진들도 정말 멋지네요. 역사와 추억이 깃든 장소를 이렇게 멋진 시선으로 담아내시다니! 많은 분들이 이 포스팅을 통해 DMZ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여행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후기에 대한 댓글을 달아준 최초의 분입니다.
글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자동식교환기 도입으로 인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이렇게 억울할 수가...
고생많으셨습니다. ㅠㅠ

지금은 쉽게 얘기하지만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정말 억울하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ㅎㅎ

특히 군은 변화를 더 싫어하는거 같습니다.
저 군생활할때 한국군과 미군의 GIS달라서 미군GIS로 통합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모든 작계를 비롯해 기타등등 바꾸는 작업으로 난리도 아니었던게 기억나네요. ㅎㅎ

군인들이 특히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뭔가 새로운게 나타나면 공부하고 연구도 해야하는데
높은 분일수록 그런 노력이 전혀 없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