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남양주 축령산-2 남이(南怡)바위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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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남양주 축령산-2 남이(南怡)바위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 나라만 있는 속담이 하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가까운 사촌이 잘 되는 걸 시기하고 질투하는데 다른 사람이 잘되는 건 절대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게 우리 민족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심리가 정치판에서는 극단적인 진영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 편은 아무리 잘못해도 괜찮고 네 편은 아무리 잘해도 무조건 배척하는 정서가 팽배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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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색당파의 당쟁이 나라를 망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진영 논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축령산에서 남이 장군이 훈련했다는 바위를 만나면서 젊은 나이에 모함으로 비통하게 죽어간 영웅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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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南怡)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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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리에 위치한 축령산 수리바위와 축령산 정상 사이에 있는 바위이다. 조선시대 무신인 남이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이 장군이 축령산에서 훈련하며 이 바위에 앉아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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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南怡)장군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뛰어난 용맹과 지략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웠지만,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1441년(세종 23년)에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460년(세조 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본격적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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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용맹과 지략으로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467년(세조 13년)에는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의산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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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에 임명될 정도로 세조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나 1468년(예종 즉위년), 유자광 등의 모함으로 역모 혐의를 받고 능지처사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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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이 지었다는 시 "북풍이 칼바람에 휩쓸어 불어오니 눈 쌓인 뜰에 기러기 흩날린다. 칼을 잡고 긴 하늘에 기대어 울부짖으니 나라는 어지러운데 집은 어디인가?"라는 시가 화근이 되어 유자광이 "나라가 어지럽다"는 구절을 문제 삼아 역모로 몰았다. 남이 장군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이후 그의 충성심을 인정받아 1818년(순조 18년)에 신원이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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