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글쓰기 –두 번째] 글쓰기와 구체성
들어가기 전에
지난주에 올린 글쓰기에 관한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습니다. 그걸 보니, 이곳 스태미 마을의 이웃들은 타인의 마음을 감싸고,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선한 의지가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고 미약하나마, 제가 알고 익힌 것들을 탈탈 털어서 매주 한 번씩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강좌라고 생각하셔도 좋고, 글쓰기 팁 내지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겪은 시행착오의 기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떤 성질의 글로 받아들이시든, 글쓰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름을 날리는 작가거나, 전업으로 그 일을 하는 프로가 아닙니다. 프로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일로 생활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글로 먹고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바라는 생활수준이 안 되더라도 기꺼이 글로 먹고 살겠다고 작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자도 못되고, 후자도 못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대부분의 이웃들처럼 저의 생업은 따로 있습니다. 글쓰기를 취미 삼아서 하고 있지만, (이제는 취미와 부업 사이의 그 언저리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프로가 되길 바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그 꿈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지는, 제가 유명한 작가나 전업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는 얘길 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비슷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 그리고 훈련을 할 때 그것을 삶의 전부로 삼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직장에서 시달려야 하고, 또 집에선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생활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삶의 중요한 일부로서 글쓰기를 고민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고충을 눈높이에 맞게 말할 수 있고, 제 글이 조금 나아졌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시중에는 많은 글쓰기 책이 있고, 저도 손가락으로 세기에 모자랄 정도의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 중에는 요긴하게 적용해 본 것도 있고, 그 책을 쓴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영양소든, 이물질이든 그 책들의 내용이 제 속에 흡수되어 있습니다. 앞서간 작가들의 팁도 함께 전달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 팁들이 저의 경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코멘트와 더불어 말입니다.
많은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만, 제가 아무리 객관화하여 글쓰기에 대해서 떠들어댄다고 해도, 이 ‘문학적 글쓰기’ 연재 글은, 저 ‘소울메이트’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통로를 거친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제가 근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이것이 단 하나의 유일한 진실!’이라고 말하더라도 말입니다.
저로서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이 시리즈가 ‘스태미 마을 문학 잡화점’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간결한 문장과 읽기의 호흡을 고려하여 본문 내용은 평어체로 풀어갑니다.
-Soulmate essayist by your side.
글쓰기의 두 축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밝혀야겠다. 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기 초 반이 바뀌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작문의 기본이 되는 것부터 가르친다. 시 쓰기에 대한 내용인데, 기본적인 바탕은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얘기부터 하겠다.
‘어머니’가 주제인 두 개의 시를 보여준다. 차례로 읽어보시기 바란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청소하시고 빨래 하시고
일도 하시는
고마우신 어머니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나는 그런 어머니가 제일 좋아요.
<우리 엄마>
김수영(강원 동해 남호초등학교 3학년)
우리 아빠는
누어서 텔레비전 보다가
"물 좀 가지고 와!"
하면 우리 엄마가 가지고 온다.
우리 언니는
밥 먹고 학원 갔다 와서 밥을 또 먹는다.
그러면 엄마가 또 밥을 차린다.
엄마 힘들게 하면 뭐가 좋나?
엄마가 힘들어 누워 있으면 아빠는
“설거지도 안 하고 누웠나?"
이런다.
엄마가 너무 안 됐고
아빠는 정말 너무한다.
모든 글이, 모든 시가 가치 있고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주는 좋은 시는 분명 존재한다. 둘 중 어떤 시가 좋은 시라고 느껴지는가? 간혹 아이들 중에 눈치 없이, 앞에 것이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시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에 나오는 시에서 뭔지 모를 감정의 이끌림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럴듯한 시어나 좋은 말들을 늘어놓은 것도 아니고, 아이의 시각에서 일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을 뿐인데.
결론을 얘기하자면 앞의 것과 뒤의 것은, ‘나의 삶’과 ‘구체성’이 들어가 있느냐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럴 듯하게 꾸며 쓴 글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략할 수 없다. 삶과 구체성이 들어 있는 글만이, 미숙하고 정제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수태미 마을의 이웃들의 글을 보면서도 아마 느낄 것이다. 뭔가 기교가 있거나, 정제된 것 같지는 않은데 공감을 주고 마음을 잡아끄는 글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글에, ‘삶과 구체성’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투박한 언어와 문장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예전에 나는 내 글에 뭔가가 빠진 듯해서 고뇌하던 날들이 있었다. 주변에선 글 좀 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구체성’이었다. 문장은 화려했지만 내용은 추상적이기 그지없었다. 구질구질한 일상, 더러운 얘기도 아름다울 수 있다. 구질구질한 것을 쓴다고 글이 구질구질해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고상한 것을 쓴다고 글이 고상해지는 것은 아니다.
구체성 내지 진정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축과 더불어 좋은 글을 지탱하는 다른 하나의 축은 글쓰기 기술이다. 훈련된 기술은 진정성, 구체성과 더불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어린 아이가 처음 피겨 스케이팅을 배운다고 하자. 아이는 미끄러운 빙판 위를 움직일 때 엉거주춤하며 인간으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를 보여준다. 그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김연아 선수를 통해 훈련된 기술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기술을 체득하여 일정한 경지에 다다르면 그것이 어떤 기술이 되었든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다고 믿는다. 그게 수박을 옮기는 일이든, 타코야끼를 만들어내는 일이든 말이다. 글쓰기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교나 기술이 가미되지 않은 글도 감동을 줄 수 있다. 다만 훈련된 글은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의 두 축은, 피겨스케이트의 채점 기준과 비슷하다. 김연아 선수는 '표현과 기술' 점수 모두 다른 선수를 압도하였기에 범접할 수 없는 클래스를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글쓰기도 ‘진정성과 기술’이라는 두 축이 균형 있게 받쳐준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제가 글쓰기를 연습했던 이유다. 그저 어떤 경지에 다다르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냥 한 팔로 수박을 던지고 받는 사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빌딩 사이에 줄을 걸고 건너는 사람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일상처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남김없이, 왜곡 없이 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눈앞에 하얀 화면이 두렵지 않고, 키보드에 손을 얹으면 숙련된 노동자처럼 막힘없이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는 사람 말이다.
글쓰기의 기술적인 부분을 연습하는 방법은 앞으로 차차 알아가도록 하겠다. 오늘은 글에 어떻게 하면 구체성과 진정성을 부여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
구체성 부여하기
우리는 때때로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슬픈 기분이 든다. 분명 말하는 사람은 ‘슬픔’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다른 부류의 사람은, 자신이 ‘슬프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어필한다. ‘슬픔’이라는 단어를 수십 번 써가면서. 그렇지만, 그 슬픔이 절절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구체성을 부여하는 비밀이 여기 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전달하고 싶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가 오늘 아침에 죽었어. 갑작스런 병이었지. 8년 전, 석 달 된 녀석이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생각나. 잔뜩 겁을 집어 먹고는, 나를 위협한다고 이를 드러내며 가르릉 거렸지. 난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어. 그 사진이 아직 내 핸드폰에 남아 있지. 우린 8년을 함께 했어. 침대에서 뒹굴고, 우유를 함께 먹었어. 녀석은 유난히 나를 따랐어…”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 슬픔이 가득해. 나, 위로 받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어떤 차이인지 느껴지는가. 문학적 글쓰기의 구체성이란, ‘슬픔’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물론 그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는 것이 금기사항은 아니다.) 그럴 때 더 진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전자의 화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할수록 짠한 마음은 배가 될 것이다. 이를 문학가들은 ‘설명하기’와 ‘보여주기’의 차이로 말했다.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것에 관해서 여러 작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슬프다’라는 단어는 절대로 슬프지 않다. 감동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디테일’에서 온다.
-임승수,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중에서.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해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 쓰지 말고 사랑할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뿐이에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봄에 시간을 내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이 어땠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를 기억하려 애쓰세요. 강의 끝.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중에서.
이 글을 읽고 ‘구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해보는 것, 좋은 연습이 될 거라 생각한다.
간혹 아이들 중에 눈치 없이, 앞에 것이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 이거 전데요😂 (이유: 짧아서)
이 시리즈 계속 보고 싶네요. 한 10년 정도 연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짧은 시가 가지는 미학이 분명 있죠^^ 응원해주시니 10년까지 해볼 수 있게 힘내겠습니다ㅋ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자주 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글입니다~ 저도 글 쓰기를 매번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
감동은 직유법이 아닌 디테일이라는 말에 저도 동감을 합니다 ^^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ㅎ 고민하는만큼, 쓰는만큼 향상되는 게 글쓰기입니다. 함께 성장해가요. 감사합니다^^
좋은글 입니다.^^ 글쓰기는 참 어려운것...같아요..ㅜㅜ 잘읽고 갑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 글쓰기는 늘 어렵지요. 감사합니다!^^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라는 것입니다.라는 문구에 확 꽃히네요....
좋은 글 스크랩해 놓고 읽어볼께요..오늘도.....감사~~합니다.
네 문학적인 글쓰기에서 기본적인 내용이죠^^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저가 감사합니다.앞으로 글쓸때 참조할께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새로 오신 분이군요. 자주 뵈어요^^
네. 어제부터 시작한 스팀잇이라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정말 많습니다. 좋은 글도 쓰고 싶고,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네요. 물론, 그러다 보면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질테지요.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
네 저도 팔로우하고 좋은 교류 기대하겠습니다^^ 이곳에 잘 적응하면 유익이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설명을 구체화 시켜 상대방의 기억을 자극시키는거군요!
네 캡슐에 담겨 장까지 살아가는 유산균처럼 구체화된 글이 읽은 이의 마음까지 살아서 간답니다ㅎ
이번에도 좋은 글을 적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주 뵈어요!
글에서 직접 강조하는 말들만 빠져도 좋은 글이 된다고 하지요. :)
김연수 작가의 말은 예전에 봤던 것인데도 참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
네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글을 쓰기 바란다면 연습해볼 가치가 있는 부분이죠^^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틈틈히 글을 쓰고 있는데 잘 쓰기가 쉽지가 않네요. 언젠가는 일취월장하겠죠!
네 멈추지 않고 쓰신다면 분명 글이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