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안했다고????(feat.자기앞의 생)
오늘은 뭘쓸까...고민을 하며 책을 뒤져봤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다시피....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ㅠㅠ..뭐....기억나는 책도 거의 없지만요 ㅠㅠ
그래도 나름 뒤적거리다가 에버노트를 한번 봤는데
자기 앞의 생이 있네요~~!!...근데 이거 스팀잇에 올리지 않았던가?
하면서 봤는데 잉??????없네요???왜 때문이죠???...는 제가 안올렸겠죠?;;;
아마 스팀잇에 올릴려고 정리해놓고는 안올렸었나봐요ㅋㅋㅋㅋ
그래도 덕분에 오늘은 쓰기가 좀 편할 듯 합니다 하.하.하.하.
전에 정리를 좀 많이 해놓을 걸..하는 아쉬움이 좀 드네요 ㅋㅋㅋㅋ
책사진은...저기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텐데
찾을 수가 없..아니 귀찮아서 ㅠㅠ...ㅋㅋㅋㅋㅋ흠흠 ㅋㅋ
자기앞의 생의 저자 에밀 아자르는 로랭 가리의 가명입니다.
가명을 사용하기 전 로랭 가리는 세상으로 부터 쇠퇴와 무능력으로 비웃음을 당했는데
로랭 가리는 추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놨고
이 때 문단은 에밀 아자르라는 신예작가에 대해
환호했으며 로랭 가리를 더욱 무시했다고 하죠..
로랭 가리의 사후 에밀 아자르가 로랭 가리의 가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콩구르 상은 일생에 한번만 받을 수 있는 상인데
로랭 가리는 결국 두 번 수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듣기로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후보에 올랐을 때
수상을 포기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앞의 생은 악동 같지만 순수한 어린 주인공 모모를 통해
이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과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책에서의 배경과 분위기는 결코 밝은 분위기는 아니죠...
로자아줌마는 병원에 가기를 극도로 싫어했고 누군가 찾아오는걸 두려워하고
모모는 주위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나 나이요...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학교라고 표현하고
치매걸린 로자아줌마는 희망을 띄며 가고자 했고,
병원은 죽는 걸 허락하지 않는 굉장히 안좋은 곳으로 묘사하고 있죠.
그리고 우산 아르튀르와 모모의 몽상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모모에게 있어 우산 아르튀르는 무가치한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필요가치가 충분한 것들만을 원하지만
무가치한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한 느낌이었달까요..
그리고 모모의 몽상이 상징하는 것은.....
모모의 몽상은 현실의 괴로움에 대한...그리고 현실에 대한 회피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살아가기 힘들 때 사람들은 좋았던 기억만을 떠올린다거나
몽상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에 대한 강조였지 않나 생각되네요
사람들이 자기앞의 생의 이야기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책 초반에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본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주인공 모모는 이웃으로부터 관심을 받으며 생활하고
로자 아줌마가 아픈 후 주민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책 마지막엔 사랑해야 한다 라고 마무리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음 저는 다른 얘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생' 그 자체요..항상 그랬듯이 제 느낌대로~~ㅋㅋㅋㅋ
이 책에선 의외로 '생'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되진 않습니다.
메모를 하지 않아 어느 페이지 어느 부분에 나온다 라는걸 얘기할 순 없지만
'이런 사람은 생을 얻을 수 없어'
'이런걸 생이라고 할 수 없어'
이런 식의 얘기들만 조금 등장할 뿐이죠
'생'이란 무엇일까...작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어떠한 기준으로 이것은 '생'이 아니다 라는 식의 얘기를 했을까...
책에서의 '생'은 결코 희망차지 않으며 거짓말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이조차도 거짓이고 부모조차도 속입니다.
상 사람들은 진정한 '생'을 살고 있지 않으며 구속되어 있고
죽음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시간은 너무나 늙어서 가장 느리게만 흘러가고 있지만 가지고 있는 걸 모두 빼앗아 갑니다.
하밀 할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기억도, 로자 아줌마도...
도망치고 도망치지만 그리고 그렇게 끝나고 싶었지만
끝내 세상은 자기를 찾아낸다고 얘기합니다.
그럼에도 모모는 비록 힘들었지만 사랑을 받았고
받은 만큼 모든걸 해주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아마 이래서 사랑에 대해 얘기하지 않나 싶긴 합니다.)
에밀 아자르는 부인이 죽고 자식이 성년이 되었을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했죠.
에밀 아자르가 말하고 싶었던 '생'이란
구애받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게 아닌 자기 스스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리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염원을 들어주는...
그런 삶이 바로 '생'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밀 아자르가 말하고자 했던 '생'(제가 느끼기엔)
과 제 나름의 '생'은 비슷하면서 다른 부분이 좀 있습니다.
저는 자기 스스로 완성해 나간다기보단
그저 흘러가는대로 사는 편인거 같달까?ㅋㅋㅋㅋ
아직 에밀 아자르의 경지까지 올라가지 못해서..겠죠?ㅋㅋㅋㅋㅋㅋ
뭐 어떻게 사는게 옳은 '생' 이다 라는 건 없는거라고 생각해서ㅋㅋㅋ
뭐...편한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ㅋㅋㅋㅋ
;;한번 정리했던 내용인데도 뭔가 문맥흐름?..에 맞춰서
다시 정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네요;;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
로맹가리(에밀아자르) 책들을 좋아해서 종종 찾아봤었는데, 저는 역시 이 책이 가장 기억에 남더군요 :)
혹시 원제가 한글명과 좀 다르지 않을까 해서 찾아봤는데. 비슷하군요.
La Vie Devant Soi 로 '앞으로 남은 생', '여생' 이라는 뜻이라네요 :0
오!! 그런가요?? 그럼 한글제목이 자기앞의(남은) 생? 이라는 뜻이었을 수 있겠네요
자기앞에 (보이는) 생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ㅋㅋㅋㅋ
원제도 좋지만 한글 제목도 뭔가 다의적으로 되어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ㅋㅋㅋ
너무 예전에 읽어서 감동적이었던 느낌적인 느낌만 어렴풋이 나는데 이 글 읽다보니까 조금씩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고 내용을 떠올리시다니..
능력자 시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감동스런 글을;; >.<
필립 코틀러도 기대 기대 하겠습니다
감동까지...;;;;;ㅋㅋㅋㅋ
그 기대감을 깨드리겠습니다 ㅋㅋㅋ
책 많이 읽으시나봐요 ^^ 재미난책들이 많이 있으시네요.
책읽으면 머리 똑똑해진다고 하니 저도 부지런히 읽어야겠습니다 !!
좋은 블로그 업보팅하고 갑니다 ^^
아...어...똑똑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저 구요 ㅋㅋㅋㅋ지금 기억나는 책도 거의 없고;;;
그래도 책 읽으면 좋긴 합니다 ㅋㅋㅋ 추천추천!!
감사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