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이별구경 - [Feel通 - 일상의 안단테]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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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이별구경


"오라고 해. 아니 얼마나 힘들면 여기까지 오겠다고 하는 거야. "

친구와 함께하는 저녁에 친구의 친한 동생, 얼굴도 한번 안 본 25살 남자A가 달려오겠단다.
자초지종은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6개월이 넘었는데, 개강해서 다시 보게 됐고.
간신히 억눌렀던 가슴 한쪽이 터질 것 같아 도저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거였다.
상황은 친구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막상 남자A가 친구의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은
"죽을 거야" "자살한다, 나"
"또 걔랑 마주치면 진짜 죽을 거야" 정도였다.
제대로 된 말을 구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실연이 실언을 낳은 거라지만. 도대체 목숨이 몇 개이길래 그렇게 계속 죽겠다 하는 것인지.
상황이 딱해 보여 친구의 수화기 너머의 다급한 목소리를 집으로 오라고 했다.
설마 오겠어 하는 마음이었는데 남자A는 한 시간도 채 안 돼 왔다. 진짜 왔다.
집 문을 열면 인신매매범들이 튀어나와 납치라도 해가면 어쩌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게도 이별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을 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가 무서운 겁쟁이로 만드는 것이 잔인한 실연이었지.


일단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고 눈을 마주친 남자 A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멀끔하고 멋있는 아이였다.
대역죄인 것처럼 어깨 하나 제대로 펴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어색할 만큼.


"우리가 들어줄 수는 있어. 처음 보는 사이라 내가 불편하지만 않다면"
"몰라요, 전 그냥 이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날 것 같아요. 너무 두려워요."
남자 A 입에서 1년 전쯤 내가 했던 말이 튀어나오다니. 갑자기 더 흥미로웠다.
"왜 그렇게 생각해?"
"걔만큼 예쁘고 좋은 애가 나타날까요? 그리고 나타나더라도 그 애가 날 좋아할 보장은 없잖아요.
이렇게 아픈 거라면 사랑, 그거, 안 할걸 그랬어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25이구나 싶었는데.
아차차,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에 무방비로 얻어맞으면 누구나 다 저런 모습일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자퇴할 거예요. 학교도 때려치우고. 숨어서 살 거란 말이에요. 난 망했어요"
순간 만난 지 30분도 안 된 남자 A 의 뺨이라도 때려줄까 싶었다.
그게 말이 되냐고. 이 아이를 어쩌나. 찬물이라도 얼굴에 끼얹어야 정신을 차리려나.

하지만 어쩌긴. 어쩐다고 뭐가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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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을 꾹 참고 고개를 돌려 내 손에 상처를 본다.
기억은 안 나지만 4살쯤에 생긴 상처다. 나는 엄마랑 둘이 살았는데 4살쯤엔 엄마가 날 업고 호떡 장사를 했다.
엄마는 매번 뜨거운 기름에 손을 가져다 대는 불을 좋아하는 아이가 걱정이었고, 아이는 엄마의 "안돼" "아뜨뜨" "하지 마" 라는 말이 그저 재미있었다. 바쁜 엄마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편쯤으로 여긴 거다.
엄마의 마지막 묘책은, '데여봐야 알지'
결국 내가 뜨거운 기름 판에 손을 가져가는 걸 막지 않았고 호되게 데인 나는 몇 분간의 눈물 바람 뒤에 더이상 위험한 장난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손등에 좁쌀만 한 흉터를 얻었지만.
엄마의 이런 교육 방침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됐다. 내 고집에 대한 종지부는 늘 " 데여봐야
알지. 맘대로 해"였다. 그것이 아직도 내가 엄마가 좋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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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등에 볼록한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
"그래! 하고 싶으면 자퇴해. 정 못 견디겠으면 그래야지 뭐." 남자 A의 눈이 되려 휘둥그레진다.
"누나는 찬성하는 거예요? 내 맘 알죠? 그쵸?"
"그전에 맛있는 거나 좀 먹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손님인데 대접을 해야지."
선택은 결국 남자 A의 몫이니 나는 그저 고기를 구워주기로 했다.
그 와중에 " 뭐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라며 나서는 게 아직 정신이 남아있나 보다.


나는 어쩌면 작곡이 전공이라던 A가 휴학을 해서 더 좋은 곡을 쓰고, 아픔 속에서 많은 걸 배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충고라며 말하는 "해봐서 아는데"의 방점은 '해봐서'에 찍혀 있어야 한다. 결국, 그 말을 하는 사람도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는 뜻 아닐까?


내게도 허망하게 사라진 사랑에 힘들어 할 때 충고를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연애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며 침묵의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어떤 조언도 소용없었다. 강 건너 구경꾼들의 조언은 건너 편의 시점이기에 절대 완벽히 와 닿을 수가 없다. 밤낮 이불킥을 하고 '인생의 막장이 이렇게 마무리되는구나.' 자책으로 마음을 짓이기고 나서야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를 알게 됐다. 만신창이로 보낸 시간이지만 적어도 상처를 피하지 않고 매달린 용기가 부끄럽지 않다.


그날 남자 A와 우리 둘은 고기 한근 반을 먹어치웠다.
죽겠다던 사람의 식욕이 너무 왕성한 거 아닌가.

안쓰럽지만 각자의 몫만큼 견뎌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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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고 회복하는 것 까지 정말 각자의 몫이죠. 그나저나, 잘먹는걸보면 생각보다 금방 건강하게 회복할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사실 각자의 몫 아녔으면 좋겠어요. 저도 실연의 기억이 힘들었었어서.. 그냥 누군가에게 냅다 버리고 도망갈 수 있음 좋겠어요 ㅎㅎ 끄악.

고기 한근 반은 최후의 만찬인건가요. ㅎㅎ(흠흠. 웃으면 안되겠네요.)

때마침 제 성장기 3,4편에 예전 학생시절 연애이야기를 올린지라 글이 와닫습니다.
'사랑', 제일 어려운 질문인것 같아요. 인생에서의 다른 모든 주제와 다르게 ‘나'와 ‘너'의 합의가 필요한 질문일 테니까요.

저 친구도 그렇게... 조금씩 배워가겠죠? ^_^;

그럼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bygon 님, 맞아요! 사랑은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죠.
그 글 읽었어요^_^) 힛.
여러번 배우고 학습해도 한순간 바보가 되는게 사랑의 공식인 것 같아요. 멍~ㅎㅎ
그럼 오늘도 감사합니다!

부끄럽네요 힛 ㅋㅋㅋㅋㅋ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모 가수의 밥만잘먹더라~ 라는 구절이 떠오르네요.
필력이 굉장히 좋으십니다!! 잘 읽었어요.

"해봐서 아는데" 는 결국 해보고 나서야 알게됐다는 뜻 키야~

오, 너~무 정확한 가사를 얘기해주셔서 완전 웃었어요.
스팀잇 활동하면서 필력좋다는 말이 제일 반가운것 같아요. 힘이돼요. 감사합니다~>_<)b

A군아... 나 이제 걔 없이 어떻게 살아~~~~~ 하면서 미친사람마냥 울며 강남 한복판을 거닐던 나도 결혼해서 잘먹고 잘살고있다...ㅋㅋㅋㅋ

shimss님 진짜 그럴까요... A군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하아...
봄바람도 부는데요 ㅋㅋㅋ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좋다고 하잖아요! ㅎㅎ

오늘은 살짝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네요 ㅠ
그것도 겪은지 얼마 안되는..

"걔만큼 예쁘고 좋은 애가 나타날까요? 그리고 나타나더라도 그 애가 날 좋아할 보장은 없잖아요.
이렇게 아픈 거라면 사랑, 그거, 안 할걸 그랬어요."

이 말이 생각보다 흔하게(?) 들려오는 말이라 읽는 순간 귀엽다고 미소지어버렸지만, 바로 잠시 뒤에 '나라도 정말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지면 정말 저런 생각이 들거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도 오랫동안 정말 좋아하며 사귀다가 장거리 커플이 되며 헤어진 친구가 있는데, 저 말을 그대로 하더라구요.
추가로 '그만큼 오랜시간동안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그 과정을 다른 사람과 언제 하고있을지 자신이 없다' 라는 말도 하더라구요.
그만큼 아픈 이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친구도 처음엔 정말 난리도 아니었는데, 전 사실 필통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제대로 공감하고 위로해주지 못했습니다. 아직 그렇게 아픈 이별을 해본적이 없기도 하고, 장거리로 인한 이별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처지여서 눈 앞의 친구를 위로해주기보단 나중에 나도 저렇게 아파하겠구나 걱정부터 들더라구요 ㅎㅎ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기적이네요 저 :)

여튼 고기도 한 근 반이나 먹어 치웠으니 기운이 많이 났을거에요!! 남자 A씨 화이팅입니다아! :D

이 글 무거워요? 진짜?ㅋㅋ
엄청 가볍게 쓴다고 쓴건데 . 소재 자체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다. 그쵸?
맞아요. 이별하고 나면 누구나 읊게 되는, 고정멘트.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저런 이야기 하게 되죠 ㅎㅎ

공감과 위로는 결과가 아니라 노력인것 같아요. 우린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공감할수 없고, 온전히 위로해줄 수 없잖아요. 위안이 됐을거예요.
A씨 걱정은, 알아서 하겠지머 ㅋㅋㅋ 우리나 잘 삽시다아>_<

ㅋㅋㅋㅋㅋ 맞아요!! 주변에서 아무리 위로하고 공감하려 노력해줘도! 결국엔 혼자 짊어지는거지요!
우리나 잘 삽시다아!!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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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조오을때다라는 생각이.. 청춘은 짧고 인생은 길죠 ㅎㅎ

유피님은 그래도 감우성ㅋㅋㅋ 풍부한 시인이시잖아요. 지금도!

누구나 한 번쯤 있는 이런 시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던 감정들이 그땐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죠. 아아, 아프디 아팠던 그 시간들이란.

2손님 마치 '시'와 같은 댓글 감사해요. 뵌적 없는 분인데 음성이 들리는것 같은건 왜일까요..^_^);;

무겁게 다가오는군요... 우리는 항상 현실에만 기대치를 두고 살기에 힘든 과거를 넘긴 자신감과 경험은 무시하며, 미래도 나아질거 없다는 절망감만 갖고 살아 가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