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직장 생활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에 대한 답변
[질문]
안녕하세요? 평소에 글을 자주 보면서 배우는 부분도, 위로 받는 부분도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황당하시겠지만 고민상담을 하고 싶어서요.
저는 이제 근무한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어느 회사나 그렇듯 쉬는 시간 없이, 과로 과음에 과체중을 얻어 살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요. 그나마 남편은 같은 직장에서도 업종에 묶인 일이 아니다보니 비교적 회사 생활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지만 저는 업종 따라서 이직을 하다보니 생각하던 삶과 괴리가 크고 우울해졌습니다. 20대에는 힘들어도 보람을 찾았지만 지금은 너무 하기 싫습니다.
계속 이용 당한다는 느낌? 피해의식이 커졌거든요. 근무시간 뿐 아니라 제 개인 시간까지 그들에게 유용되는 것이 자유를 박탈당한 기분입니다. 그래서 휴지기를 가지다가 조금 편해 보이는 직장을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3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고 몇 년 안에 아이를 가질 생각도 해야 합니다. 막상 이직해보니 예전처럼 일을 하게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저의 기본치로 생각을 하더군요. 더군다나 지금 있는 곳에는 공교롭게도 저 혼자 처리해야하는 일이 있는데 이걸 이끌어 갈 자신이 없습니다. 사장은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려고 하며, 제가 일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고, 결재도 잘 안해줍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늘 제 탓을 하고요. 벌써 번아웃 된거 같아요. 마음의 절반은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또 새 자리를 구할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찹합니다.
내 팔자가 항상 일이 쉼없이 이런건지 아니면 회사를 잘 못 본건지 둘 다이겠지만 또 다시 끝없는 무기력에 빠지네요. 근무를 계속한다면 그들의 기대에 충족한 회사생활을 해야 무탈할 것 같고, 아니면 다른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고.
사직서를 낸다고 쉽게 보내주진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올려 봤습니다.
제가 일 시작했던 업무 환경은 이십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신 상의 문제인지......
[답변]
일단 워라벨이 보장되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다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그것은 딱히 제가 쓸 말이 있는 부분이 아니므로 더 적지는 않겠습니다. 워라벨이 훌륭한 좋은 곳으로 다시 이직하시거나 아니면 지금 직장 환경이 조속히 바뀌길 바라겠습니다. 아래 글은 그런 일이 없다는 전제 하에 써본 글입니다.
업무 환경이 이십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게 아마 질문자 님의 습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습관이라고 말하면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지만 습관은 운명이나 저주와 동의어입니다. 아랍 속담에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일어나라는 법은 없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세 번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람 피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만나는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반복해서 만나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클럽을 가든 소개팅을 하든 정식으로 선 자리를 가지든 간에 기막힐 정도로 그런 남자들과 계속 엮일 때도 많죠.
예전에 어떤 목사가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가문을 지배하는 어떤 기운이 있다 그런 거였죠. 꼭 구성원 중 하나가 도박으로 망하는 집안이라던가 술 중독이 있다던가. 예수를 믿어서 그걸 극복하라는 것이었죠.
저는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설교의 말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그냥 살게 두면 결국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살 수 밖에 없거든요. 책을 읽든 결심을 하든 그건 몇 시간 이벤트에 불과한 반면 자기가 취해온 길은, 그 누적 시간이 수십년이 넘으니까요. 어려서 보고 금세 배우는 부모의 모습이 그 부모가 수십년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고, 그 부모 역시도 그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것이라면 그 습관은 실은 백년짜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귀신 같이 환경도 그렇게 찾아오게 됩니다. 근데 제사를 지내던 집에서 예수를 영접해서 부모 시체를 화장하고 새벽 기도를 다니기 시작하면, 이스라엘 민족신이 딱히 전능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격 요법이 될 수 있으니 습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이미 삼십년 이상 살아왔고 그 사이에 쌓아오신 것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태도 뿐 아니라 이직을 할 때 고려하는 것들도, 정보를 얻는 소스도, 그 모든 인맥들도 강력한 습관의 산물이고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정말 뒤로 엎어졌는데 코가 깨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도 실은 필연입니다. 단순한 나비 날개짓 하나가 태풍을 일으켜낼 수 있는데, 자신의 모든 습관이 익숙한 방향으로 누적되고 있는데 그게 어떤 사건을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비과학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습관을 끊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라는 말도 드리기 어렵습니다.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서문을 시작했지만 저는 질문자님의 습을 나쁜 것으로 파악되지 않거든요. 세상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넘친다는 것만큼 훌륭한 일입니다. 자기 사업을 해보니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알겠더군요(저는 저 같은 사람은 절대 뽑지 않을 생각입니다). 질문자님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질문자님 같은 사람을 선호할 겁니다.
또한 확률적으로 질문자님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더 "답"에 근접할지도 모릅니다. 저희 아버지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영화 <브레이트 하트>의 주인공이 "Freedom!"이라고 장렬하게 외치지만 그 다음 바로 목이 잘리지 않냐고. 그만두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 한 번 있어볼 생각을 하라고요. 그리고 그건 오래 사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배포가 크고 호탕하게 생활한 친구보다 큰 일은 하나도 못할 것처럼 묵묵히 버티던 친구가 지금 보니 가장 잘 살고 있다는 식의 말이죠.
또한 저는 실제로 그런 것을 많이 보기도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욕했다는 이유로 고객을 쫓아가서 장 파열을 시킬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던 친척 분도 계시고, 회계사 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못 해먹겠다 싶어서 고기집을 여신 분도 있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시고 책을 내신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 의협심 강하신 분은 지금도 사업체 크기가 단칸방 수준이고, 회계사가 차린 고기집은 거하게 망했습니다. 여행 다니시다 책을 내신 분은 지금 학습지 교사를 하시는데 물가를 고려 안 하고 그냥 숫자 그대로 신입 사원 때 월급의 반 정도를 받습니다.
반면 질문자님은 좋은 조건에 계십니다. 서른 중반이면 괜찮은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거의 단절된 분들도 많은데 훌륭한 남편 분이 계시고, 출산을 한 덕분에 경력이 단절되어 원래 과장으로 다니던 직장을 계약직 사원으로 다시 들어간 분도 있는데 능력을 인정받고 이제 경력도 10년이 넘으셨습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직 그거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질문자님처럼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살던 사람이 쉽게 다르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벌써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여기서 두 가지나 더 말씀드리려고 하네요. 힘들게 썼지만 지겨우시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첫 번째로,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으니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선택하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유를 택하면 보통 안정을 잃습니다. 두 가지를 다 가진 분들도 계시지만 운이 좋은 소수일 뿐이기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고 하여 딱히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고 전제 하에 과연 질문자님이 찾고 있는 것이 자유인지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성공한 소설가가, 자신을 부러워하는 직장인들에게, "당신들은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말하는 직장인이 되는 게 진짜 꿈 아니었습니까? 내가 봤을 때는 그걸 목표로 살아온 것 같은데....."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면 골방에서 라면을 먹으면서라도 뭐라도 썼어야 했고 욕망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집안 형편 상 근무를 계속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작에 그만두고 전업 주부를 하실 수도 있었고 경험을 살려 프리랜서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전혀 새로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일도 아니고 무려 10년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10년의 결과물이 제가 보았을 때는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쓰신 질문에 스트레스가 느껴지고 힘드셨을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정말 괴롭기만 했으면 10년을 다닐 수 없습니다. 저라면 10달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지금 개업을 하고 의외로 잘 먹고 살고 있기는 합니다만 직장을 그만둘 당시에는 편의점 알바 급여만 받을 수 있어도 이제 조직 생활은 그만 해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연봉의 직장이었다던가, 요즘 시대에 젊은 변호사가 작은 사무실을 내 개업을 하면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던가, 집에서 부모님이 깊게 실망하셨다던가, 낙오자라고 욕을 먹는다던가 그런 것들은 그 결심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마음의 반이 떠나셨다고 하셨는데, 안정을 포기할 정도로 그 갈망이 큰 지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자유와 안정 두 가지를 오롯이 다 누리고 싶은 욕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개를 다 누리실 수는 없고 6을 취하시면 4를 버리셔야 합니다. 통상 그게 인생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를 택했다면 거기에 책임을 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가지 못한 길에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일 수도 있습니다. 거창하게 썼지만 좀 더 쉽게 말하면 인생은 포기하면 편해요. 어차피 사람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전부인데, 자신에게 원래 없었거나(본 사례의 경우 자유와 안정이 모두 주어지는 금수저의 삶) 이제 선택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직장을 그만둘 경우 사람들의 사회적 인정 등, 계속 다닐 경우 여유로운 삶)을 찾으면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늘 자유가 우선이었습니다. 십대 후반 잠깐을 빼면 저는 일관되게 참지 않으며 살아왔죠. 그게 제 습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중학교 때 반장으로 뽑혔다가 4달 만에 잘린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게 그렇게 흔한 일인가는 지금도 의문이 있습니다. 전 직장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군기 잡기와 트집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자, 한국에서 제일 군대 문화가 강하다는 그 조직에서 제일 늦게 출근하고 제일 일찍 퇴근하길 반 년 이상 지속했습니다. 점심에는 밥도 같이 안 먹고 휴게실에서 낮잠을 잤고 어느 날은 누가 갈구길래 그냥 다음 날 연차를 내고 출근을 안 했습니다. 뒤에서는 말이 참 많았던 거 같은데 어느 시점이 지나자 아무도 제 앞에서 불만 표시를 안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조용히 불러서 나가주면 안되겠냐고 부탁했습니다. 미련없이 나왔고 어차피 조직 생활은 못할 캐릭터인 듯 싶어서 개업했습니다.
질문자님의 삶이 옳고 저는 틀렸다거나 또는 반대로 제 삶이 자기 주관대로 제대로 된 삶이고 질문자님이 틀렸다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질문자님 같은 삶을 때때로 동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자님처럼 살 수 없는 것은 저는 그렇게 살 위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면 죽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조직을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싹 포기하기로 했죠. 사실 아쉬운 점도 많았는데 일단 포기하니 편하더군요. 때로는 영업이 잘 안 되고 통상 주 100시간을 근무해야 하고 야밤에 생전 모르던 사람이 한 시간씩 전화로 법률 상담을 한다던가 그런 일이 스트레스는 되지만, 일단 자기가 선택한 길이니 그래도 후회는 적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그 고기집 차린 회계사처럼 힘들지도 모릅니다. 요즘 변호사 사무실이나 고기집이나 거기서 거기니까요. 하지만 기왕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후회대로 한다고 해도 역시 책임은 지고 지나간 길에 아쉬워해서는 안 되겠죠.
지금 계신 직장이 정말 크게 발전할 수도 있고, 여성 임원이 되시거나 그 분야의 대가가 되어 강연을 다니고 가끔 신문에 글도 쓰고 그런 삶을 살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반면 직장을 그만두시고 새로운 길에 접어들어 또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거나, 자녀를 출산하거나, 아니면 좀 더 편한 직장에 가게 되실 수도 있겠죠. 못하실 것으로 확신하지만 저처럼 대놓고 태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은 면도 있지만 또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그냥 결정하시고 그 결정 밖의 것들에는 눈을 돌리지 않으면 의외로 마음이 편합니다. 나는 원래 다른 여러 사람의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구나, 이제는 보람이 딱히 없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런 자기 인식에 익숙해져 본인 습관대로 사는 것도 답이 될 수 있고, 습관을 어떻게든 바꾸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질문자님의 불행은 결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혹 제 답변이 지나치게 경솔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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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 오랜만이네요~~
근데 정확히 어떤 목사님이 하신 말인가요? 정확히 기억이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pdf로 스크랩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이네요!
과찬이십니다 ㅎㅎ
정말 알찬 조언이었습니다. 작가님 글을 보면 제가 지나간 세월을 너무 고민 없이 살았다 싶을 때도 가끔 있습니다~
ㅎㅎㅎ 이렇게 긴 글을 또 읽어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
두고 두고 아껴서 읽고 싶을만큼 배울게 많은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
아니 너무 와닿는 글인데요 ㅋㅋ 감사합니다
ㅎㅎ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