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개념은 느낄 수 없다.

in EverSteem5 days ago

이미 460만 조회수를 넘기고 있는 장안의 화제 동영상, 개그맨 이수지 님의 대치동 도치맘 풍자 영상이다. 페이크 다큐이며 수지님의 연기가 물이 올라 이미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 콘텐츠는 뉴스 면에도 소개될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 역시 몽클레어 패딩이 당근 중고 마켓에 핫 아이템으로 떠올라 팔려나가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에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뭐 길래?'

영상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생각만큼 재밌지도 웃기지도 않았다는 거다. 내 세계엔 '도치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데다가 육아를 하는 이들과의 접점도 많지 않고 관심도 없는 내 세계엔 oo맘이 없다. 어떤 맘도 없다. 아이를 육아하는 친한 친구들이 있고, 가끔 그들의 고민이나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듣기도 하지만, 그건 내 친구의 고민거리지 oo맘의 고민거리나 oo맘의 특성으로 자리잡지는 못한다. 애초에 내 세계엔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분류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한다.

무지렁이 같은 내 눈엔 수지님이 열심히 의도에 맞춰 배열한 가방이나 옷이 어디 브랜드인지도 파악 불가하고, 딱히 말투에도 문제가 있거나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가끔씩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은 알겠지만, 그다지 내게는 거슬리거나 웃음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는다.

영상을 보면서 내가 유일하게 웃은 부분은 연날리기 달인, 제기차기 달인이 등장하는 부분이였다. 하나도 전문가가 아닌 그와 그를 처음엔 한 없이 띄워 주다가 마지막에 말도 안되는 변명을 우아하게 건네면서 거마비 오천원을 건네는 부분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도치맘으로 분류될 만한 사람들을 만난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다. 그러니 이 영상에서 사람들이 어느 포인트에 열광하고 어느 포인트에 기분이 나빠서 집에 있는 멀쩡하고 따뜻한 패딩을 팔아야만 하는지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이건 아주 신선한 경험이다. 사람들의 감정적 에너지가 짧은 시간 내 폭발하듯 모여드는 콘텐츠를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경험은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이 정도 파급력의 콘텐츠를 볼 때면 작든 크든 나와 연결되어 있거나 내 안에 살고 있는 개념이 어떻게든 작동하며 제3자가 아니라 주체자로 콘텐츠에 관해 반응하곤 했다.

딱히 일부러 노력한 게 아닌데도 명확히 보였다. 내 세계에 없는 개념은 느낄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 그 개념은 그냥 나를 통과해간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하는 모든 반응엔 내가 있다. 내 세계에 존재하고 나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기에 반응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이 콘텐츠를 기획과 콘텐츠 마케팅의 귀한 사례로 분석하고, 누군가는 연기의 교보재로 사용할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돌아보거나 주변의 누군가를 돌아보고 문화나 사회를 돌아보는 데 이용할 것이다. 어떤 누군가에겐 해방구가 되어주기도 할 테고. 하나를 봐도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다. 자신 안에 가장 중요한 개념과 연결된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러니 콘텐츠가 발행된 후, 어떻게 읽힐지는 결코 예측할 수 없고 그 자유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수지님의 최초 제작 의도가 몹시 궁금하긴 하다. 원작자의 의도는 언제나 내게 궁금증을 자아낸다.


2025.02.16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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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콘텐츠 소개 감사합니다~
뼈 때리는 내용이네요~

정훈님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수지님이 원래도 몹시 잘했지만 홈런을 날리셨어요ㅋㅋㅋ

글이 너무 찰져요!!!!! 내 세계에 없는 개념은 느낄 수가 없다는 말, 너무 공감합니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려면 같은 개념을 공유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ㅋㅋㅋ 찰지다니! 공감해주시니 채린님 세계로 꿀꺽 소화된 것만 같아 기뻐요. 같은 개념을 공유하려는 노력 쉽지 않지만 계속 해봐야지요. +_+!

재미 요소가 충분한 풍자 코미디 같은데요.
중간 중간 빵 터졌어요 ㅋㅋㅋ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ㅋㅋ 파치님께 빅재미를 선사했군요👍

오~ 정말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네요!!

경험해보고 인지한 만큼 느끼게 된다.

이런 걸 보면 또,
꼭 많이 안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네요 'ㅡ' ㅎㅎ

으하하 맞아요. 아이같이 순수한 게 좋을 때가 있지요.
그래도 아는 쪽이 재밌다고 생각해요! ;ㅁ; ㅋㅋㅋㅋ

본인이 겪지 않은 일이지만 현실을 고증을 열심히 한 흔적이 있습니다 ㅋㅋㅋ 캐릭터 진짜 잘 뽑으시는 듯 해요.

ㅋㅋㅋ다들 너무 살아있다며 칭찬일색이더라고요! ㅋㅋㅋ 수지님은 캐릭터 연기 달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