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너는, 하고 있니?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6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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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도 세상에 이런 막장이 없다. 결혼식장에서 자기 친구랑 바람났다며 파혼한 남친의 아이를 가지고서는 그 남친 앞에서 동성연인과 사랑한다며 키스를 해대는 전 피앙세를 바라보는 남친은 여친의 절친을 품은 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로 아이 엄마의 동성여친과 한 침대를 쓰는 것도 모자라 위층 여친의 친구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며 세상에 이런 막장이 없다는 여친의 절친이자 친구인 주인공의 한탄을 듣고 앉아 있다. 타월 좀 건네달라며.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나도 몰라. 자막 없이 보고 있거든. 이건 내가 못 알아듣는 건지, 요즘 핫 피플들의 뉴트렌드인지. 미국에서 만든 파리 영화니 이건 아메리칸 스탠다드냐? 프렌치 스탠다드냐? 전 세계를 뒤흔드는 K-막장 드라마 쫓으려다 너무 나간 거 아니야? K-아침드라마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요즘 다 이런다고?? 이게 대세라고??? 오 나의 여신이여!



기가 차서, 드라마라 그런 게지 싶다가도, 대체 수습이란 게 없이 시종일관 막장으로 내달리니. 아~ 내가 이상한가? 자막을 못 봐 엉뚱하게 알아듣는가 싶다가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들만으로도 도무지 'Mak-zang of Mak-zang'이라,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거나, 다가올 미래를, 아니 닥쳐온 현실을 독고다이로 내달리다 보니 마법사만 모르고 있었나 싶은 거다. 아니다. 그럴 리가. 내 주위엔, 이 나라엔, 결혼은커녕 연애포기 선언이 난무하다 못해 대세를 이룬 지 오랜데. 동시대의 대륙 반대편에선 3차 세계대전 못지않은 장미의 전쟁이 폭주 중이니. 시계가 서로 반대로 돌고 있는 건가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지.



그런데 신기한 건 혀를 끌끌 차다가도, 뭔 말인지 통 모르겠지만 저들끼리 싸우고, 헤어지고, 욕하다가 끌어안는 그 'relationship'이 말이야. 희한하게 끌리는 거야. 심지어는 감동적이기까지. Impossible, 이게 가능해? 싶은 거지. 아무리 드라마라도 말이야. 언어습득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허황되다며 꺼버렸을 드라마가 묘하게 사람을 설득한단 말이지.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니, 그중에 제일은 에밀리라네.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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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와 멸시, 천대의 아이콘인 콩쥐, 신데렐라, 소공녀를 모두 짬뽕시켜도 부족한 긍정의 화신이자 매력 발산 분수대라, 좀처럼 납득 불가한 모든 상황을 반전시키고 역전시키고 강제 흡입시켜 버린다네. 세상에나 그녀가 당한 조롱, 왕따, 희롱, 무례를 모두 합산하면 종신형은 나올 거야. 한국이라면 맘카페와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합심해 조기종영과 제작진 손해배상을 받아냈을 막장을, 이 초인적 캐릭터는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돌파해 나간단다. 누가 침을 뱉겠어. 남친의 마음을 빼앗겨도, 이 남자, 저 남자 다 받아주고, 붙들지도 잡지도 않는 이 파리의 여신에게 말이야. 그 매력에 푹 빠져 어쩔 줄을 모르는 NPC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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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전선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쳐졌는지 몰라. 이 나라의 청춘들이 방어전선을 구축했다면, 저세상에서는 나이 가릴 것 없이 일제히 서로 맹공에 나선 장미의 전쟁이 이미 대전을 이루고 있는 거야. 무기는 뭐라고? 오로지 '매력' 그것뿐이라네. 도덕도, 전통도, 약속도, 믿음도 모두 매력 앞에선 유효기간 지난 공짜 쿠폰에 불과해. 사람 마음을 누가 알겠어.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네 마음 어떨지 누가 알겠냐고. 그러니 붙들어 놓는 힘은 매력, 매력, 매력. 몸과 마음이 뿜어내는 중력인 '매력' 그것뿐이지. 그게 검이라고. 매력의 검.



또한 상처가 난무하고 유혈이 낭자한 이 처절한 장미의 전쟁에서 피투성이가 되어서라도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으려면, 매력의 검만큼이나 갖추어야 할 중요한 방패가 있어. 그건 바로 'HEART BREAK'. 사랑의 전사들은 작심하고 이 방패를 향수처럼 온몸과 마음에 뿌리고 다닌단다. 잊지 않아야 하니까. 그 향기를 기억해야 해. 사람뿐만 아니라 삶 역시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BREAK' 하니까. 그 다짐이 아니면 이 전쟁 시작도 못 한단다. 그게 두려워 항복을 선언한 패잔병들이 그 마음을 어찌 알까? 'BROKEN HEART'를 두려워하면 인생에 사랑은 없는 거야. 사랑이 없으면 인생이 아니라고. 그렇대. in Paris에서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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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각, 사각, 다각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캐릭터들마저 연신 'It's complicated'를 외쳐대는데. 연놈들에다가 LGBTC도 모자라, 이제는 AI들까지 가세한 이 장미의 전쟁에서 너의 무기는 대체 뭐라니? 아 몰랑, 자빠져서 넷플릭스나 볼래. 그렇다면 땡스! 경쟁자 한 명 줄은 거지. 그런데 말이야. 사랑 대륙의 쟁탈전이 난무하는 데 가만 앉아서 손만 빨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가는 거야. 우주는 잉여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유전자와 호르몬에 큐피트의 화살로 각인시켜 놓은 것 아니겠어? 사랑, 사랑하라고 말이야. 매력의 검과 하트 브레이크의 방패를 들고 돌격 앞으로! 그 힘을 최대한으로다가 깔고 앉아 누르고 억압해 봐야, 돌부처 마냥 해탈하지 못할 거면 온몸의 세포에 각인된 그 에너지가 너를 끌고 어둠의 지하 감옥 이불속으로 끌고 들어갈 거야. 남의 사랑이나 훔쳐보라고. 종신 시청형에 처하는 거야. 사랑하지 않은 죄! 유죄니까.



막장도 이런 막장이라면 물극필반이라고 해야 할까? 장미의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는 걸, 너도 보면 알게 될 거야.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사람은 말이야. 그게 우주의 뜻이라는데 거역하면 뭐 하겠어? 힘든 건 똑같은 걸 말이야. 너 때문에, 사랑 때문에 힘든 게 낫지. 외로워 죽겠는 것보다.



며칠 만에 시즌 4까지 달려버렸어. 자막 없이 봐도 볼만 하더라구. 사랑에는 통역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언어를 습득하려면 'Ambiguity Tolerance', '모호함에 대한 관용'과 '불확실함에 대한 참을성'이 필요하다고 영어 선생님이 알려 주셨어. 사랑의 언어라고 다를까. 안전하고 확실한 것만 추구하다가는 결국 평생을 공부해도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영포자가 되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그 전쟁, 하고 있니?
사랑의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거야?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99. Emily in P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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