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의욕의 차이
여러분에겐 어떤 욕망이 있으신가요? 욕망이 별로 없다고요?
그건 혹시 욕망이 없고싶다는 욕망은 아닌가요?
또 아무런 욕망이 없고 의욕도 없다면 그게 정상적인 삶 맞나요?
혼자 이렇게 상념에 들어가 있는데 무언가 제 귀털을 잡아당겼습니다.
타타오: 아야아야! 마시구나? 그냥 말을 하지 귀털은 왜 잡아당기냐?
마시: 오늘 타타오님이 떠올린 그 주제-욕망이라는 단어가 너무 날 흥분시킨 거 있죠?
타타오: 마시는 흥분하면 남의 귓털을 잡아뽑냐? 그나저나 이 흥미로운 문자 좀 파헤쳐주라. 욕망이 뭐꼬?
마시: 우선 하고자 할 욕(欲)-이 문자를 아는게 순서입니다. 이것은 골짜기 곡(谷)과 모자랄 흠(欠)으로 이뤄져 있죠? 일전에 다루었듯이 골짜기 곡(谷)은 정(情)의 골짜기라고 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즉 인간적 마음의 늪이라고 해도 비슷합니다. 속인(俗人)이라는 단어에도 그 느낌이 들어있고요. 그리고 모자랄 흠 또는 하품 흠(欠)이라고 하는 문자는 결국은 흠결, 결핍, 모자람이 근원의 뜻이며 하품이라는 것도 산소가 모자라 하품을 하는 것이거든요.
타타오: 아! 그럼 하고자할 욕(欲)이라는 글자는 뭔가 모자랄 때의 사람마음을 뜻하는 거네?
마시: 네! 그 결핍의 마음에 감정이라는 휘발유가 받쳐지면 마음 심(心)을 더하여 욕심 욕(慾)이 되는 거랍니다. 그러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끓어오르는 상태겠지요?
타타오: 그러면 그 두가지 욕을 구분해서 쓸 수 있나?
마시: 구분하지 않고도 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좀 아쉽죠. 이렇게 구분하면 적당합니다.
둘 다 사람마음이라 나를 위한 것이요 사심(私心)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다면 의욕(意欲)으로 봅니다. 반면 그 온도가 지나쳐서 남을 해치고 내게도 해로워 진다면 그런 것을 욕심(慾心)이라 합니다.
타타오: 그럼 누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취업을 위해 노력하거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이런 것은 의욕(意欲)이라 하고
누군가 주식을 사서 대박이 나고자 하거나 장사를 하는데 폭리를 취하려 하거나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려 하거나 뭔가를 쟁취하려 한다면 그건 욕심(慾心)이네?
마시: 이제 정리가 되어가네요. 자! 그러면 욕망에서 망은 어떻게 해석할까요?
타타오: 그건 바랄 망(望)이니 뭔가 결핍을 느껴 그것을 당겨보려고 바라는 그런 뜻인가? 그렇지?
마시: 네에! 그 망자가 욕에 붙어 욕망이 되면 천박해지고 위험해 집니다. 그런 끈적함을 떠나 단지 바라는 바-소망(所望)이 된다면 순수하지요.
타타오: 바랄 희, 드물 희(希)에 붙는 희망(希望)은 어떤가?
마시: 그 희망 속에는 미묘하고도 진귀한 내포가 있답니다. 보통 속인들이 바라는 집착과 욕망이 아니라 아주 드물고 맑은 바람을 뜻하는데 바로 그것은 자신의 근본을 향한 바람이어서 맑고도 맑지요. 가령 반본귀진의 꿈이 있다면 그런게 진정한 희망입니다.
타타오: 그런데 말이지. 보통 사람들은 끈적하고 가연성있는 욕망을 품곤 하는데 그건 왜 문제가 될까?
마시: 욕망이란 한때 충족되어 쾌감이라는 홀몬을 분사해주자 그 자리에 쾌감을 담은 투명한 보따리가 형성이 되는데 그 보따리가 다시 비게 되면 결핍감, 배고픔 같은 것을 느끼며 그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욕망의 불길은 강렬하게 타오르지요. 그러다 보면 남을 해치고 결국 자길 해치는 결과에 이르곤 하거든요.
타타오: 우리 위장, 밥통도 과식을 하다보면 점점 더 그 밥통이 커져서 문제가 되는데 욕망이라는 것도 마치 밥통처럼 한번 채워지고 나면 또 채워달라고 아우성을 하는 것이로구나!
마시: 그렇죠! 아! 저 오늘 저녁 목성 마가목 카페에서 만찬이 있는데 밥통 좀 채우러 가려구요. 같이 가실래요?
타타오: 음, 말은 고마운데 난 이 몸이 무거워서 아직 그런 데 못 가. 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