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 paperless 시대, 재활용 종이를 떠올리며

in #zzan4 years ago

안녕하세요. @soosoo입니다. 제가 한 때 열심히 환경운동에 막무가내(?)로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 한 2004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 때 "작아"라는 월간지를 열심히 구독하고 있었답니다. 문고판보다 더 작은 판형과 재활용종이로 만든 그 책이 너무 좋아서 한 2년 쯤 구독했던 것 같아요. 제가 활동하던 환경 커뮤니티였죠. 그 책에 환경관련 에세이로 글을 기고했었는데요, 재활용 종이 특집을 놓쳐버려서 원고가 몇 달 밀려서 슬슬 그만볼까 싶더군요. 또 제가 구독을 시작했을 때 이유였던 작은 책의 형태도 없어지고 책이 커져버리기도 했었고요 여튼 그 때 실리지 못했던 원고파일을 잃어버렸나 했는데, 오늘 클라우드를 뒤지다 보니 남아있네요. 이제 스팀잇에 박제해 두고 삭제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지율 100%의 재생지와 콩기름으로 책 만들기 (2006)
_논문을 책처럼 만들기 12주의 기록.




재생지와 논문편집하기

2006년. 처음 재생지를 접하던 그날. 앞으로 종이로 된 매체를 만든다면 꼭 재생지를 사용해야겠단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참 환경보호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때, 종이가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오염과 환경파괴는 그전 희고 깨끗한 종이를 쓸 때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석사논문. 무겁고 돈도 많이 들고, 종이도 낭비하며 재활용도 복잡한 기존의 논문 제본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규정으로 정해져 있는 걸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딱 10부만 찍어서 행정상 필요한 곳에만 제출하고 나머지는 제 뜻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20부 이상, 또는 30부 이상이라야 논문을 찍어 준다기에 10부만 찍어주는 곳을 찾기 위해 3주를 소비했습니다. 결국 데드라인에 걸려서야 할 수 없이 20부를 찍었습니다.

내용보다 편집을 좋아하는 저라서 이젠 신나는 작업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A4에서 사방 여백을 40씩 주고 작업했던 파일을 신국판(153X225)으로 편집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직장에 3일. 학교에 3일. 금시에 시작된 개강으로 강의 듣고 영어공부를 하면서 하다 보니 무려 한 달 하고도 보름을 소비했습니다. 편집이 끝나갈 무렵. 재생지와 콩기름으로 찍어 줄 인쇄소를 알아보는데 사람들은 작은 인쇄소들이 일이 많이 없어서 의뢰만 하면 ‘땡큐!’하고 서로 해줄거라고 말해 주었지만, 웬걸 재생지와 콩기름으로 찍는다고 하니까 아예 딱 잘라 거절당했습니다. 재생지가 기계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되고 무엇보다 재생지로 인쇄해 본 인쇄소가 거의 없었습니다. 또 한 달이 흘렀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녹색연합과 정토회, 등 큰 환경단체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정식으로 출판하여 대량으로 찍는 것도 아니고 130여쪽에 300권의 분량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학부 때부터 꾸준히 조금씩 후원해 주신 분을 헤아려 보니 100여명은 되었습니다. 또 제가 속해있는 그룹과 학교, 직장에서 150여권, 지인들에게 100여권 넉넉잡고 350권 돌리고 150권은 어떻게든 돌릴 생각하고 500권으로 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과 점심시간이 빠지고 나면 전화로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직장에 있는 시간과 지도교수님과 함께 쓰는 연구실에 있는 시간. 이쪽저쪽 눈치를 봐가며 들락날락 틈틈이 여기 저기 전화를 해댔습니다.

인쇄소

‘gongjang’ 디자인에서 알려준 상지인쇄소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시큰둥했습니다. 친환경인쇄에 긍정적이지도 않았구요. 다만,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은 잠시. 재생지, 그것도 고지율100%라는 말에 종이를 구할 수가 없으니 “안 된다”였습니다. 절망이었죠. 방법이 ‘없느냐’는 말에 ‘없다’는 정말 절망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어쨌든 인쇄소만 찾아가면 바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답답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종이를 직접 구해오면 해줄 수 있겠느냐는 말에 종이만 구해올 수 있으면 문제없다고 허락해주시더군요. 한 가지는 해결된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종이만 구해주고 콩기름인쇄 해달라 그렴 보통 해준다고는 하더군요. 그래도 친환경차원에서 신경 써서 해주시면 더욱 좋고, 아니라도 경험이 있는 곳에 맡기고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종이

이제 문제는 종이였습니다. 마음으로 찍어둔 종이는 재생지를 처음으로 접했던 페이퍼코리아의 ‘이코노미카피’였죠 고지율100%라더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고 약간 갱지느낌이 나면서도 더 예쁘더군요. 게다가 당시에 보통종이 보다 비싼 다른 재생지 보다 가격도 더 쌌었구요. 전 당연히 이걸루 찍으면 될 거라고 생각해지만 웬걸. 이 종이는 이미 수요가 적어 벌써 단종 되었더군요. 페이퍼코리아 측에 전화해서 구매를 시도해봤지만, 본사에 재고가 있기는 하나 구입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대답뿐이었죠. 몇 일 동안 인터넷을 뒤지면서 희망을 얻은 것은 재생지를 이용해서 책을 찍는다는 것은 대단한 끈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출판사가 있더군요.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삼원페이퍼갤러리를 알게 되어 희망을 안고 갔지만. 수많은 재활용 종이가 수입지임은 감수하더라도 평량이 너무 높은 것이 대부분이서 도저히 책의 내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종이의 이름을 모르면 종이를 구할 수 없다.

저 같은 개인이 “고지율100%에 책의 내지로 쓸 만한 종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아무리 종이가 많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큐레이터가 있었지만, 고지율까지 명시된 종이는 없더군요. 1시간 가까이 걸려서 지하철로 찾아간 삼원페이퍼에서 스펙클톤이란 평량이 높은 두꺼운 재생지 샘플 하나와 다른 종이 샘플 두어개 사고 기념으로 종이달력 하나 달랑 얻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힘 빠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두성종이와 몇몇 재생지를 취급하는 제지회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작아’에서 친절하게 알려주신 몇몇 업체와 다 정리를 해보니 10여곳이 되더군요. 차례대로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위에 절망이었습니다. 고지율100%재생지라는 말에 “고지율은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재생지라고 해서는 종이를 찾을 수가 없다. 정확한 종이 모델명을 알아오라.” 였습니다. 제지 업체라고 하는 곳에서 ‘고지율’이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곳조차 있었습니다.

또 얼마나 냉담하던지,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일언지하에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종이의 정확한 모델을 모르면 재생지라는 것만 가지고는 아예 대화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gongang디자인에서 알려준 지업사도 재생지는 취급 안한다는 단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심지어 화를 내시는 분도 있었구요. 그렇게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재생지를 구해본 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겠지만 재생지 자체가 수요가 적어서 ‘재생지’를 찾는다고 해봐야 종이업체에서도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또 가르쳐주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작아에 전화해서 매달렸죠. 개인이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대한제지의 GR-Matt와 E-plus라는 정확한 종이의 명칭을 알려주셨습니다. 두 가지다 고지율 100%라고해주시더군요. 대한제지에 전화해서 종이소개에 100퍼센트라는 말이 없는데 100%가 맞냐고 물었더니 규정상 40%가 넘어가면 재생지로 환경기준에 적합하단 말씀만 하시더군요. 그래서 100%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업체에서 100%라고 하면 사람들이 종이 질이 되게 안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뜻 100%라고 말씀을 못하신다더군요.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유일하게 아는 페이퍼코리아에 다시 전화를 해서 “나는 무조건 종이를 사야겠으니 당신이 못 팔면 팔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을 바꿔 달라”고 행패 아닌 행패를 부렸습니다. 계속 그렇게 난동을 피우니까 할 수업이 여러 차례 전화를 이리저리 바꿔주더군요. 유일하게 용인에 있는 한 업체(성림제지)에 납품을 하니 거기서 사라고 하더군요. 기쁨도 잠시 그곳에서는 잘라서 사무용지로 파니까 전지는 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페이퍼 코리아에 또 전화를 했지요. 본사는 우리는 다른 회사에 납품을 할 뿐 개인에게 팔수는 없으니 정 사고 싶으면 군산에 있는 공장에 와서 사겠다면 정식루트는 아니지만 빼줄 수 있다더군요.

살 수 있다는 말에 마냥 좋아서 그러겠다고 전화를 끊고 보니 서울에서 군산까지 무슨 수로 갔다 올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꾀가 났습니다. 본사에서 되면 납품업체에서 안될 이유가 없다싶어 이번엔 납품업체에 전화를 해서 또 행패를 부렸습니다. “난 종이를 사야겠고, 본사에서 못 판다니까 당신들이 종이 작게 썰기 전에 전지를 팔아라. 안 파는게 어딨느냐” 거절하던 쪽에서 곤란한지 또 높은 사람을 바꿔주었습니다. 이때다 싶어서 우는 소리를 했지요. 그분은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종이질도 인쇄하면 않좋을텐데 왜 이 종이를 꼭 쓰려 하느냐, 저는 지금 내가 고지100%의 재생지를 써야 되는 이유와 100% 재생지는 그 종이 하나 밖에 없다는 걸 설명했습니다. 결국 용인까지 오면 종이를 팔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쾌재를 부르며 이젠 되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인쇄판형과 편집

근 한 달 만에 인쇄소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종이 크기는 신국판(153X225)이 16페이지, 양면 32페이지로 찍기 위해서 필요한 전지는 4X6전지(1090X788)였습니다. 하지만 이코노미카피는 777X1098인 전지와 850X900인 전지 두 종류밖에 없었습니다. 인쇄소에서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럼 인쇄가 불가능하니 문서의 판형을 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큰 종이를 사서 잘라서 많은 부분을 버리고라도 하려면 하라는 거였습니다. 777X1098은 버려지는 종이가 너무 많게 되어 잘못하면 재생지를 쓰는 의미가 흐려질 것 같았는데, 인쇄소에서는 판형을 153x220으로 줄이면 충분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그렇게 판형을 줄이면서 종이를 신청했습니다.

140여쪽 500권을 찍는데 필요한 종이는 예비를 포함하여 전지 6연(1연은 전지 500장=3,000장) 한연에 가격은 32,000원 정도(굉장히 저렴한 거지요) 192,000원. 하지만 그 큰 종이를 들고 올려면 차가 필요한데 대형화물용 택배를 이용했습니다. 여러 곳을 알아보니 경기도 용인에서 을지로 3가까지 대부분 5~6만원을 부르더군요. 4만원에 해주는 곳을 찾았습니다.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153X220으로는 도저히 안되겠으니 다시 153x215로 줄이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글자 포인트 8까지 줄여서 맞춰놓은 딱 맞는 표들 때문에 다시 5mm를 줄이는 일은 또 2주를 소비하게 했습니다. 이번엔 표지. 마침 삼원페이퍼갤러리에 갔었던 일은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그곳에서 가져온 스펙클톤 샘플 역시 100% 고지였습니다. 마침 제가 좋아하는 크라프트 색이었구요. 그걸 표지로 쓰기로 했습니다. 인쇄소에서 요구하는 200장. 장당 1,000원이 넘는 종이라 20만원이 조금 더 되는 가격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종이는 배송까지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편집이 끝난 후 필름출력, 교정, 드디어 인쇄가 끝나고 어제 인쇄소에 가서 보니 인쇄되어 있는 가지런한 전지들을 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싹 가시더군요. 어제 제본된 책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작고 초라한 듯 했습니다. 하지만 볼수록 그 작고 초라함 속에 담긴 의미를 새겨봅니다. 원래는 안줄 분위기였지만 우겨서 남은 종이도 복사지로 잘라서 1000장정도 얻어내었구요. 비록 출판도 아니고 내용특성상 볼 사람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재생지에 콩기름을 이용해서 책을 찍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혹여나 비슷한 경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고 제 경험담을 전해봅니다.

재생종이&콩기름 + 생태환경 + 아름다운 마음씨로 세상 살기. 동참하시는 모두 힘내시기를.

정보 & 도움받기.

인쇄소. 상지P&I (gongjang 디자인에서 소개해준 인쇄소) 인쇄비 144쪽 500권 55만원
종이 내지. 페이퍼코리아 이코노미카피(고지율 100%). 성림제지에서는 그냥 중질지로 불림.
1연=500장6연(3000장, 연당 32000원)=19만2천원, 큰화물배송이용(용인-을지로3가) 4만원.
표지. 삼원페이퍼-스펙클톤(고지율 100%)
200장(장당 1100원정도)=22만원
500권. 총비용 100만원+2천원.

녹색연합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가장 친절하게 반복해서 많은 정보를 지원받았음.
**팁.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인쇄와 제지업체 분들 굉장히 불친절 하고 설명해주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문 업체들에게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법.

“따지기. 우기기. 애원하기. 물러서지 않기.”


이제는 paperless를 지향하는 시대라 좀 옛날감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종이를 많이 소비하고, 또 종이결과물을 만드는 시대입니다. 개인이 환경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죠. @savec회원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경활동 하실거죠?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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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나아졌을까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적어주신 내용의 일부를 페미위키에 반영하고 싶습니다.

넵 정보는 공유하는게 좋으니까요.^^ 다만 각주는 달아주십시오^^

넵 허락 감사합니다! 출처는 이 글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ㅎㅎ